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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이 5집 [까만 타이거]를 발표했다. 멤버는 둘만 남았고, 음악 스타일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변한 스타일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기용은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에 대해 길게 말할 이유가 없다. 곧바로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기 바란다. 여기, 5집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있다.

일시: 2011년 7월 5일
장소: 홍대 바 샤
인터뷰: 허클베리 핀(이기용(기타), 이소영(보컬) vs 이경준, 김학선
정리: 이경준

학선, 경준: 반갑다.

기용, 소영: 반갑다.

학선: <보다>와의 인터뷰는 처음이다.

기용: 맞다. 오늘 어떤 분위기로 가나?

경준: 무난한 질문도 있고, 조금 길게 나올 질문도 있고…. 이후 시간이 괜찮은지?

기용: 괜찮다. 좋은 인터뷰를 해 보자.

경준: 고맙다. 그럼 소프트한 것부터 물어보자. 지난 주 토요일 공연은 어땠나?

기용: 글쎄. 공연을 봤어야 했는데. 우리 공연을 많이 봤겠지만. 3집, 4집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음악이 직선적이다 보니 무겁고, 록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좋게 말하면 진중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다 4집을 마스터링한 날, 차타고 홍대로 돌아오면서 5집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됐다. 수없이 들었던 앨범이다. 작업할 때도 많이 들었고. 마지막으로 완성해서 가지고 들어오는데 아쉬운 부분들이 떠올랐다. 작업은 그런 것들을 채워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동안 허클베리 핀에게 없던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바꿔야겠다, 변화해야겠다, 추가해야겠다, 더 매력적인 밴드가 되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이번 앨범은 어떤 앨범보다도 공연을 하면서 만들어진 음반이다. 우리가 1997년부터 밴드를 했는데, 2007년 4집까지 공연하면서 쌓여왔던 우리의 노하우, 반대로 말하면 쌓여온 만큼의 한계, 관성, 이런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들어 있다. 이후에 아쉽다 생각한 부분은 부쉈고, 새롭다 생각한 것은 추가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곡이 <빗소리>다. 고민의 결과였다. 우리가 록 음악을 하는데 록 음악이 꼭 사람들을 흥분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젠 그런 요소를 추가하고 싶다. 저 객석을 미치게 하고 싶다, 음악에 육체를 부여하고 싶다, 그런 것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이었다. 앨범 발매 공연 때는 1부와 2부로 나눠서 공연했다. 1부는 허클베리 핀의 예전 노래들. 중간에 게이트플라워즈(Gateflowers)가 게스트로 섰었고, 2부 때는 대부분 5집에 있는 곡으로 공연했다. 왔었다면 앞과 뒤가 어떻게 달랐는지 느꼈을 것이다. 2부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분위기가 구현됐다. 우리 공연을 수십 번 본 팬들도 오늘 공연이 최고였다고 말했으니까. 객석도 우리만큼 미쳐 있었다. 꽤 기억에 남는 공연이 될 것이다.

학선: 관객들을 미치게 하는 데 그 전에 했던 로킹함만 가지고는 부족하단 이야긴가?

기용: <낯선 두 형제>, <밤이 걸어간다> 같은 4집의 주요한 트랙들은 하고 싶은 말을 거두절미 하고 딱, 송곳처럼 들어가는 스타일이다. 그건 음악적인 표현으로는 다르지만 사실 1집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트레이트하고 잡기라고는 없는 사운드. 그런 스트레이트한 록에서 무엇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5집에서 중요하게 하려고 했던 세 가지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육적인 것, 피지컬한 것. 때로는 섹시하기도 하고, 좀 물적이고. 그 동안 정신적인 느낌이 좀 강했지 않나. 왜 학교 다닐 때 예체능 시간이 오면 느껴지는 희열, 그런 거 있지 않나. 아, 이런 게 중요하구나. 나도 좋아하니까. 좋아하는데 못했다기보다 다른 것들을 더 많이 말해오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 계단을 바꿔서 내려올 때가 됐다, 그런 느낌.

경준: 4년 만의 스튜디오 앨범이다. 그 동안 공연을 하고, 신인들을 발굴하고, 술집을 운영하고 나름 바쁘게 살아왔을 것이다. 결과물을 마주한 소감이 어떤가?

기용: 단언하건데, 나는 이 앨범의 매력을 뛰어넘는 앨범이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내가 만든 여덟 번째 정규 앨범인데, 뭐 모든 앨범을 최선을 다해 만들었고 좋은 앨범이 많았겠지만 이 앨범을 뛰어넘었다고 이야기할 앨범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가장 공이 많이 들어간 앨범이기 때문이다. 준비기간도 많이 걸렸고. 데뷔 앨범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다. 그렇게 에너지를 투입하고도 또 힘을 많이 넣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게 그동안 우리가 힘이 있는 음악을 해오면서 오히려 힘을 뺄 수 있지 않았나 싶은 거다. 디테일을 굉장히 많이 신경 썼지만…. 3집 같은 경우는 꽉 차있는 느낌이었다. 그때도 녹음만 한 400시간 이상 했는데 이번엔 그때 이상으로 했다. 또, 무엇이 포인트인지 집중해서 했기 때문에 우리는 만족한다.

학선: 소영 씨도 한 말씀 해달라.

소영: 나도 작업해놓고 보니 좋다. 11곡 끝나고 어, 벌써 끝났다 그런 느낌? 그냥 좋다.(웃음)

경준: 이번엔 왜 이리 오래 걸렸나?

기용: 우리는 나름의 작업규율이 있다. 3년 만에 한 번씩 정규를 내고, 곡은 11곡이고, 타이틀은 한글이고. 그것들을 대부분 다 지켰는데, 이번엔 1년이 늘어난 것뿐이다. 4년 만에 나온 거니까. 그만큼 품을 들였다고 보면 된다. 3년 만에 앨범 내는 게 빨리 낸다고 볼 수는 없는 거니까. 밴드의 전 역사를 통해서 봤을 때 1집, 그리고 3집이 중요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그 이상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밴드가 1집을 실패하고 2집부터 이름을 알릴 확률은 굉장히 낮다. 3집은 허클베리 핀이 이소영 체제가 되고 난 이후, 너희들이 우리를 이렇게 파괴할 수 있어? 너희들이 대체 음악을 알고 있니? 음악은 보컬만으로, 가사만으로, 테크닉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냐, 음악은 노래, 음악, 작곡이라는 거야, 보여줄게. 그런 계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 음악을 오래 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3집은 오기라고 할까? 그런 게 많이 들어간 앨범이었다.

학선: 2집의 저평가에 대한 반발심리 같은 것이었나?

기용: 2집은 저평가될 음반은 아니었다. 일면 인정하는 부분은 있다. 녹음의 퀄리티 같은 것. 2집은 5집과 똑같은 녹음실에서 같은 엔지니어와 했다. 하면서 굉장히 불만족스러웠다. 다시는 이렇게 시간에 쫒기는 작업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을 했다. 아쉬운 앨범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허클베리 핀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4집은, 4집도 좋은 음반이다. 4집부터의 변화는 로큰롤에 대한 허클식의 파고들어감이다. 그 시작이 된다. 그 전까지는 뭐라고 할까. 육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음악을 만들었다고 하면, 그때가 10년차로 들어갈 때였는데 록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싶었다고 할까. 그래서 이전의 포크적인 것을 많이 덜어내고 록으로 많이 들어갔던 앨범이고. 이번 5집에서는 아까 말했듯 뼈에다 살을 붙이고, 나뭇가지에 잎을 붙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음반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5집인데, 사실은 심각하고 진지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기존 스타일의 음반을 내도 사람들은 좋아해 줬을 것이다. 아, 허클 스타일이다. 잘할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떨어지는 건 흥미가 아닌가. 흥미가 떨어진다는 건 가장 큰 위기가 되는 거다. 누군가가 대가가 되어가는 과정은 실은 생기를, 호기심을 잃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걸 거부해야겠다. 흥미로운 밴드, 섹시한 밴드, 매력적인 밴드가 되어야겠다. 엄청난 고민을 했다. 나 굉장히 진지한 놈이다.(웃음) 근데 사람은 다층적이지 않나. 그래서 처음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사운드가 나오는 거다.

학선: 김윤태 씨가 빠졌다. 어떤 이유가 있었나?

기용: 뭐, 개인적인 이유도 많이 있었고. 이 정도로만 이야기하겠다. 10년 넘게 같이 활동하면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오래 사귀었으니까. 거기까지만.

학선: 멤버가 지금 계속 하나씩 줄고 있다.

기용: 주는 게 아니다. 우리는 항상 3인조였다.

학선: 형식적으로 3집에서 베이스도 크레딧에 있지 않았나?

기용: 베이스는 정규 멤버인 적이 없었다. 우린 늘 기타-보컬-드럼 체제였다. 멤버가 그냥 한 명 준 것이지 줄어드는 과정에 있는 건 아니다.

학선: 그러면 계속 둘이 갈 것인지, 아니면 풀 밴드에 대한 욕심이 있는가?

기용: 글쎄. 음악적 부분이나 모든 부분에서 둘이(나랑 소영이랑) 90% 이상 이야기를 다 해 왔다. 그래서 로스가 없다고 했던 부분이고,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뭐,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늘 수는 있을 거다. 허클베리 핀이 더 이상 쪼개질 수는 없다.

경준: 그럼 형식적으로는 2인조 체제인 건데, 키보드 루네(Lune) 씨의 비중이 커진 것 같다. 그녀에게 부여한 롤은 무엇이었나?

기용: 음악적으로 여러 전술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리프다. 나는 리프를 중시한다. 스트로크도 좋아하지만, 솔로가 막 나오거나 프리하게 흘러가는 곡은 아주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허클베리 핀도 그랬고, 스왈로우(Swallow)도 그간 리프 위주로 많이 해 왔다. 이번엔 똑같은 리프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Girl Stop> 같은 경우에 리프를 건반으로 한다. <도레미파>도 그렇고. 재미있는 변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리프가 위주가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경준: 루네 씨는 사운드를 보강해주는 역할인 건가?

기용: 그렇다. 그리고 말하자면 기존에 기타가 했던 역할을 대체해서 했다. 기타 리프나 건반 리프가 기본적으로 보컬에 준하는 정도로 앞으로 나간 것이다. 그러니까 앨범의 색채가 달라진 거고. 또, 작업하면서 코러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이건 전 앨범들에 비해 디테일한 변화다. 그런 것들을 루네라는 친구가 굉장히 잘 한다.

소영: 일단 기타가 리프를 안 하고 리듬 쪽으로 가니까 이번 음반이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것이다. 멜로디의 역할을 키보드가 많이 맡았다.

경준: 여기저기서 취합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지금까지 나온 것들과는 다르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대중적인 화법으로 전향한 게 아니냐는 말들이 많던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용: 대중적인 것이냐 아니냐는 말할 필요도 없다. 반-대중이 우리에게 중요한 테마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적은 있다. 정말 내밀한 이야기를 했던 몇몇 트랙들. 가령 허클베리 핀 2집의 <Somebody To Love>, 스왈로우 1집의 <Deja Vu>, 3집의 <나는 고요하다> 같은 곡들. 개인의 깊은 페이지에 있는 걸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게 나는 음악을 하고 있는 창작자다, 내가 대중을 의식해서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나는 뭐 하러 음악을 하는 거냐,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는 건 있다. 그렇지만 음악인 누구도 자기 음악에 방패를 치는 사람은 없다. 들어오지 마. 너, 너, 너만 내 음악을 들어, 이런 사람은 없다. 즉, 자기 음악을 할 수 있는 한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게 음악인이다. 대중적이라고 느꼈다면 그 느낀 바가 그대로다. 난 할 말이 없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매력적인 거니까. 그럼 4집 때는 안 그랬나? <낯선 두 형제>를 만들었을 때, 나는 그게 깜짝 놀랄 만한 트랙이라고 생각했다. 만돌린 연주 만들어 놓고 멋있다 이러고, 이런 트랙 나오기 쉽지 않겠다 이러고. 그런데 그냥 그러고 말잖나. 남들 하기 좋아하는 이야기로 평론가들 위한 음악이라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음악을 만들겠는가. 그렇지 않다. 나는 그러기에는 굉장히 자기집중적인 사람이다. 여러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다면 좋은 거다. 성공한 거다.

학선: <낯선 두 형제> 같은 노래를 만들었을 때 본인은 굉장히 만족했다고 했는데, 그런 노래에서 대중들의 반응이 없으면 실망하는 편인가?

기용: 지금은 아주 많이 덤덤해졌다. 그런 고민을 1집 때부터 했다. 나는 원래 1집이 한 2만 장 나갈 줄 알았다. 겸손하게 생각해서.(웃음)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실망을 많이 했다. 그리고 더 커다란 실망을 2집 때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단련이 많이 됐다. 앨범을 낸다는 건 처음에 저만의 공간에 불과한 합주실에서, 그다음에 술자리에서, 그 다음엔 공연장으로 이렇게 떠돌다 세상으로 나가는 거다. 설레지 않을 수가 없다. 항상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게 되지 않았을 때, 사람이니까 조금 실망한다. 슬플 것이다. 그래도, 우리보다 그 시간만큼 음반 많이 낸 뮤지션이 있는가? 없다.

경준: 그런 말이 나온 이유가 이번 음반에서 <Girl Stop> 같은 곡에서 댄서블한 코드를 차용하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한데.

기용: 대중적이라는 말은 설명이 다 되었으니 그대로 두고. <도레미파>나 <Girl Stop>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 노래들 만들었을 때 상황이 다 기억이 난다. <Girl Stop>을 만들었을 때는, 아주 오래된 보이스레코더에다가 10분짜리 짧은 테마를 만들어 놓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5집 관련해서 다시 꺼내 듣고 있었다. 곡들이 잘 안 풀리는 와중이었다. 기타를 차에 싣고 자주 가는 몇 군데가 있다. 나에겐 아주 소중한 장소들인데, 그 중 하나가 신림동이다. 아주 외진 곳에 차를 세우고, 오늘처럼 매우 더운 날씨였다. 거기서 노래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스트로크 위주로 가면서 그 사이에 스네어가 들어가는 구성이다. 아, 이거 의외로 댄서블할 수 있겠다, 그래 이거야, 그렇게 만든 곡이다. <도레미파>는 [세바퀴]를 보면서 만들었다. 거기 아이돌이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그러는데, 가끔 TV 소리를 끄고 볼 때가 있다. 여자 아이돌이 나오면 기타를 들고 있다가 뭔가 느낌이 오면 소리를 틀고 기타를 치는 거다. 그러다 탄생한 곡이다. 너무 자연스럽게 나온 거다. 즉, 대중적 코드가 따로 있어서 만든 노래가 아니란 이야기다. 꾸준히 내 음악이 매력적으로 들리기 위해서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겠나. 평론가들이 나를 보는 데도 편견이 많다. 이기용하면 집에서 시집만 읽고 정치현안만 찾아볼 것 같고. 그렇지 않다. 그랬다면 <쫒기는 너>나 <도레미파> 같은 스타일을 만들 수가 없었을 거다.

학선: 댄서블한 음악이 떠올랐다는 건 그때 이기용씨가 듣고 있던 음악과 연관된 거 아닌가?

기용: 부정할 수가 없는 게, 나는 음악을 가장 안 듣는 뮤지션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어느 시점부터 노래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곡들을 듣다보면 즐길 수가 없다. 그래서 노래를 안 듣고 그런 게 있었다. 그런데 바(bar)를 열고나니까 어쩔 수 없이 노래를 열 시간 듣고 그래야 했다. 이게 즐겁구나, 라는 사실을 오랜만에 깨닫게 된 거다. 그런 게 분명히 작용했을 거다. 반성도 많이 하고. 디테일한 부분들이 바뀌고 그래야 했기 때문에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학선: 허클베리 핀에 대한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트렌드와는 관계없는 밴드다'인데, 이젠 어떤 음악이 맘에 든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적극 차용할 생각이 있나?

기용: 물론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 랜덤하게 흘러가는 건 별로다. 즉, 잼 스타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보다 정리가 돼서 정화되어 나오는 걸 좋아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스타일의 것들이 있다면 내가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

경준: 제목이 [까만 타이거]인데, 개인적으로는 2011년 가장 흥미로운 타이틀이었다. 제목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뭔가?

기용: 불현듯 떠오른 거다. [까만 타이거]라는 게 스치고 지나가듯 떠올랐다. 그게 맘에 들었다. <까만 타이거>라는 곡을 만들고 나서 제목으로 떠오른 건데, 사실 이걸 타이틀로 썼을 때 어떤 분들은 또 의아해하겠구나 싶었다. 우리의 앨범 재킷만큼이나 불쌍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제목이 굉장히 오랫동안 살아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흥미로운 의미를 가지고 말이다. 이건 일종의 자화상 같은 거다. 허클베리 핀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호랑이는 백수의 왕이다. 사자도 그렇고. 사자는 무리지어 다니고, 호랑이는 홀로 다닌다. 일단 홀로 다닌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우리랑 닮았다고 생각했다. [까만 타이거]의 축은 세 가지가 있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가장 원했던 앨범, 매력적인 앨범, 섹시한 앨범이 될 것이다. [까만 타이거]는 이미지화 해본 건데, 눈 덮인 설원을 걸어가는 까만색의 호랑이. 그 대비감이 멋있었다. 그게 좀 뜬금없지만. 그런 이미지들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우리들의 노력과 모습으로 다 채워질 것이라 믿는다. 허클베리 핀 하면 이제 그 누구도 마크 트웨인(Mark Twain)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이쪽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마찬가지로 [까만 타이거]라는 생뚱맞은 단어가 우리가 만든 열한 곡의 무늬들로 채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학선: 한글로 제목을 짓는다고 했는데 타이거를 호랑이로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나?(웃음)

기용: 물론 했다. 사실 타이거는 가장 기본적인 50단어 안에 들 수 있는 단어 아닐까. 미군정 이래로 60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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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준: 재킷에 대한 질문을 해보려 한다. 전작 [환상... 나의 환멸]은 노란 색의 심플한 바탕이었다. 반면 이번 음반은 물에 잠긴 형태로 모습이 드러나 있다. 색감도 짙어졌고. 저번 앨범이 '추상'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구체'라는 뜻인가?

기용: 박석민 작가라는 분이 이번에 디자인을 다 맡아서 했다. 뮤직비디오, 사진 모두 다. 창의적인 작업들이 많았다. 그분이 시안을 가져왔을 때,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물에 잠겨 있는 것. 다른 하나는 두 명이 나와 있는 것. 그걸 받아들인 이유는 이미지가 중첩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좀 웃기기도 이상하기도 한데. 하늘도 그냥 맑게 갠 하늘이 아니다. 뭔가 버려질 것 같은 모습이고. 물에 잠긴 모습도 그렇고. 아, 처음엔 색깔이 더 어두웠다. 그걸 조금만 밝게 가자고 했고. 멤버 둘이 나온 것은 허클베리 핀이 음악이 끝날 때까지 둘일 거야, 라는 자기확신 같은 것이다. 즉, 허클베리 핀에서 이 나머지 사람이 바뀔 일은 없다는 의미다. 난 이 사람(이소영)이랑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는 걸 2집 때부터 결심했다. 그 동안은 사진 쓰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그랬는데(웃음).

경준: 옛날 가요 보면 멤버 사진을 내건 것이 대세 아니었나. 허클베리 핀은 생각해보니 그런 적이 없었다.

기용: 맞다. 그런 적이 없었다.

경준: 이제 곡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1번 트랙 <숨 쉬러 나가다>를 들어보면 확실히 전작의 오프닝 성격은 아니다. 보컬은 무대 뒤편으로 숨었고, 호흡은 길어졌다. 앨범의 허리나 끝에 어울리는 트랙이라 생각도 들 만하다. 이 노래를 과감히 선봉에 내세운 이유는?

기용: 이 노래를 1번으로 뺀 이유는 11번까지 노래를 듣고 나서 자연스럽게 1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한 번 더 듣는 거다. 원래대로 하면 <쫒기는 너>가 1번으로 갈 확률이 많았다. 그런데 그건 나한테 너무 뻔했다. 나한테만 뻔한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사실 그 음반을 얼마나 많이 들었겠는가. 4년 동안 나만큼 이 노래를 많이 들은 사람이 없을 텐데, 이 배치가 제일 좋다. 11번을 듣고 이걸 듣고 나면 다시 1번으로 가고 싶어진다. 이 인트로가 좋다. 루네 보컬로 시작하는 뭔가 아련하고 아지랑이 같고 그런 분위기가 좋다. 리플레이가 가능한 순서대로 짠 거다.

경준: 내가 세계에 말한 게 아니라, 세계가 나에게 말해주었다고 적혀 있다. 순서만 바뀌었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만든 사람 입장에서 보기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기용: 그 노래를 들어보면 세계가 나에게 말했다고만 했지, 내용은 말하지 않는다. 그 내용은 우리가 앨범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냥 괄호를 치는 거다. 이 곡은 판타지를 말한다. 전의 앨범과 이번의 앨범이 다른 부분은 전의 앨범이 은유적이지만 현실을 폭로하는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면(대표적으로 <낯선 두 형제>), 이번 음반의 가사는 "좀 살자", "좀 살아보자" 이런 거다. 남미 사람들은 고통스러움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건 환상이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고단한 현실은 나한테는 늘 비슷하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이. 에이, 난 몰라 난 사람 이야기만 할 거야, 이렇게는 나는 죽을 때까지 못할 것 같고. 그래도 우리는 죽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낫기 때문에 지금 살아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그게 조금 더 매력적이 되려면? 환상을 충분히 이용하자. 고민을 많이 해보자.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자. 죽을 때 후회하지 말고 환상에 대해 깊게 파고 들어가 보면 어떨까. 그게 무엇이건 간에 말이다. 남에게 해가 되는 게 아니라면. 그런 고민들이 앨범에 깊게 깔려 있다.

학선: 소영 씨는 창법을 좀 바꾼 건가? 1번 트랙에서 좀 기교를 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 교태를 부린 게 아닌가.(웃음) 지금까지는 톤 위주로 빼는 작업만 많이 하다가 이번에 채우려고 넣었다.

학선: 그런 차원에서 물어보는데, 예전에 기용 씨가 기교부리는 보컬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한 적 있지 않았나?

기용: 기교부리는 보컬. 말 그대로, 기교를 잘 부렸으면 기교란 말을 쓰지도 않는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너무 많이 들었던 실용음악적인 보컬, 천박한 R&B 보컬. R&B가 천박하다는 게 아니라, 깊지 못한 상태에서 소화되는 테크닉들. 그런 걸 말했던 거다. 소영이는 어떤 게 후지다는 건지 알고 있는 보컬이기도 하고.

학선: 가사에 노란 색이라는 게 나오는데, 예전 앨범 재킷도 그렇고. 허클베리 핀에게 노란 색은 어떤 의미인가?

기용: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예를 들어서 집에 형광등만 되어 있으면 굉장히 불안하다. 노란 빛이 좀 있어야 불안하지 않고, 안도감을 느낀다. 나에게는 익숙한 색이다. 가장 훌륭한 색이다. 나의 판타지인 거고. 나의 정원으로 오라는.

경준: 두 번째 트랙 <쫒기는 너>의 가사를 주목해보면, "저무는 시대… 애매한 믿음… 서로의 시선 흩어지고… 달려가 잡은 손 떨리는 손… 쫒기는 너… 달아나는 신… 다시는 절망을 부르지 않겠어." 외관상 보기엔 희망과 절망. 이런 양가적인 이미지들이 중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오염되고 얼룩진 구원의 모습이라 하겠다. 일그러진 우리 시대를 풍자한 것인가? 무엇을 담아내려고 했나?

기용: 둘 다 맞다. 여러 가지 면에서 양면적인 노래라고 생각한다. 댄서블 코드를 차용해 이 노래 들으면 몸이 출렁출렁댄다. 동시에 가사는 심각하다. 세상에 대한 이야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서글픔, 안타까움, 나름대로의 사랑에 대해 쓴 것이다. 첫 문장이 중요하다. 저무는 시대….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생각이 여러 가지로 든다. 192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현대사에서 그 분들이 상징하는 바가 많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젊은 시대에 최악의 시간들을 보냈고, 그런 시간들이 끝나자 엄청나게 경쟁적인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이 왜소해지는 시대가 되었고. 그게 쫒기는 너고 쫒기는 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살아있으니 어디론가 가는데 그걸 자비롭게 내다보는 신이 없다는 거다. 싸늘하다는 거다. 그게 인간이라는 거고, 참혹하지만 현실이라는 거다. 그런데 가사가 전환된다. 살아있는데 역시 사람밖에 없다는 것. 우리가 같은 쪽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서로를 좀 부르자, 그런 내용이다. 가슴은 뜨겁게 타고 있고, 그런 사람을 찾고 있고. 엔딩에 가서는 이제는 다시는 절망을 부르지 않겠다고 쓴 거다. 기존 앨범에서는 절망에 대해서 많이 썼다. 이 노래는 좀 다르다. 가장 중요한 가사이기도 하다.

경준: 학선 씨 말과 좀 비슷한 이야기인데, <Girl Stop>에서 소영 씨 보컬을 들어보면 좀 퇴폐적인 냄새가 난다.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는가?

기용: 우리가 많은 시간 동안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고, 녹음할 때 그런 교태가 많이 나왔다.(웃음) 너무 좋아서 그랬다. 소영아, 좀 더 하면 안 되겠니?(웃음) 퇴폐적이라는 말 좋아한다. 그런 게 소영이한테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굉장히 기뻤다.(웃음) 내가 그런 걸 말하고 싶어도 보컬이 그런 게 없다면, 너무 정신적인 사람이라면 안 될 거다. 표현을 못해주니까.

경준: 다음으로 <도레미파>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키치한 뮤직비디오 재미있더라. 영감은 어디에서 얻었나?

기용: 박석민 작가가 작업했다. 스왈로우 3집도 그 친구가 작업했고, 루네 것도 해줬다. 우리에게 없는 것들을, 부족한 것들을 채우고 싶었다. 너무 무겁다는 이미지 같은 것들. 실제 우린 안 그런 것도 많이 있으니까. 재미있게 해보면 어떻겠냐 싶어서. 바로 오케이했다.

경준: <도레미파>의 가사도 잠깐 언급하고 싶다. 상징과 알레고리가 가득한(그것이 밴드의 중핵이라고 보는 편인데) 기존의 노랫말과는 사뭇 다르게 직관적으로 쓱 들어오는 가사다. 이거 일부러 이렇게 쓴 건가?

기용: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가사다. 어떻게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이 곡은 우리의 음악관에 대한 것이다. 어렸을 때는 무작정 음악이 좋아서 들었고,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죽이다> 이런 가사 써보고 하면서 안 될 줄은 알지만 굉장히 근사한 로맨틱한 상황이 벌어지기를(문자 그대로 낭만적이고 그런 게 아니라) 바랐다. 이 재미없는 시스템이 나이가 들면서 더 나은 쪽으로 바뀌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곳에 배경음악으로 쓰이면 참 좋겠다, 이런 생각도 했고. 음악하다 보면 그런 게 있다. 무대에 올라갔을 때, 노래를 만들었을 때 희열.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그것과는 반대다. 고통을 참아야 하는 시간도 많고. 여러 가지 것들을 컨트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음악을 오래할 수 있다. 작년에 스왈로우 3집 하면서 음악이라는 것에 대해 진짜 고민을 많이 했다. 음악이라는 나에게 뭐냐? 뭔데 나 이러고 있냐? 체념적인 게 아니라, 음악으로 끝까지 간다고 결심했지만 그래도 끝나지 않더라. 이 노래는 그에 대한 답이다. 도레미파솔라시도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답해줄 수 없다, 음악에서 그걸 찾지 마라는 이야기다. 음악에서 인생이 무엇인지 구하려고 하지 마라. 다른 것들이 그에 대해 답변을 많이 해줄 수 있다. 그러면 음악이 뭐냐? 음악은 환상이 불어오는 마법의 시간이다. 이리 도피해서 와라. 그게 음악의 존재이유다. 내게도 음악은 그런 것이고. 어렸을 때 음악에 빠졌던 느낌.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 같은. 다들 기억날 것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폴리스(The Police)의 <Every Breathe You Take>가 처음 나온 순간, 그 때 완전히 그 노래에 미쳐서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 자전거를 타고 초등학교 근처를 지나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배경음악이 지금도 막 흐르고 있다. 그게 뭐냐는 거다. 생각도 많이 해봤지만 음악은 마법이고 환상이라는 거다. 가사가 약간 일차원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 왔던 내용이다.

경준: 가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물어 보자. 허클베리 핀 가사의 매력은 대부분 일상의 변주나 뒤틂에서 나온다. 가사는 형이상학적이지만 발은 엄연히 지상에 붙이고 있다는 거다. 나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가 보는데, 본인에게 일상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기용: 글쎄. 어려운 이야기다. 일상이라는 게 어떻게 음악과 연결되는가로 한정지어 이야기해보자. 나의 어떤 일상이 소리로 연결돼서 가사로 나오게 되는가. 음. 멍하니 있다가 문득 그렇게 떠오를 때가 있다. 사람 사는 게 참 서늘하다. 눈물겹고. 내게 창작의 에너지는 그럴 때 나온다. 비탈을 보게 되고. 근데 다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 공기가 있다. 오늘은 뭘 좀 해야겠다. 오늘도 나오기 전에 곡 작업 하다 왔는데, 내게 음악과 일상의 관계는 서늘함이다. 또 사람들이 날 자극한다. 뭘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주고.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기분이 굉장히 좋았고, 다음 앨범에 들어갈 중요한 노래를 하나 완성하고 왔다.

경준: <빗소리>부터 익숙한 허클베리 핀의 양식이 등장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공교롭게도 앨범을 둘로 갈랐을 때, 이 곡은 후반부를 개막하는 곡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이런 행갈이를 생각하며 앨범을 녹음했는가?

기용: 당연히 그렇게 했다. 7번 <빗소리>부터 기존 허클베리 핀의 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리라 생각했다. 그럼 그런 생각도 했을 거다. 왜 이걸 앞에 배치하지 않았을까? 앞 트랙들이 그만큼 중요하단 이야기다. 이야기했지 않나. 이번에도 앞서 했던 대로 잘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이유는 앞 트랙들 때문이다. 자신이 없었다면 1~6번까지의 트랙들을 앞에 배치했겠는가. 이번 앨범의 성패는 앞 트랙들에 달려 있다. 허클베리 핀의 원래 팬들에게는 좀 낯설 수도 있지만. 낯선 것들은 처음에는 좀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게 좋은 것이라면, 결국에선 그게 좋아지게 될 거다. 앨범에 대한 확신인 거고. 뒤 트랙들도 격하게 아낀다. 사실 타이틀곡을 정하지 못했다. 그 말은 단 하나의 트랙을 뽑을 수 없었다는 말도 되고, 내 느낌대로 말하자면 버릴 만한 곡이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마지막에 고른 <Girl Stop>도 회사에서 정한 것이지 나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학선: 했던 걸 계속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기용: 다시 앞서 포인트로 돌아가면, 중요한 건 흥미롭고 매력적인 거다. 연애하는 것이랑 비슷하다. 내가 이 사람이랑 사랑에 빠졌다고 해서 3년 뒤에도 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보장이 없다. 나는 음악을 평생 하고 싶다. 그러려면 나도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고, 결과물도 매력적인 게 되어야 한다. 나, 밴드, 음악, 팬들. 우리가 서로를 원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폭탄 위에 머물다> 같은 노래만 앞으로 100개 만든다고 생각해봐라. 그때도 내 음악을 들을까?(웃음)

학선: 들을 것 같은데.(웃음)

기용: 물론 듣긴 할 거다. 하지만 음악을 오래 하려면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즉, 걔네 이번에 8집 나왔어. 뭐, 좋겠지, 그렇게 될 거 아닌가. 동어반복만 하는 게 되고. 우리는 이제 그런 정도의 밴드는 아니다.

학선: 예를 들어서 흥미로운 것만 했는데, 기존의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 그래도 그게 더 의미가 있는 건가?

기용: 그건 다르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나 같으면 시간을 두고 붙잡아 두겠다. 내가 마음은 2년 안에 내고 싶어도 1년을 더 기다렸다가 그 트랙을 수정하든지 버리든지. 내가 마음에 안 들면 그 트랙이 왜 들어가야 하는가?

경준: <Too Young>의 원제는 원래 <Too Young To Die>였다. 실제로 가사에 나오는 말이기도 하고. 마지막에 제목을 바꾼 이유는?

기용: 그만 죽자.(웃음)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쓴 곡이다. 이 가사도 이야기해보자. 요즘 나쁜 사람들,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못된 사람들, 아니면 나이든 분들을 보면 저들도 한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상태, 아기였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저런 변수들로 인해서 상처받고, 상처주고, 시스템을 만들어서 죽이기도 한다. 그런 것들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당신에게 고통을 주고 주었던 것들을 생각하지 말라. 그러면 너의 몸에 흔적이 남는다. 꼭 남는다. 술 마시면면 사라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고통으로 몸에 새겨져 드러나게 되어 있다. 오래 쌓이게 되면 말이다. 그렇게 하지 말란 이야기다. 너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네가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고, 네가 죽으려는 것은 너의 꿈 때문이다. 그러지 말아라. 말미에 나오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상처를 잘 받는 존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경준: 앨범에서 가장 공명했던 곡은 마지막 트랙 <폭탄 위에 머물다>였다. "내가 내가 원했던 곳… 내가 내가 원했던 똑같은 삶. 내가 내가 원했던 것… 사람으로 사는 넌 똑같은 삶… 폭탄 위에 머물다 폭풍우에 젖는 폭탄 위에 머물다 나는 지금." 음악인으로 남은 자신에게 보내는 자전적인 메시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론 정치적인 문맥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

기용: 중의적인 것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가사가 중의적이다. 늘 두세 개의 해석이 가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쓴다. <폭탄 위에 머물다>는 일단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을 감안하고 쓴 곡이다. 홍대 노동자들이 시위할 무렵에, 그 모습에 감명을 받고 썼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너보다 나은 삶이 아니라, 너만큼이라도 사는 삶이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평균이라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 치열하다. 나는 평균적인 삶이 되고 싶어 목숨 걸고 살아간다. 그런 것도 허락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다. 가사에 사람으로 사는 넌"인데 "사람으로 사는 너와"로 되어 있다. 이거 오타다.(웃음) 이때의 "사람은 주류의 사람,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 시스템 안에서 군림하는 사람이다. 너도 사람인데 나는? 나도 너처럼 살고 싶다는 거고. "폭탄 위에 머물다"라는 말은 얼핏 평화로워 보인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 이 사람들이 매일매일이 전쟁이라는 걸. 나, 우리, 이런 사람들은 폭탄 위에 있는 것과 같은 삶을 산다는 거지. 여기까지가 예전 스타일이고. 가사가 변한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밤에 후회 따윈 찾을 수가 없어. 큰 북소리 들려오면…" 예전의 사람들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때 북을 쳤다. 내가 큰 북을 칠 때니 그 소리가 들리면 우리 모이자, 그럼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을 거야.

경준: 사운드는 사이키델릭적이다.

기용: 아주 거칠고 남성적인 사운드다.

학선: 기용씨가 노래에 참여하는 기준이 있나?

기용: 전의 앨범보다 보컬을 많이 하지 않았다. 거의 안 했는데 허클베리 핀에서 필요한 곡은 소영이가 잘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감성엔 내가 조금은 필요하다. 내가 노래를 만들기도 하지만, 곡에 필요한 보컬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녹음하면서는 내가 라이브 할 때 불렀던 곡을 많이 뺐다. 디테일하게 녹음한 사운드를 들으니까 불필요한 사운드가 들려서. <Too Young>하고 <폭탄 위에 머물다> 같은 경우는 허클베리 핀의 깊은 감성을 드러내고 있으면서 내밀한 이야기가 들어가는 곡인데, 그런 곡엔 내가 들어가는 게 낫더라. <Too Young>의 마지막 부분은 위로해주는 마음으로 부른 것이다. <폭탄 위에 머물다>는 어둠이 막 시작되려고 할 때 사람이 형체는 보이는데 선명하지는 않는 순간, 사람들이 모여들고 에너지도 느껴지고 음산한 이미지를 연상하며 노래했다.

학선: 보컬이 최소화된다는 건 스왈로우에도 영향이 있는 건가?

기용: 앞으로 스왈로우는 한동안 안 할 거다. 아주 오랫동안. 거의 안 한다고 봐도 되고.

학선: 3집에서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해서?(웃음)

기용: 아니.(웃음) 그게 아니고 허클베리 핀에서 하고 싶어진 게 훨씬 많아졌다. 이렇게 보면 된다. 내 에너지가 커지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이게 전과는 가장 다른 점이다. 음악에 점점 미쳐가고 있다. 제스처가 아니다. 신기하지만 사실이다.

학선: 아까 6집에 수록될 노래 하나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벌써 다음 앨범의 윤곽이 그려진 건가?

기용: 정확히 말하면 EP 형식이 될 것 같다. 사운드로 말하면 앰비언트가 주가 되는 음악일 것 같다. 드럼 비트가 많이 들어가고, 굉장히 우울할 것 같다. 정적이고. 사람들이 '허클베리 핀 이제 변한 줄 알았더니, 요새 또 누가 죽었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그 음악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설마 아름답지 않은 음악을 하겠는가? 노래는 6곡 정도 나온 상태다.

학선: 그 노래들이 다 들어가나?

기용: 정리를 좀 할 거다. 이번에 5집 작업하면서 깨달은 게 많다. 농반 진반으로 (서정)민갑씨와 인터뷰할 때 한 이야기가 있다. 인턴기간이 끝난 것 같다고. 그 말이 과장되게 들릴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젠 뭔가 좀 알 것 같다. 음악의 매력과 그 거대한 바다에 대해 실감하고 있다. 깊고 서늘하고 우울한 느낌. 그런 것을 해보고 싶다.

경준: 문학에서 영감을 많이 얻고 있는 것으로 안다. 3집 [올랭피오의 별]은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시에서 모티프를 따오기도 했다. 이번 음반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음반을 작업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작가가 있는가?

기용: 이번 작업할 때는 딱히 연결되는 건 없다. 딱 하나 <숨 쉬러 나가다>만 그런 곡이다. 이건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이 가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출판사에 전화하고, 번역자의 동의를 구해 쓰게 되었다.

학선: 라이브 부클릿에 장혁조 씨의 이름이 공동 프로듀서로 올라와 있던데, 작업할 때 혁조 씨나 루네 씨의 견해도 경청하는가?

기용: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라이브 음반이 작년에 나왔다. 당시 5집 작업 중이었는데 내 에너지를 보존해야 했다. 내가 라이브 음반에 에너지를 최소화해서 하자. 내가 여기에 에너지를 다 쏟으면 5집이 언제 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멤버들에게 사운드 부분을 많이 맡겼다. 나는 모니터만 해주는 정도로. 혁조나 루네는 음악을 잘 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맡길 수 있었다.

학선: 아까 잠깐 얘기를 하다가 말을 멈추던데, 지적인 이미지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는가?

기용: 하하. 그게 아니라. 뭔가 부정적이잖나.(웃음) 아니, 어떤 사람이 지적이라고 하면 만나고 싶나, 만나기 싫지 않나?(웃음)

학선: 혹자들은 이기용에게 작가주의 뮤지션이라고 하지 않는가?(웃음) 그것도 같은 맥락인가?

기용: 외곬수라는 말. 아니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뭔가 매력적인 찾기 위해서 애를 쓰는 거다. 그런데 그런 말에는 의도가 들어 있다.(웃음) 뭔가 고독한 느낌. 그런 거 내가 너무 오래 했다. 부정하겠다는 게 아니라, 음악으로 보여주겠다는 거다. 그리고 우리 공연장을 와 보라. 우리 밴드가 어디를 향해 끊임없이 변화해왔는지 확인해보면 좋겠다. 다음에 허클베리 핀을 볼 기회가 있다면 그동안 내가 잘못 알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다. 이것으로 대신하겠다.


2011/08/19 00:00 2011/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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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천에 살아요 2011/11/18 05:22  |  M/D  |  Reply

    이 앨범을 들어봤습니다.
    처음 딱 들으면 보컬의 허스키보이스에 귀가 쫑긋..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똑같은 패턴의 반복..결국..1번이상은 듣지 않게되더군요.
    게다가..
    노래 참 못하는 남자분이 끼어들땐..빨리 끝나기를 바라게되고..
    뭐랄까..
    공부는 열심히하는데 성적은 오르지않는 반 15등짜리 보는 느낌?
    그러면서 자기공부방법이 옳고 남의말 들으려 하지않는 스타일?
    다음앨범은 발전하길 바랍니다.
    평균작은 됩니다.

  2. 사차원 2012/01/04 03:17  |  M/D  |  Reply

    위의 댓글 보고 글 남깁니다.
    어차피 안볼꺼 같고 보더라도 신경안쓸거 같지만
    다른 사람들이 안좋은 음악을 좋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취향에 맞지 않더라고 3번은 진지하게 들어 보는게 좋을꺼 같네요.

  3. 정성훈 2012/02/08 22:47  |  M/D  |  Reply

    이런 음반을 한번 듣고 그냥 내버려 둔다고?
    부천에 살아요,
    당신은 바보?

  4. gtx 2012/02/10 16:34  |  M/D  |  Reply

    허클베리핀 자체가 3번이나 들을만한지 모르겠지만
    이앨범은 허클베리핀 중에 가장 떨어지는거 맞는데

  5. 락을납치하다 2012/02/25 12:12  |  M/D  |  Reply

    거장 뮤지션의 수작앨범이라 생각합니다.
    1번부터 허클베리핀의 느낌이 나와서 정말 좋았습니다.

    4집이 이질적이었다면
    5집은 3집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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