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 [Pain Reliever]
- Posted at 2008/08/19 00:00
- Filed under review/국내

Pain Reliever (2008/TN Ent.)
7.2
01. 울어도 괜찮아
02. Still Got The Blues
03. 이젠 (Since 1992)
04. Kick Ass Song
05. 왜?
06. Let It Rain
07. 손 끝이 아픈 이유
08. Taxi Driver
09. I Still Cry
10. Love Is Gone
11. 왜? (Instrument Ver.) - Guitar Solo
12. 이젠 (Instrument Ver.)
아이돌은 소비문화로부터 출발해 성장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아이돌 시스템이 도입됐던 시기 바로 이전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였다는 건 아이돌 시대를 상징하는 H.O.T에게는 불행에 가까웠다. 모든 곡을 스스로 완성하고 매체에 휩쓸리지 않는 영향력을 경험했던 대중이 소비문화를 대변하는 H.O.T가 대중문화의 중심이 되는 걸 긍정적으로 바라볼 리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H.O.T는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에 근접했지만 그럴수록 그에 합당한 인정을 받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때문에 멤버 전원이 곡을 써야 했고 가사의 소재는 10대와 학교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됐다. 그것은 굉장히 무리한 실험이었고 아이돌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표출된 상당히 독특한 결과였다. 절대로 모범적이거나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될 답안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당사자인 SM 엔터터인먼트가 그때의 학습 효과를 오늘날에 와서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중은 세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똑같은 잣대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돌을 이해하는 코드는 소비문화임을 관대하게 수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봐주는 것에 있다. 물론 그 성장이 어떤 방식을 지향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연기나 예능을 통해 본인의 재능을 만개할 수도 있고 진정한 뮤지션으로의 성장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여기서 소개하려는 에반은 바로 그 후자의 경우에서 주목되는 이름이다. 클릭-비(Click-B)를 모태로 한 에반의 홀로서기는 거의 조명된 바 없다. 작년에 있었던 망한 가수 재활용 프로젝트인 '쇼바이벌'에서조차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쇼바이벌' 출신은 물론 아이돌의 홀로서기 역사를 살펴봐도 이만큼 안정적인 결과물을 발표한 예는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대중과 매체로부터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원래 클릭-비에서도 주도적인 멤버는 아니었지만 탈퇴해서 홀로서기까지 생겨난 5년의 틈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이야말로 지금의 에반을 가능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단순히 작사/작곡 표기란에 이름이 있다 해서 잘했다는 게 아니고 미국에 가서 재즈를 공부했다 해서 무작정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환경적 요소를 얼마나 잘 활용했고 본인 주도 아래 어떠한 결과물을 완성시켰는가를 확인해보면 답은 나온다. 에반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인 [Pain Reliever]는 그 전제에 부끄럽지 않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사운드도 아니고 멋쟁이들을 자극시키는 음악도 아니지만, 여기에는 아이돌을 벗어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얻었던 것들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전달하려는 고민이 잘 담겨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선 용기 있는 시도이고 긍정적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천편일률적인 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대안을 제시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대안으로 제시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는데도 복제에만 길들여지고 있어 안타깝다. 이게 걸작이고 어떤 분야의 완성을 이룬 작품이란 건 아니지만, 아이돌 출신이 뮤지션으로 성장해가는 과정만큼은 긍정적으로 담겨 있다. 어린 나이에 소모되는 걸 불쌍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아이돌에게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라 믿는 사람들에게 그건 애정이 아니고 방치일 뿐이란 사실을 똑똑히 전하며 이 앨범을 권한다. (문정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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