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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벌 진트 [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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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벌 진트(Verbal Jint)
누명
(2008/Overclass)
8.5


01. 편견  
02. 누명
03. 선고     
04. 망명     
05. 망각         
06. 2008 대한민국 (Feat. San, Swings & Gehrith Isle)  
07. 역사의 간지(奸智)         
08. Tight이란 낱말의 존재이유          
                                                         09. 1219 epiphany
                                                         10. Ad Hoc (Feat. Youngcook & 12MB)          
                                                         11. 배후 (Feat. B-Soap & Youngcook)          
                                                         12. 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함        
                                                         13. Want You (Feat. INC & VON)          
                                                         14. Circles (Feat. 넋업샨, B-Soap, Warmman & 조현                                                            아)          
                                                         15. Losing My Love          
                                                         16. How Long          
                                                         17. Leavin' (Feat. MC Meta, E-Sens & 조현아)                                                                    18. 자고가요            
                                                         19. Drunk        
                                                         20. The Grind          
                                                         21. 불      
                                                         22.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23. 여여(如如)


살다 보면 억울할 때가 있다. 내가 '제대로'라는 확신이 섰을 때는 더욱 그렇다. 혹자는 "나만은 틀리지 않다는 믿음은 얼마나 헛된 것인가"라고 말하며 반문하기도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이 옳다고 믿는다. 정도가 다를 뿐이다.

누명을 쓰고 억울해하는 자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말은 아마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레전드(?)격 격언일 것이다. 시시비비를 따지기에 앞서, 절이 움직일 수는 없으니 두 발 달린 네가 나가라는 말이다. 하.. 귀신같은 말. 절의 입장에서는 판 안 깨지고 소동 막을 수 있어 좋고, 중의 입장에서는 '에잇 더러워 퉤' 하고 침 한번 뱉어버리면 그만이니 서로 간의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는 실로 귀신같은 방안이 아닌가. 그런데 버벌 진트(Verbal Jint)의 [누명]을 듣다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다시 말해 좀 짜증나고 힘들어도 절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버벌 진트라는 중을 앞세워 절을 뜯어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적어도 음악계에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보다 더 개념 없는 말은 "듣기 좋으면 그만 아닌가효? 님, 왜 음악을 평가하려 들죠?" 밖에는 없다. 실제로 버벌 진트에게 그 자신이 '떠나는 중'이 될 마음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곱게 떠날 거면 침 한번 뱉고 돌아서면 그만이다. 구태여 이런 앨범을 공들여 제작해 내놓을 이유가 없다. 물론 버벌 진트의 속내에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어보이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가득하다. 그러나 발걸음이 쉬이 떼어지지 않는다. 왼발은 절 안에, 오른발은 절 밖에 걸쳐 있다. 그리고는 절 안의 사람들에게 앨범을 내민다. "나 너무 힘들어서 이제 떠날 거야. 그런데 그 전에 이 앨범 좀 들어줄래? 일단 여기서 기다릴게."

연주곡이 연이어 흘러나오는 전반부의 구성은 이 앨범이 단순한 '작업물 모음집'이 아닌 일정한 서사와 플롯에 기반을 둔 작품집임을 증명한다.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 곡들은 완전한 순차식 구성보다는 좀 더 복합적인 모습을 띤다. 다섯 개의 곡을 통해 큰 줄기가 짧게 스쳐 지나가고, 각론이 들어선다. 그리고 그 각론들은 현재와 과거, 현실과 회상을 오고 간다. 못마땅한 현실, 자기 항변, 좋았던 기억, 실망과 회의, 떠남, 재확인하는 신념. 제목만 따라가도 얼추 큰 그림이 보인다.

앨범의 음악은 다채로운 듯하면서도 서로 큰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다. 일단 버벌 진트가 직접 구상하고 연주한 곡이 주류를 이룬다. 쓰인 소스의 면모와 리듬감, 소리의 섬세함에 대한 애착이 마치 소울쿼리언스(Soulquarians)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아날로그 사운드다. 반면 외부 프로듀서들의 곡은 최근의 유행을 닮았다. 대표적으로 <2008 대한민국>과 <배후>가 그렇다. 특히 <배후>는 넵튠스(Neptunes)를 위시한 사운드 메이커들의 독특한 소리와 미니멀리즘에 대한 탐구가 돋보인다. 물론 이런 이분법이 완전한 것은 아니다. 버벌 진트의 작업물 중에서도 <누명>이나 <Leavin'>에서는 조금 더 진한 전자음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또 보컬의 피치를 내리거나 이펙트를 입힌 흔적은 릴 웨인(Lil Wayne)이나 티-페인(T-Pain)의 최근 결과물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과 감성의 공존 역시 이 앨범의 특징이다. 버벌 진트는 '디스'로 상징되는 공격적/이성적 성향 외에 다른 여러 모습을 겸비한 뮤지션임에도, 그동안 사람들의 편견에 가로막혀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경향이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쉽사리 상상하지 못한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차가움과 멜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뜨거움을 한 사람이 겸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운 면을 먼저 내보이면 그것에 경도되어 그 차가움을 그 사람의 전부로 단정 짓거나 혹은 다른 면을 보아도 그것을 상당한 의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양 극단의 공존은 실제로 가능하다. 아니,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게 정상이다. 다만 상황과 때에 따라 어느 것을 표출할지 결정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Tight이란 낱말의 존재이유><배후>와 <Losing My Love><Drunk>의 공존은 '모순'이나 '의외'가 아니라 버벌 진트라는 뮤지션 속에 담겨진 여러 모습을 펼쳐놓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표출된 모습에 따라 제각기 조금씩 바뀌는 보이스 톤과 감정이입은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앨범을 다 듣고 나면 의식은 한국힙합이 걸어온 길에 대한 비판적 반성으로 연결된다. 취향과 안목, 감상과 평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말들이 '가짜가 진짜를 욕하는 상황'을 낳았고, 한국 힙합의 짧은 역사와 줄기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혹은 가늠할 의지가 없는) 눈들은 '한국말 라임의 패러다임을 바꾼' 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표하지 않았다(혹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버벌 진트의 A부터 Z까지를 모두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이 뮤지션이 그동안 이런 생각을 해왔고 결국 이런 앨범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힙합의 비극'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그러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자. 한 뮤지션으로서, 또 한 개인으로서 버벌 진트가 그동안 겪었던 고민, 좌절, 회의는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풍부한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여 결국 [누명]을 성취해냈다. 한국힙합을 향한 복잡한 애증이 도리어 음악적 성숙을 가져다 준 셈이다. 그렇다. 나는 방금 '애증'이라고 했다. '증오'가 아니라 '애증'이다. 그 애증의 감정은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 자못 궁금해진다. (김봉현/보다)
                                                                                                               

2008/08/12 00:00 2008/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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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1. diSiac 2010/04/06 19:05  |  M/D  |  Reply

    정말 좋은 앨범에 걸맞는 좋은 리뷰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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