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너의 다큐멘트]
- Posted at 2008/08/23 00:00
- Filed under review/국내

너의 다큐멘트 (2008/Pastel Music)
6.4
01. 너의 다큐멘트
02. 브로콜리의 위험한 고백
03. 우리 처음 만난 날
04. Drama (Feat. 이언)
05. 잃어버린 날들
06. Re
07. 산책
08. Glow
09. 휴가가 필요해
10. 나무
앨범이 발매된 이후 놀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부클릿의 너무나 말끔히 빠진 디자인과 사진들 하며, CF 촬영현장을 떠오르게 하는 앨범 티져 영상에 그녀에게 생각보다 골수팬이 많다는 사실까지요. 역시 그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골수팬 부분이었습니다. 누군가들에게 한희정을 평가한다는 것은 불문율과도 같은 일이더군요. 아니, 확실히 '누군가들'이라는 표현보다는 훨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누구나 하나쯤 마음에 담고 있는 무적의 아이돌. 꽤 많은 이들의 마음 속 그 자리에, 한희정이 있었습니다.
하긴, 그럴 법도 합니다. 10여년에 가까운 활동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죠. 더더(The The)에게 새롭고 색다른 전성기를 열어주었던 시절이며, 글쟁이들과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 모두에게 따스한 지지를 받았던 푸른 새벽 시절. 타고난 서늘한 이미지와 목소리의 매력,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재능까지. 생각해 보면 이제야 인디 씬 몇 대 얼짱이네 하는 화제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 자체가 너무 늦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아무튼 2006년 푸른 새벽의 갑작스런 해체 이후 홍대에서 한희정의 모습을 찾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각종 무대에 기타 하나 메고 부지런히 오르는 그녀가 있었죠. 그러길 1년 6개월 여,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번째 앨범 [너의 다큐멘트]가 발매됩니다.
고백하자면 사실, 앨범을 듣기 전까지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간의 무대만 떠올리곤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조곤조곤 노래하는 앨범을 상상했었거든요. 망상은 말끔히 깨졌습니다. 어쿠스틱 기타가 기본이 된다는 것까지는 얼추 맞았지만 이후가 틀렸죠. 앨범 모든 곡들의 작사 작곡은 물론, 프로듀싱까지 직접 해 낸 한희정의 노래들은 의외로 일렉트로닉 색채가 강합니다. 밴드 구성의 접근도 많고요. 전자는 앨범에 엔지니어로 참여했고, <Drama>에서 목소리로도 도움을 준 밴드 못(MOT)의 이언의 영향이 클 겁니다. 게다가 이 의외성은 꽤 훌륭한 결과물로 나타납니다. 앨범의 첫 곡 <너의 다큐멘트>에서 세 번째 노래 <우리 처음 만난 날>까지 앨범 전반부가 보여주는 긴장감을 보세요, 멋집니다. 청순하고 귀여운 매력만 있는 줄 알았던 이웃집 소녀에게서 의외의 여성스러움과 섹시함을 발견한 기분이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즈음에서 또 하나의 망상이 깨집니다. 깨진 건, 한희정의 데뷔 앨범은 무척 특별할 거라는 생각입니다. 여기에도 또 하나 얼추 맞힌 점이 있다면,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는 특별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들 모두가 아쉽습니다. 화려하게 문을 열어젖힌 앨범은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긴장감을 잃습니다. <Drama>부터 <Glow>까지 이어지는 앨범의 허리 부분은 이 노래가 저 노래 같고 저 노래가 이 노래 같은 몽롱함을 선사합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싶지만, 아마도 각 곡들이 비슷한 작법으로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 짧은 곡 길이도 앨범에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완벽한 팝송이란 3분을 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한희정이 만드는 노래들과 맞는 궁합은 아닌 듯합니다. 3분 전후 길이의 노래들을 듣고 있다 보면 '조금만 더….'의 애틋함이 아닌 '여기서?!'의 당황스러움이 먼저 떠오르거든요. 소설의 흐름으로 설명하자면 '전개' 부분에서 모두가 살아가기를 멈추는 기분이랄까요. 앨범 속 적지 않은 노래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앨범의 전체적인 인상 또한 그렇게 흘러갑니다. 무척 아쉬운 부분입니다.
[너의 다큐멘트]는, 적어도 그간 한희정이라는 뮤지션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어필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앨범입니다. 하지만 보여주는 카드가 너무 적어요. 그나마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카드들이고요. 실력 있는 싱어 송 라이터와 좋은 보컬로서의 한희정을 드러내기에는 나쁘지 않은 앨범입니다만, 카리스마 있는 뮤지션 한희정을 보여주기에는 어딘지 부족한 앨범입니다. 이번 앨범에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혼자 해 낸 그녀가, 다음 앨범에서는 더 좋은 프로듀서나 더 많은 조언자들과 함께 작업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아뇨, 한희정의 능력이 부족하단 얘기는 아니에요. 다만 그런 경우, 하나보다는 둘이, 둘 보다는 셋이 낫다는 진리가 과연 어떻게 적용될까가 궁금할 뿐입니다. 그리고 전, 한희정이 그곳에서 또 한 번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걸고 베팅해봐도 될까요. (김윤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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