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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다 지난 마당에 드러내놓고 쩔쩔 맬 순 없어도 마음속에선 그 시절 못지않게 넘실대는 번뇌의 파도를 타고 넘는 소심한 포스트 19금 세대. 그들을 보듬어 안아 주는 레어 아이템이라 더욱 소중한 아이언 앤 와인(Iron & Wine). 3분 카레에 순한 맛, 약간 매운 맛, 매운 맛이 있다면 그에겐 찌질, 덜 찌질, 안 찌질이 있다. 그 중 덜-안 찌질 연합을 한 큐에 제압하고 감동의 우위를 점하는 찌질 송 퍼레이드. 연식 좀 되시는 언니 오빠들을 위한 샘 빔(Sam Beam)의 매가리 없는 노랫가락 탑 화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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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The Sea And The Rhythm> [The Sea & The Rhythm] EP (2003/Sub Pop)

오늘 밤 우리는 바다 되고 소금기 머금은 바람 되어, 내가 네 젖가슴에 입술을 대고 내 소금기 젖은 땀과 손이 네게 닿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네 가슴보다 달콤한 너의 언어가 네 입술에서 내게로 흘러오겠지, 라 노래하지 않는가. <The Sea And The Rhythm>은 돌려 말할 것 없이 ‘어느 밤에 생긴 일’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다 큰 남녀 한 쌍이 깊고 고요한 밤에 달빛처럼 서로를 어루만지며 파도처럼 흔들릴 일이 달리 있겠는가. 두 사람에겐 어둠이 있고 둘만의 공간이 있으며 오직 서로가 있고 연인들 사이의 일이 벌어질 뿐. 부처님도 모르신다지만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그 밤.

살아가기 위해 헉헉대며 달려 온 낮 동안의 모든 소요와 힘겨움이 해가 지듯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밤. 해가 사라지는 궤적을 좇다 밤이 되자 서로에게 내려 앉아 달빛처럼 서로를 어루만지는 손. 몸에 닿는 연인의 손길에 파도처럼 흔들리는 몸. 내 등에 드리운 네 검은 머리 결에서 풍기는 내음과 내 살갗에 느껴지는 네 숨결. 검은 물결과 검은 바람이 창을 통해 흘러오는 밤, 달빛처럼 하얗게 빛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샘 빔의 노래는 서로가 바다 되는 꿈을 꾸는 듯 내밀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장면을 담담히 보여주는 것이 샘 빔이 곡을 풀어놓는 스타일이지만 이 곡은 다르다. 뱉지 못하고 누르는 듯 들려오는 노래 소리와 자신을 한껏 낮춘 기타는 이 공간과 시간이 차마 부서질까, 사라질까 애태우며 조심스럽다. 그가 노래를 멈추고 한 호흡 고를 때, 훔쳐보는 시선처럼 공간을 침범하는 반조는 우리가 듣고 있는 이 장면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순간인지 문득 일깨운다. 이 이후의 일은 두 사람에게 맡겨두어야 하지 않겠냐는 듯 반조를 조용히 밀어내며 곡을 맺을 때 우리 역시 바라보고 있던 밤의 장면에서 퇴장한다. 그 둘만을 남겨 둔 채. 관음증이 사냥하기 좋은 밤으로 우리를 이처럼 조용히 초대했다 다시 물러가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좀체 없을 테다.

꽃 한 송이, 길 위를 구르는 자갈, 탁자에 놓인 우유까지 곡에 등장하는 어느 하나 상징을 품고 있지 않는 것이 없던 여느 곡과는 달리 여기에는 어떤 장식도 없다. 밤, 달, 바다, 파도, 바람 그리고 그와 그녀뿐. 검고 깊은 그 밤, 낮을 버티기 위해 입고 있던 모든 거죽을 내던지고 태어나던 순간처럼 벌거벗은 채 서로를 마주한 연인을 가사 역시 거의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그리고 있다. 사랑이 멀리 있으면 찾아 헤매지만 손닿을 곳에 다가오면 결코 자신을 내던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노래했던 샘 빔. 설렘과 황홀함을 믿기엔 놓쳐 버린 지난 사랑의 그림자가 너무 짙었던 아이언 앤 와인의 세계를 돌아보면 이 노래는 19금 빔 교수의 화이어한 밤이 아니라 낮 시간에 빼앗기지 않으려 깊은 곳에 감추었던 고백이다. 자신은 언제고 사랑하는 여인과 달과 바다와 하나 되는 꿈을 꾸고 있노라고. 서로에게 있어 젖과 꿀이 흐르는 마지막 안식처인 그들, 사람이란 탈조차 벗어 던진 채 마주할 수 있는 누군가는 꼭 그만의 환상이나 안식처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그 밤을 지켜주자. 어떻게? 순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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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Passing Afternoon> [Our Endless Numbered Days] (2008/Beatball)

삶과 죽음, 태어난 자와 죽어가는 자, 남겨진 이와 떠난 이가 함께 빚는 유한하고도 무한한 우리의 나날을 (Our Endless Numbered Days) <Passing Afternoon>은 관조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행복한 나날을 상징하는 꽃, 부겐빌리아는 어느 여름 찬란히 피었다 가을바람에 진다. 떨어진 이파리는 태워져 겨울이 되자 씨앗만이 병에 남아있다. 봄이 돌아올 자리에서 들어선 마지막 피아노 선율 속에 우리는 알게 된다. 봄이 오면 씨앗이 다시금 땅에 뿌려질 것임을. 부겐빌리아가 아름답게 지는 것은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금 피어남을 알고 있기 때문임을. 마치 우리의 나날에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다는 듯 문득 입을 떼며 열었던 곡을 짧은 선율을 반복하는 피아노 연주로 닫는 샘 빔. 오래도록 이어지는 선율의 순환은 부겐빌리아 꽃과 씨 그리고 우리와 우리 아이들처럼, 유한한 존재기에 오히려 무한의 시간 속을 살 수 있는 탄생과 죽음의 순환에 닿아있다.

어느 새 열렸던 창문은 닫히고 어느 새 허니문은 끝나고 어느 새 결혼반지는 사라지고 - 여름처럼 언제고 찬란할 것 같았으나 그렇게 어느새 시든 그녀의 나날. 흘러가 버린 어느 오후처럼 이미 사라지고 없는 시간과 떠나고 없는 사람. 하지만 그리 많은 것을 잃고도 그녀는 여전히 불을 놓을 땅을 택하고 어머니가 부르던 찬송을 믿으며 살아가리라 택하고 어디로 나아갈지 택한다. 또 그녀는 여전히 퀼트 침구와 누군가 입을 옷을 짓는다. 애써 지은 퀼트는 바람에 날리고 옷은 헤질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선택한, 일상을 유지하는 행동의 반복은 단조로운 음계를 오고 가는 반복적 인 멜로디와 맞물려 서로의 의미를 넓힌다. 필멸과 고독이란 존재적 한계 앞에 한낱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소모적인 일상의 반복뿐이지만 일상을 묵묵히 이어 나가는 것이야 말로 우주적 순환 앞에 인간으로 품위를 지키는 선택이라 말하는 듯. 그래서 <Passing Afternoon>을 이루는 반복은 죽음을 극복하는 탄생, 상실을 극복하는 재생의 리듬이다.

[Our Endless Numbered Days]를 방문한 우리에게 그 세계를 갈무리해 들려주고 우리를 조용히 배웅하는 이 곡을 어떻게 압축하면 좋을까. '사랑이란 너무 지독한 농담이라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라며 [XO]를 닫았던 그 곡.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를 듣는 이에게 <I Didn’t Understand>가 있다면 아이언 앤 와인에는 <Passing Afternoon>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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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Jezebel>
[Woman King] EP (2005/Sub Pop)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애타게 이세벨(<Jezebel>)을 찾는 노래가 끝나면 남는 질문은 이세벨이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다. 살았을까. 죽었을까. 어떻게 죽었을까. 개한테 먹혀 죽었을까. 이토록 수줍은 사랑 노래에 피 튀기는 장면이 도사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신원조회 들어간다. 이세벨은 누구인가. 구약성서 여성 출연자. 나쁜 일 한 번 한 적 없이 그 분의 어여쁨 받던 야합 왕을 충동질하여 악에 빠지게 한 죄인. 사태는 결국 이 지경으로. '이세벨에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개들이 이스르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 찌라.'

샘 빔은 하드코어한 이 커플을 현대에 되살려 놓았다. 천상의 징벌은 이제 더는 의미가 없다. 그들은 지금 잠깐 웃고 오래 우는, 사랑이란 징벌을 피와 살과 뼈와 생명을 모두 건 채 겪고 있으므로. 찢긴 옷을 땅에 떨어트린 채 개에 쫓기는 이세벨.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었노라고 그녀를 노래하는 야합. 노래는 이세벨이 개에게 뜯기는 마지막 장면은 보여주지 않는다. 차마 보여줄 수 없어 가린 장면이라면 궁금할 것도 없으련만. 사랑한다는 고백과 똑같이 황홀한 목소리로 저기 이세벨을 향해 내달리는 개들을 보라고 노래하는 야합을 보면 이 끝은 그렇게 명쾌할 것 같지 않다.

사건의 주범은 야합일 수 있다. 치사한 놈이 지 혼자 살겠다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그 분 오시어 이세벨을 개 먹이로 던져 줄 때 옷을 찢으며 목숨을 구걸했던 전적을 보아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순진한 나를 꼬셔 이런 난리를 겪게 한 네 뇬,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 이러고도 남을 야합이다. 사랑이란 지독한 열병이며 자아가 으스러지는 혼란의 블랙홀 아닌가. 그리고 어쩌면 이세벨이 스스로 선택한 일일 수 있다. 송스 오하이아(Songs:Ohia)도 일찍이 암사자(<Lioness>)를 물로 들여보내며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대 턱에 찢기든 그대 품에 안기든 나는 가야 하리라 이 나일 강을 건너 그대에게로.'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나일 강이 나일 강이 아니요 황천길임을. '그대 이빨이 내 심장을 원한다면 기꺼이 꺼내주겠다'던 사자처럼 이세벨도 자기 살점을 내어주는 것이 운명임을 받아들였던 게 아닐까. 사랑을 완성하는 제의로써의 죽음. 언제나 남자보다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하며 주어진 상황에 의연한 아이언 앤 와인의 여성들을 생각하면 야합의 복수보다 이세벨의 선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둘 중 답이 무엇이더라도 결국 이들은 어리석은 사랑이었으나 너무나 사랑했나 보다.

그런데 얼씨구. 뮤직비디오를 보자. 피 튀기는 하드코어와 삼만 리 먼 곳에 있을 것 같은 남녀 한 쌍. 데이트 한 번을 더듬더듬 겨우 해내는 이 커플. 입술 하나 딱딱 못 맞출 것 같은 수줍은 사랑의 리듬에도 너무나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Jezebel>. 이세벨이 죽었을까 말았을까 라는 질문은 틀렸나 보다. 곡 분위기와 전혀 다른 가사를 심어두는 걸 좋아한다는 샘 빔이 수풀 속에 도사린 위험 같은 반전을 원했던 건 아닌가 보다. 수줍고 황홀한 설렘으로 그려진 사운드와 먹고 먹히는 파국으로 치닫는 가사. 사랑이 그 자체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품고 있듯 노래에도 두 장면이 그저 공존한다. 어느 것이 덜 중요하고 더 중요하지 않다. 잠깐 웃고 오래 우는 거면 어때. 사랑이 원래 그런 걸.

빛과 어둠. 플러스와 마이너스.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맞물린 모습이 진실한 세상의 모습일 거라고. 빛 아래 드리운 어둠을 보지 못하는 순진함도 어둠에 매료되어 빛을 외면하는 어리석음도 음양의 조화를 읊는 샘 빔에게 이런 꾸사리를 먹으리라. 그래서 네가 포스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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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Jesus The Mexican Boy> [The Sea & The Rhythm] EP (2003/Sub Pop)

동방박사 안내한 별 빛과 마구간이 아니라 독립기념일 불꽃이 터지는 밤 어느 트럭 짐칸에서 태어난 멕시칸 소년 예수. 길 위에 선 삶을 이어가는 지친 이들에게 찾아온 그는 노래하는 이와 함께 달렸으며 취했고 여인을 만나고 품었다. 그리고 지금 멕시칸 소년 예수와 함께 했던 나날은 흘러가고 없다. 사람들에게 지워진 계절이 되었다. 천국처럼 아름답고 시험처럼 서글펐던 두 사람의 나날을 아직 기억하는 그 조차 잊지 않았다고 노래할 수 없음은 멕시칸 소년 예수가 조용히 입 맞추었을 때 그의 마음속엔 유다가 있었기에 부끄러워했던 탓이다.

코드 몇 개로 이어가는 단조로움이라 책잡히곤 하는 아이언 앤 와인의 곡 중 가장 단조로운 <Jesus The Mexican Boy>. 이 곡을 어떤 변수도 없이 단순하게 직조한 것은 서프잔 스티븐슨(Sufjan Stevens)이 <To Be Alone With You>를 가장 낮은 자세로 임해 불렀던 이유와 닿아있을 것이다. 그 'You'가 평균치 한국인 정서로 가늠해보아 도출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치인 사랑하는 그대 내지는 내 님이 아니라 저 멀리 하늘에서 영광 다 받으신다는 그 분임은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킬 법한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 죄책감이야 말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내린 지옥이 아니겠는가 라는 물음. 내면의 지옥을 부둥켜안고 계속 걸어갈 수밖에 없는 삶이란 슬픔. 그 속에 조용히 빛나는 자기 초월에의 의지. 특정 신앙에 대한 믿음 유무를 넘어서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의 지점을 두 사람은 노래 안에 풀고 있다.

그리고 그 곳에 아이언 앤 와인의 독특한 시간적 리듬이 더해져 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과거로부터 달려오는 유령이 두려운 사람들. 그들이 가진 것은 아직 싸우고 이겨낼 세상이 남아 있는 성장의 리듬이 아니라 지나 온 시간과 자기 욕망에 뒤엉켜 구르는 성인의 리듬이다. 과거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리듬. 놓친 후에야 깨달은 잊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시간. 그 시간을 노래함은 우리를 밟고 올라선 것들만큼 역시 많은 과거를 밟고 서 있는 우리에 대한 일깨움이다. 과거와 과거의 자신을 이해하려 발버둥 치는 우리 모습에 대한 조심스런 격려다. 지난날을 기억하는 것은 그 시간을 다시 한 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간을 쪼이고 또 쪼이는 프로메테우스처럼 가혹한 시간의 되새김질을 서글프며 아름다운 장면 속에 고요히 새겨 놓은 샘 빔. 과연 연식은 못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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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Swans And The Swimming> [The Creek Drank The Cradle] (2008/Beatball)

해설지를 쓰고 있을 때 알았다면 보너스트랙이라 얕보지 말고 진지하게 한 모금 츄라이 해보라고 거들어 주었을 텐데. 어쨌거나 [The Creek Drunk The Cradle] 보너스트랙으로 들어간다는 걸 듣고선 꽤 좋아했다. 보너스 없이도 충분히 빛나지만 흉흉한 시류에 따라 꼭 넣어야 한다면 <Swans And The Swimming>은 상당히 괜춘한 초이스가 아닌가. 무적의 찌질 오형제까지 넘보진 못 해도 이 곡이 가세하며 더욱 공고해진 찌질 송 연합을 생각한다면 개념찬 초이스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고요한 밤 거룩한 어둠에 묻힌 그 밤. 태평양 어느 섬인지 저 푸른 초원 위에 지은 그림 같은 집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서로를 보듬고 함께 누운 그 밤. 그 어둠을 더듬는 남자의 시선이 <Sea And The Rhythm>라면 어둠이 떠오르는 태양 빛에 침범 당한 후 홀로 남은 여인의 읊조림이 <Swans And The Swimming>이다. 벗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던 그 밤과 그 방 안을 불러오는 향수 냄새를 기억하는 그녀.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가올 필요 없다는 그녀. 분명 함께 누웠던 사내보다 관능적이다. 설득력 있지 않나. 나신으로 힘을 갖는 쪽은 여인 아닌가. 세상의 비밀이 펼쳐지듯 열리는 여인에 비해 벌거벗은 사내라니. 머리 깎인 삼손처럼 벌거벗은 사내는 무력하다.

남성보다 자기 자신에 적극적이고 대범한 여인들은 아이언 앤 와인 곡에 꾸준히 등장한다. 세상만사 삼라만상을 통달한 관조의 달인일 것 같은 샘 빔이 유일하게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접근하는 존재- 그 이름, 여자 아닌가. EP 한 장을 고스란히 여성에게 할애 했던 샘 빔. 그것도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성경을 빌어다 둘러치며 울렁였던 그. 검을 들고 세상에 피를 뿌리는 여자 왕이기도 했고 먹고 먹히는 지독한 사랑의 여인이기도 했고 에덴동산 파괴의 주범이기도 했던 [Woman King] 속 그녀들. 파도치면 휩쓸릴 듯 울렁이면 멀미할 듯 전전긍긍한 <The Sea And The Rhythm>의 사내 앞에 'We Are Born To Fuck Each Other' (<Evening On The Ground>)라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여인이 서 있다면 어찌 두려움과 떨림이 동시에 밀려오지 않겠는가.

집은 땅 위에 세우지만 가정은 여자 위에 세워진다는 어느 속담과 자기 배 속에 남자를 움켜쥐고 있을 수 있는 존재가 공존하는 샘 빔의 여성상 중 <Swans And The Swimming>은 후자이다. (반면 보너스트랙으로 같이 실린 <Hickory>는 전자라 하겠다.) 그리고 후자에 같이 엮일 동기동창에 대해 이 곡은 특별하다. 그와 그녀의 어조는 다를 지라도 마음 한 끝은 닿아 있다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Sea And The Rhythm>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네 가슴보다 달콤하던 나를 향한 네 속삭임'은 <Swans And The Swimming>에선 창 밖 빗소리처럼 속 시끄럽게 마음에 울린다. 아직 서쪽으로 저물지 않은 혹은 동쪽에서 밝아오는 태양에 한숨지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너와 나만의 세계가 뜨거운 태양 빛과 낮 동안의 허덕이는 삶에 사라지고 시들어가는 것이 두려운 그와 그녀 그리고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다. (최훈교/보다)


2008/10/30 13:00 2008/10/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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