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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밴드의 [Bus]는 좋은 앨범이다. 김창완 밴드가 산울림의 상징성을 대신할 순 없겠지만 하나의 밴드로선 충분히 훌륭하다. <길>과 <그땐 좋았지>와 <너를 업던 기억>을 연이어 들으며 '좋은 음악'이 뭔지에 대해 생각했다. [Bus]는 김창완의 따뜻하고 내밀한 정서가 좋은 연주를 만들 때 어떤 음악이 나오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음반이다. 김창완의 말대로 산울림과는 또 다른, 좋은 음악이고 좋은 음반이다. 김창완을 두 번째 만난 날, 이번에도 역시 여의도에 있는 한 공원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제 그의 옆에는 4명의 '밴드' 멤버가 함께 하고 있었다.

일시: 2009년 9월 16일(수) 11:00~12:00
장소: 여의도 공원
대담: 김창완 밴드 vs 김학선
사진: 이파리 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학선: 처음에 밴드 결성한 건 언제였나?

김창완: 글쎄, 정확한 날짜는 좀 애매한데 결성하자마자 EP 레코딩 작업을 했다. 5월 정도에 마포구에 들어왔으니까 1년 좀 넘은 것 같다.

김학선: 멤버 분들은 김창완 씨께서 다 직접 영입을 한 건가?

김창완: 산울림 시절부터 상훈이하고 양평이는 같이하고 있었다. (※ 김창완은 평소에 하세가와를 한국식 이름인 김양평으로 부른다.)

이상훈: 산울림 때 내가 키보드 세션을 했었고, 그렇게 알고 지내다가 원식이 형이나 다른 멤버들도 자연스럽게 김창완 밴드의 멤버들로 자연스럽게 구성이 됐다.

김학선: 그럼 다 알음알음으로 구성이 된 거였나?

김창완: 그런 셈이다. 민우 같은 경우는 원식이가 10년 전에 한 번 연주해보고 계속 연정을 품고 있다가(웃음), 밴드를 만들 때 소개를 해줘서 함께 하게 됐다.

김학선: 그럼 다른 멤버들은 함께 김창완 밴드를 하자고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이상훈: 당연히 영광스러웠다.(웃음) 산울림 때 건반 세션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었는데 함께 밴드의 구성원이 된다는 건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김학선: 하세가와 씨 기분도 남달랐을 것 같다. (※ 하세가와 요헤이는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신중현과 산울림 등의 한국 음악에 매료돼 한국에 들어와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세가와: 물론이다. 산울림에선 2005년부터 연주를 했었는데 그때는 기존에 만들어졌던 음악만을 연주했었다. 그것도 기분이 굉장히 좋았지만 이제 밴드가 돼서 같이 음악을 만든다는 사실이 또 다른 기쁨을 주고 있다.

김학선: 이민우 씨는 지금 로다운 30(Lowdown 30)에서도 드럼을 연주하고 있는데, 다른 멤버 분들도 각자 따로 활동하고 있는 게 있나?

이상훈: 주변 동료 뮤지션들과 교류를 많이 하는 편이다.

최원식: 친구들 앨범 작업할 때 도와주고 하는 정도다.

김창완: 각자 세션 활동을 다 하고 있고, 원식이는 학교도 (강의) 나가고, 거의 그런 정도다.

김학선: 합주는 어느 정도 하고 있나?

김창완: 보통은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하고 있다. 공연 있을 때는 좀 더 자주 맞춰보는 편이고. 지금까지는 거의 앨범 작업을 위주로 진행했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했었다.

김학선: 혹시 제일 처음에 합주했던 음악이 뭐였는지 기억하나?

이상훈: 산울림 노래였을 거다. 옛날에 있던 노래하면서 새로운 노래가 점점 더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쳤다.

김학선: 김창완 씨는 밴드를 택한 이유가 뭐였나?

김창완: 일단 밴드 음악이 좋다. 그리고 내가 아는 음악세계에만 갇혀있기보다는 나도 모르는 어떤 세계를 가고 싶었다. 실제로 지금 여기 있는 멤버들이 나에게 열어주는 새로운 음악적 경험이라는 건 나 혼자서 구현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김학선: 만약 솔로로 활동하고 세션을 이용해서 앨범을 냈다면 지금 음악과 큰 차이가 있었을 것 같나?

김창완: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앨범 같은 경우에는 멤버 개개인의 역량이 잘 발휘가 돼있기 때문에 솔로로 했다면 많이 달랐을 것이다. 내가 원하던 음악세계 이상의 것이 나왔다. 밴드를 택한 건 바로 이런 걸 원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만든 세상에 안주하는 사람은 자기를 가두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나도 음악을 통해서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데 지금 멤버들은 나에게 새로운 음악세계를 열어주는 동료들이다. 밴드 음악은 그런 게 참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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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이제 첫 정규 앨범이 나온 건데, 앨범 작업 들어가기 전에 "어떤 앨범을 만들자"고 얘기가 된 게 있었나?

김창완: 각자 느낌은 다르겠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아마 다섯 명 모두 다 몰랐을 것이다. 우리가 앨범에 담는 건 멜로디와 가사만이 아니다. 멜로디와 가사는 그저 가이드라인일 뿐이고 거친 지도일 뿐이다. 그 안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진짜 숲 냄새가 나고 하는 건 하다 보면 다 행간에서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앨범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선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상훈: 나도 역시 예측하지 못했다. 처음 작업하면서는 막연히 EP보다는 좀 더 거친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까 그것과는 또 달랐다. 앞으로도 예측은 못할 것 같다.

최원식: 심지어 녹음이 다 끝나고 나서도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해 했다.(좌중 웃음) CD로 만들어지면 어떤 사운드가 나올까 많이 궁금해 했다.

김학선: 지난 EP와 비교하면 어떤가?

최원식: 기본적인 느낌이나 사운드에선 크게 변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The Happiest] 같은 경우에는 심하게 표현하면 강박적인 '젊음'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할 때 아주 조금일지도 모르지만 '뭔가 보여주겠다'는 기분도 있었던 것 같고, 그 즈음에 굉장히 들떠있었고 신나있었다. 즐거웠던 느낌은 똑같은데 이번 앨범에선 조금 더 차분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방금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었는데 나온 걸 들어보니까 녹음하고 작업하고 할 때의 느낌은 잘 반영이 된 것 같다.

김학선: 그럼 이번 앨범은 만족스러운 건가?

최원식: 아니다. 만족스럽진 않다.(웃음)

김학선: 어떤 부분들이 아쉽나?

최원식: 더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김창완: [The Happiest]하고 이번 [Bus] 앨범은 레코딩 엔지니어를 맡아준 나카무라 상의 오랜 연륜이 지금의 음악 색깔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의 음악적인 상상력이 구현되는 데도 나카무라 상의 공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김학선: 방금 말씀한 나카무라 소우이치로(Nakamura Soichiro) 씨가 사운드 디렉터로 표기가 돼있는데, 이게 레코딩 엔지니어와는 차이가 있는 건가?

김창완: 엔지니어가 우리의 소리를 잘 만들어낸다고 한다면 나카무라 상은 우리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거기에 상상력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했다. 우리의 음악이 갔으면 하는 소리의 지향점을 마련해줬다. 색깔을 잘 만들어줬다. 다른 앨범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 앨범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뉘앙스는 나카무라 상의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거의 연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우리의 연주만큼이나 중요한 조언들을 해줬다. 거기에서 우리의 연주 스타일을 정할 수 있었다.

김학선: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나?

하세가와: 알게 된 지는 15년 정도 됐다. 한국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분이 예전에 밴드 활동을 했었는데 내가 일본에 있을 때 했던 인디 밴드와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또 일본에 유라유라 제국(ゆらゆら 帝國)이라는 유명한 밴드가 있는데 그 밴드의 앨범에서도 엔지니어를 했었다. 그 음반을 민우 씨가 듣고 "사운드가 좋다, 같은 일본인이니까 혹시 알지 않냐?"고 물어봐서 '그럼 한 번 부탁을 해볼까.' 하고 연락을 하게 됐다. 정말정말 바쁜 분이라 굉장히 어렵게 섭외를 했다. 지금 뉴욕에 있고 굉장히 바쁜 상태였는데 우리가 부탁을 하자 3일밖에 시간이 없으니까 그 안에 끝내자고 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 딱 맞춰서 3일 만에 작업을 끝냈다. 기본 녹음은 3일 만에 다 끝내고 나머지 작업까지 해서 1주일 만에 모든 작업을 마쳤다.

김학선: 나카무라 씨가 한국에 와서 녹음한 건가?

김창완: 그렇다. 안 되면 우리가 가서 하려고도 했는데 와준다고 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김학선: 녹음을 원-테이크로 끝냈다고 들었다.

김창완: 거의 그런 셈이다. 기본 녹음은 다 원-테이크로 했는데 거기서 나오는 울림이 요즘 흔히들 하는 멀티 레코딩이나 오버 더빙과는 사뭇 다른 감동을 준다.

김학선: 혹시 원-테이크로 한 게 나카무라 씨의 일정에 맞춘 측면이 있었던 건 아닌가?

김창완: 처음부터 나카무라 상이 원했던 사운드였다. 녹음하는 공간 자체를 나카무라 상이 디자인했다. 음향 환경을 나카무라 상이 만들어놓고 우리가 시작을 한 거기 때문에 다른 녹음 작업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사운드였다.

하세가와: 나카무라 상은 한 번에 원-테이크로 녹음을 못하는 밴드는 밴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다. 

김창완: 드럼도 이름 있는 고급 드럼들 쓰지 않고, 어마어마하게 녹이 슬어있는 드럼을 선택해서 그걸 가지고 소리를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민우: 나카무라 상이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가장 잘 낸다고 하면서 그 드럼을 원했다. 

김창완: 그 드럼, 사진 찍어놓을 걸.(좌중 웃음) 공연 때 그 드럼 갖고 해볼까?

이민우: 한 번 해봤는데 안 된다. 전혀 다른 소리가 나온다. 나카무라 상 정도의 엔지니어가 아니면 원하는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김학선: 원-테이크로 가고 그 위에 입힌 건 기타 솔로 정도가 다인가?

김창완: 거의 그 정도다. 

하세가와: 어떤 곡들은 기타 솔로까지도 다 원-테이크로 갔다. 

이상훈: 편성상 도저히 한 번에 가기 어려운 것만 제외하고는 다 원-테이크로 갔다고 보면 된다.

하세가와: 3일 안에 모든 기본 트랙을 해야 하는데 만약에 기타 솔로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전체를 다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분류를 좀 했다. 이 곡은 기타 솔로를 따로 가야겠다거나, 이 노래는 같이 쳐도 되겠다, 이렇게 구분을 해서 더빙을 했다.

김학선: 사운드 부분에 관해서만은 다들 만족을 하는 것 같다.

최원식: 그건 또 아니다.(좌중 웃음) 더 하고 싶은 게 많았다.(웃음) 작업을 하다 보면 예상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파트에서 약간씩은 물러선 느낌도 있고 포기한 느낌도 있고 그렇다. 조금 더 해볼 걸, 하는 미련이 많이 남는다.

김학선: 김창완 씨는 어떤가.

김창완: 난 만족스러운 편이다. 근데 내가 왜 <길>에서 스트로크를 친 건지 이해가 안 간다. 거기는 그냥 키보드만 나왔어야 하는 건데.

하세가와: 아, 어딘지 알겠다.

김창완: 그거 들을 때마다 거슬려서.(좌중 웃음)

최원식: 이런 부분이 만약 멀티 트랙으로 녹음을 했다면 그냥 지우고 가면 되는 건데 원-테이크로 녹음을 하다 보니까 좀 아쉬워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점들 때문에 더 재미있다는 생각도 든다.

김학선: 다른 분들도 그런 아쉬움 하나씩은 다 갖고 있는 건가?

이상훈: 다 말 안 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긴 하다.(좌중 웃음) 

김학선: 근데 김창완 씨가 말할 때 다들 공감하는 거 보니까 다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하세가와: 그렇다. 근데 예를 들어서 방금 얘기한 것처럼 기타 연주를 빼고 싶어서 기타 마이크에 녹음된 소리를 지운다고 해도 다른 파트 마이크에 그 소리가 들어가 버려서 어떻게 해도 지울 수가 없는 거다. 계속 아쉬움이 남고, 들을 때마다 그때 왜 이랬을까,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 순간이 우리 밴드 멤버들이 함께 한 거니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훈: EP에 있는 <우두두다다>에서는 웃는 소리도 들어가 있다.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넣은 거다.

김창완: 그게 다 나카무라 상이 의도했던 거였다.

김학선: 그래서 김창완 씨는 <길>이 계속 신경 쓰이는 건가?

김창완: 찾자면 많이 있는데 그게 특히 걸린다. 앨범 전체를 놓고 봤을 때도 "이 앨범은 완전한 작품입니다"라고 얘기하기보다는 "아직은 미완입니다"라고 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이 앨범에 진정성을 더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우리가 완전합니다"라고 선언하지 못하는 게, 다음 앨범을 위한 무언의 약속이며 우리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나 음악의 도정에 있다, 이런 이야기이다.

김학선: 음악 하시는 분들 만나면 자신의 앨범을 아예 안 듣는 분도 있고, 계속 반복해서 듣는 분도 있다. 멤버 분들은 어떤 편인가?

이상훈: 나는 즐겨 듣는 편이다.(웃음)

최원식: 나도 앨범이 나오고 계속해서 들었다. 아까도 했던 얘기지만 녹음이 끝날 때까지도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었다. 마스터링을 일본에서 했기 때문에 정말 많이 궁금해 하며 기다렸었다. CD로 나오기 전에 파일로 미리 받아서 들었고, CD 받고 나서도 지금까지 2주일동안 계속 해서 듣고 있는 중이다.

김창완: 근데 파일하고 CD하고 사운드가 너무 다르다. 어쩌면 그렇게 다르게 들리는지. 그래서 아직까지는 CD라는 포맷이 막강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세가와: 이번 앨범 마스터링을 나카무라 상이 하는데 옆에서 처음 들었을 때는 '이 정도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조금 만지고 "이 정도면 되겠다"고 얘기하는데 처음에는 우리가 합주했던 수준에서 조금 나아진 정도로만 들려서 우려를 좀 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크게 들으니까 확실히 다르게 들리더라. 작게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크게 들으니까 되게 티가 많이 난다.

김창완: 나카무라 상이 마스터링은 일본에 있는 자기 스튜디오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양평이가 혼자 일본에 가서 작업하는 걸 보고 왔다.

김학선: 앨범을 들으면서 굉장히 따뜻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김창완: 그렇다. 거의 LP 수준의 느낌일 거다. 나카무라 상 심성 자체가 그렇게 따뜻한 분이다. 또 유쾌하기도 하고. 그런 성격이 사운드에도 반영이 된다. 반복해서 하는 얘기지만 우리 밴드 색깔에는 나카무라 상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김창완 밴드의 6번째 멤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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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그런데 이번 앨범에 완전한 새 노래는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김창완: <Good Morning> 같은 노래는 시의성 있게 들리지만 이게 사실은 <2004년 10월 10일>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만들어져있던 노래다. 2004년 10월 10일에 만들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 아주 오래 된 노래들도 있다. <결혼하자>나 <길> 같은 노래들은 만든 지 무척 오래 된 노래들이다. 지금 음악과는 사뭇 다른 통기타 위주의 노래들이었다. 

김학선: 그렇게 예전 노래를 넣은 건 노래가 부족해서였나?

김창완: 사실은 작년에 낸 [The Happiest] EP를 포함해서 EP만 서너 개 낸 다음에 정규 앨범을 발표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The Happiest]보다 더 도발적인 노래들을 모은 EP를 내고 나중에 합본을 낼까 생각을 했었는데, 하다 보니까 멤버들 의견이 정규 앨범 쪽으로 확 기울어졌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놨던 노래들 가운데 멤버들이 고른 노래들을 앨범에 수록했다. 

김학선: 다른 멤버들은 직접 곡을 쓸 생각은 하지 않았나?

하세가와: 각자 써놓은 노래들은 있다. 그런데 합주해보고 "이건 좀 아닌데"라는 얘기 들으면 상처 좀 받지 않나.(좌중 웃음)

이상훈: 솔직히 말하자면 선생님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다. 곡들이 정말 너무 훌륭해서 그 곡 안에서 내가 키보드를 갖고 할 역할만으로도 일이 너무 많았다. 그 곡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생각도 많이 해야 하니까. 그리고 난 앨범에 담긴 곡들이 내 곡이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곡 자체가 너무 좋으니까 누가 썼는지는 나에겐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하세가와: 밴드라는 게 우리가 연주해야지 이 사운드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러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연주를 하고, 열심히 편곡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작사·작곡 김창완'이라고는 쓰여 있지만 우리가 만든 곡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다 같이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흔히들 선생님이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지시해가면서 만들었을 거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앨범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김학선: 앨범에 담긴 연주가 올드하고 복고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건 어느 정도 의도적인 거였나?

김창완: 각자의 파트는 멤버 개개인이 생각하고 그대로 담아냈다. 스스로 감동하지 않으면 연주를 하지 않을 정도로 혼신을 다해서 연주했다.

김학선: 기타 솔로 같은 건 하세가와 씨가 도맡아서 연주한 게 아닌가?

김창완: 연주곡 같은 건 나와 함께 이야기하듯이 번갈아서 했다. 나머지 파트는 거의 양평이가 맡아서 했고, 나는 배킹을 담당했다. 

최원석: 아닌 것도 있는데 그걸 맞추는 재미도 있을 거다(웃음)

김학선: <29-1>을 들으면서 산울림 생각을 했다. 멤버 분들도 연주하면서 다 당연히 의식을 했을 것 같다.

최원석: 그것도 참 아이러니한 게 앨범 수록곡들 가운데는 이미 만들어진 노래들을 우리가 다시 채색한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런데 <29-1>은 오히려 가장 최근에 만든 곡이다. 그런데 오히려 가장 산울림을 계승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태어나서 되게 재미있다고 생각을 했다.

김학선: 그럼 지금 김창완 밴드와 산울림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을 얘기할 수 있나?

김창완: 아무래도 연주력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정서적으로 산울림에서 자유롭기도 하다. 일단 연주력이 뛰어나니까 산울림 때보다는 표현하는 데 있어서 훨씬 자유롭다. 

김학선: 예전엔 산울림이 너무 연주를 못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연주력에 대한 욕심 같은 게 있었나?

김창완: 그런 건 아니었다. 산울림의 가장 큰 음악적 태도는 '어떻게 노래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노래하느냐'였다. 그것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어떻게 연주하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학선: 그 생각은 아직도 유효한가?

김창완: 아니다. 지금은 그 생각이 많이 바뀐 게, 김창완 밴드 하면서 '역시 연주 자체에서 오는 감동도 무시할 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게 김창완 밴드를 하면서 얻는 가장 큰 기쁨이기도 하다. 산울림 시절에는 늘 "산울림 음악은 문학적"이라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앨범에서 <그땐 좋았지> 같은 연주를 들으면 '이건 진짜 대단한 연주다, 대단한 음악이다'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러니까 산울림 음악이 갖고 있는 문학성에다 연주라는 날개를 달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학선: <그땐 좋았지> 얘기를 하셨는데, 사람들이 그 곡의 연주를 듣고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얘기를 많이 한다.

하세가와: 그거 샘플링한 거 아니냐는 말도 있던데 전혀 아니다. 오마주라는 게 있지 않나. 록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 "이거 핑크 플로이드 같지 않냐? 이거 뭐 같지 않냐?"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오마주를 바치고 싶은 연주들이 있는 건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표절이다, 샘플링한 거다." 그렇게 얘기들을 한다.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밖에는 모르냐?"고 묻고 싶어진다. "다른 것도 더 있는데 왜 핑크 플로이드만 거론하냐?"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예를 들어 10개가 숨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서 그나마 알려진 1개 갖고만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최원석: 굉장히 재미있던 일이 있었는데, 음악을 듣고 친구한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 친구도 음악을 굉장히 많은 듣는 친구인데 그걸 듣고는 "핑크 플로이드 패러디냐?"는 문자를 보낸 거다. 그것뿐 아니라 음악 좀 찾아듣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도 그런 비슷한 얘기들이 나왔었다.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게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 음반인데, 그 코드 진행에 그런 비슷한 분위기의 곡을 추려보라고 하면 굉장히 많이 추릴 수 있을 거다. 내가 재미있다고 한 이유는 사실 그 코드 진행과 똑같은 건 <아니 벌써>이기 때문이다.(웃음)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야, 그 정도 완성도가 나왔다는 거 아니냐?"면서 굉장히 즐거워했다.(좌중 웃음)

김학선: 하세가와 씨는 앨범 속지에 "록은 적당히"라고 써놓았던데 어떤 의미로 한 말인가?

하세가와: 나쁜 뜻은 아니고, 그냥 '이 정도'로 하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원-테이크로 녹음할 때도 많이 느낀 거지만, 원-테이크로 녹음해서 듣다 보면 '이걸 왜 이렇게 했을까?' 후회를 많이 한다. 그런데 다른 멤버들이 괜찮다고 해서 다시 들어보면 또 괜찮게 들릴 때가 있다.(웃음) 그렇게 사소한 부분들까지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록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들이 떨어져나간다는 생각을 했다. 컴퓨터로 만지고 리듬을 고치고 하면 딱딱 맞는 느낌은 있겠지만 처음의 느낌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적당히' 가는 게 록 음악에는 더 좋겠다는 의미로 쓰게 됐다.

김창완: 깍두기가 너무 커도 안 되고 너무 작아도 맛이 없다. 그럼 어느 정도 크기가 좋냐? 적당한 크기가 좋은 거다.(좌중 웃음) 진짜로 그렇지 않나? 너무 큰 것도 맛이 없고, 분식집에서 주는 새끼손가락만한 것도 맛이 없지 않나. 깍두기처럼 록의 크기도 딱 있다. 록을 표현하는데 양평이가 한 '적당히'라는 말만큼 적당한 말은 없다. 진짜 기가 막힌 표현이다. 원래는 여기 속지에 쓸려고 했던 게 아니라 인터뷰할 때 양평이가 잠깐 했던 말인데 그 말이 너무 좋아서 가슴에 새기고 있었고, 속지에 그 말을 쓰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다. 내가 써놓은 말이 제일 후졌다. 어차피 버스 콘셉트로 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맞는 말을 써넣었다. (※ 앨범 속지에는 멤버 각자의 생각들이 짧게 적혀있다. 김창완은 "기껏해야 서너 명 타는 로켓트는 후졌다. 버스 로켓트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김학선: 앨범 타이틀을 'Bus'로 한 이유는 뭔가?

김창완: 이번 앨범의 숨겨진 콘셉트는 '함께'이다. [The Happiest] EP가 '분노의 자식'이라고 얘기를 해왔는데 이제는 다 위로받았고, [Bus]를 만들면서는 우리의 행복을 함께 나눴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었다. 그래서 가장 손쉽게 함께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다가 함께 탄다는 의미의 버스를 택하게 됐다.

김학선: 앨범 타이틀은 모두 함께 탄다는 의미의 'Bus'이지만, 그래도 김창완 밴드의 음악은 특히 누가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대상이 있을 것 같다.

김창완: 물론이다. 하여간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줬으면 좋겠다. 어린 친구들, 그리고 이제 음악 듣기 시작한 초심자들. 하이틴 때 듣는 음악이 평생을 간다고 한다. 그들에게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 록의 입문서로 이 앨범을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김학선: 그런데 아까 [The Happiest] 만들 때는 '젊은' 음악에 대한 강박 같은 게 있었다고 얘기를 했다.

최원식: 순수한 나의 표현은 아니었고, 다른 곳에서 [The Happiest]를 리뷰하면서 썼던 글이 기억에 남아서 그렇게 표현을 한 거다. 리뷰에서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인정하기 어려웠었는데 그 부분만큼은 공감이 됐었다. 이번 앨범을 만들 때는 '더 세야 한다, 더 펑크적이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아예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더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음악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김창완: 진짜로 어떤 게 나올지 다들 몰랐다. 이제 이 앨범의 의미는 우리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앞으로 생겨날 것 같다. 감상자들이 듣고 평을 하고, 거기서부터 나오는 감상들이 이 앨범의 의미를 만들어갈 것이다. 

김학선: 방금 젊은 친구들을 위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동년배들을 생각하면서 음악을 만들 생각은 없나?

김창환: 노(No). 전혀 없다. 요즘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좋다. 안양에서 올라온 고등학생도 있고 그런데,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너무너무 반갑다. 소녀들이 "우유빛깔 김창완"이라고 해주면 너무 좋다.(좌중 웃음) 너무 좋아서 진짜 아무 생각이 안 난다.(웃음) 지금까지 김창완 밴드가 서온 여러 무대들이 있는데 그 무대들을 생각하면 마냥 꿈같다.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록이 변방의 음악인데 그래도 요즘은 록 팬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아서 좋다.

김학선: 작년에 MKMF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서 공연도 하고 하셨는데 당시 함께 참가한 가수들 음악은 거의 대부분 아이돌 음악이었지 않나. 그런 음악들에 편견 같은 건 갖고 있지 않나?

김창완: 편견이 있다. 편견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록을 하고 있는데, 그런 편견이야말로 우리의 힘이 아닌가 싶다. 모든 음악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음악을 상업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안타깝다. 우리가 공기나 햇살 같은 것들을 잊고 살지 않나.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그 아름답고 생명과도 같은 걸 가지고 상업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건 정말 안타깝다. 음악은 상업 이전의 것이다.

김학선: 앞으로 김창완 밴드 활동을 하면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하세가와: 이대로 계속 갔으면 하는 거다.

최원식: 5년 후에도 이번 음반은 만족스럽지 않다고 얘기하고 싶다.(좌중 웃음) 

김창완: 나 역시 똑같다. 지금 이대로다.(웃음) 멤버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최근에 기쁜 소식 가운데 하나는 양평이가 자전거 생활을 시작했다는 거다. 정말 고맙고 기쁜 소식이다. 가까운 바람으로는, 우리가 그동안 너무 못 쉬었는데 멤버들과 함께 자전거나 타러 갔으면 하는 거다.


2009/10/08 15:00 2009/10/08 15:00
  • Posted by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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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ontreal florist 2009/10/19 03:58  |  M/D  |  Reply

    저 아저씨는 헤어스타일을 저렇게 해도 멋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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