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 [Polaroid]
- Posted at 2009/06/23 00:00
- Filed under review/국내

Polaroid (2009/Jellyfish Ent.)
6.6
01. Prologue
02. 한여름 눈사람 (Feat. 박효신)
03. 오늘의 운세
04. 옆자리
05. Air Mail
06. 봄이라서 좋아
07. Polaroid
08. Every Morning
09. 낮잠
10. 그런가봐
11. Epilogue
12. 오늘의 운세 (Instrumental)
작곡 능력이 떨어지는 가수의 앨범에서 유희열, 윤종신, 윤상, 정석원, 조규찬 등의 이름이 안도감을 준다면 당신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1990년대의 아이들이다. 그들에게 유희열은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는 최후의 보루에 가깝다. 유희열에 무한 신뢰를 보내는 지지자들은 그가 참여하는 것 자체가 걸작은 아니더라도 명반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좋은 앨범이란 유희열이 참여한 앨범이고 아쉬운 앨범이란 유희열이 참여하지 않은 앨범이며 후진 앨범이란 유희열이 참여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앨범이다.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김형중은 지난 두 앨범이 모두 아쉬운 가수다. 그래도 조규찬이나 이승환(The Story)의 곡이 있으니 엄청 아쉬운 건 아니고 그냥 2% 부족한 감질 나는 앨범이라고 하면 대충 합의가 가능하다. 설마 그렇게까지? 물론 비약이지만 그런 식의 뉘앙스가 유희열이라고 했을 때 상당 부분 허용이 되는 분위기가 실제로 존재한다. 그걸 이 자리에서 비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유희열의 그간 행보에 그만한 설득력이 있음을 충분히 인정하기 때문이다. 김형중만 하더라도 유희열과의 작업을 토대로 솔로 활동에 나섰고 거기까지 직접 관여해준 덕분에 성공적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본인의 높아진 인지도를 계기로 다시 이오스(E.O.S)를 하겠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솔로 앨범만 네 장이 쌓였다. 그리고 이번 네 번째 앨범 [Polaroid]에는 모처럼 유희열의 곡이 있다. 명반이다.
엄밀히 말해 유희열이 김형중에게 앨범을 만들어준 적은 없다. 토이(Toy)에서는 목소리만 활용했을 뿐이고 김형중의 처음을 담당한 프로듀서는 조규만이었다. 거기에 유희열은 <그랬나봐>와 <미몽(迷夢)>을 제공해준 게 전부다. 앨범보다 <좋은 사람>-<그랬나봐>로 이어지는 라인의 파급이 훨씬 크긴 했지만 김형중 개인으로 보자면 유희열의 존재란 허상에 가깝다. 이번에도 유희열의 곡은 <Air Mail> 한 곡이다. <그랬나봐>와는 달리 전면에 배치되지도 않았다. 대신 [Polaroid]는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1990년대의 아이들에겐 흥부네 지붕 위에 떨어진 보은의 박과도 같은 앨범이다. 1990년대에 유희열, 김동률, 윤상, 이적, 정재형, 나원주 등을 한자리에 규합시켰던 김혜림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1998)이 있다면 2000년대에는 [Polaroid]가 있다고 해도 말이 된다. 김혜림이 선정한 1990년대 올스타가 어떤 만족을 주었고 오늘날 그 앨범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떠올리면 기대보다 불안함이 앞서지만 [Polaroid]는 각자의 역량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그랬나봐> 이후 자기 복제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김형중이 <오늘의 운세>로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 여부로 갈리겠지만 적어도 여기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지지자들은 [Polaroid]를 호감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봤을 때 이것은 인맥의 힘. 딱 그만큼만을 담아낸 앨범이다.
인맥의 힘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그저 친하기 때문에 혹은 금전적으로 곡을 사고 팔고의 관계일 뿐인데 그게 해당 가수의 영민함을 말해주는 근거가 되고 뮤지션을 지향하는 태도로 인식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창 잘 팔리는 작곡가의 곡을 받으면 뜨고 싶어서 환장한 장사치가 되고 비평적으로 우수한 인디 뮤지션의 곡을 받으면 음악성을 겸비한 의식 있는 시도로 정의된다. 이 둘의 차이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크지 않다. 좋은 앨범은 누구를 선택했는가보다 어떻게 만들었는가의 결과이다. 그러나 [Polaroid]는 누구를 선택했는지만 보이는 전형적인 앨범이다. 참여 뮤지션들의 곡들이 이것이 좋은 앨범이라는 인상을 열심히 심어주는 동안 김형중 역시 주가 되지 못한 채 덩달아 의존적이다. 인맥과 선택은 탁월한 안목으로 대체됐을 때만이 긍정의 표현이 된다. 아쉽지만 2000년대 올스타는 탁월한 안목으로 운용되지 않았다. 그저 알아서 자기 기량을 뽐낼 뿐이다. 자기 이름으로 발표한 앨범만 네 장이 되는 가수가 인맥의 화려한 정도만을 나열하는 것에 머물고 있다면 설사 그것으로 인해 잠깐이나마 앨범이 듣기 좋더라도 평가를 재고해야 된다. 김형중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여전히 솔로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던 2001년과 2002년이다. 언뜻 유희열이 다 해준 것 같아도 당시의 성과를 이끌어낸 직접적인 원동력은 김형중의 목소리가 지닌 힘이었다.
외견상으로 보면 김형중은 본인의 목소리가 동시에 안긴 혜택과 과제 중 혜택만을 까먹으면서 지금까지 연명하고 있다. 과제는 이오스를 다시 할 수 있는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원류인 이오스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발표하는 솔로 앨범은 늘 고민일 수밖에 없다. 처음으로 직접 프로듀서로 나섰던 [The Dream Of Heaven](2006)은 이오스를 의식해서 그 색깔을 완전히 배제한 앨범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전과 뚜렷한 차이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가장 묻힌 앨범이 됐다. 재발견으로 불렸던 목소리도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그리고 [Polaroid]가 발표되기까지의 틈은 그 어느 때보다 길었다. 이번에도 이오스가 아닌 자기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여러 가지 성향을 담았지만 일렉트로니카를 적극적으로 포용한 것이 주요 방향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요즘 트렌드에 대한 계산으로 풀이할 수도 있지만 이오스를 솔로 앨범에 절충적으로 담아 나름의 모색을 한 것으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오스는 여전히 모험이고 솔로 앨범에서 느낀 한계가 [Polaroid]를 준비하는 동안 계속 맴돌았을 것이다. 결과는 이렇게 나왔고 이 글의 결론도 이미 나왔다. [Polaroid]만 봤을 때와 김형중의 [Polaroid]의 평점이 다르다. 약간 고민했지만 후자로 갔다. 이는 O.S.T를 별개로 볼 것인가 영화의 연장으로 보고 같이 평가할 것인가란 물음에 대한 내 대답과 일치한다. (문정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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