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린지 오 [Individually Wrapped]
- Posted at 2009/07/18 00:00
- Filed under review/국내

Individually Wrapped (2009/Electric Muse)
7.6
01. Shelled
02. Tutelar (Vocal Eunjie Song)
03. Drem
04. Bifid
05. Hearted (Piano Mokin Kim)
06. Younger (Piano Mokin Kim)
07. Noon
촘촘하게 짜인 기타 워크 위로 나지막이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 틀어놓고서는 아무 생각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듣다가, 문득 불편해졌다. 뭐랄까, 무심하달까? 그래, 어떤 무심함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서늘하지도, 차갑지도, 시니컬하지도 않은, 그러한 감정의 범주로 분류함이 쉽사리 허용되지 않을 것만 같던 무심함.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이었을까? 다분히 습한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여름밤이었다.
"좋다"라 말하기도 쉬운, 그리고 "좋지 않다"라 말하기도 쉬운 디스크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Individually Wrapped] EP는 우리가 그간 종종 접해왔던 키워드 몇 개: 이를테면 브리티시 포크, 코스모폴리타니즘, 세계 시민, 보편성 같은 키워드들을 활용하면 (필요 이상으로) 쉽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태생적으로 '야심'과는 거리가 먼 디스크라서 그럴지도. 첫 독집임에도 드린지 오의 데뷔작은 실상 신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원숙한 포크 뮤지션의 소품집에 가까운 느낌이다. (사실 그가 홍대 앞서 음악을 시작한 지는 10년이 넘었기에 신인이라기도 어렵지만.) 첫 독집 치고는 지나치다 보일 정도의 정갈함, 충실한 장르성, 또한 일관적인 톤. 이러한 일관성은 마지막 트랙 <Noon>까지 흔들림 없이 지켜지는 데, 그렇기에 앞서 한 이야기들이 괜한 누명 씌우기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겠다. [Individually Wrapped]는 분명히 브리티시 포크의 영향권 내에 있으며, 한국적 특수성이 아닌 세계 포크의 보편적 문법을 겨냥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이란 본디 특정한 '취향'에 기반을 둔 까닭에 특정 취향, 장르에 대한 개별 리스너의 '호불호'에 따라 디스크에 대한 판단이 갈리기도 쉽겠고.
그런데, 그렇게 쉽게 "좋다" 또는 "좋지 않다"를 판별하고 넘어가기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말했듯, 이는 '필요 이상'이다. 요지는 '쉽게 설명될 수 있다'고 성급히 판정하는 순간 자칫 쉽게 감지되지 않을 세세한 뉘앙스들을 그만 놓쳐버릴 수 있다는 것. [Individually Wrapped]는 표면의 텍스트가 아닌, 깊이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장르적 전형, 클리세 같은 것들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딱, 표면까지만.
마지막 트랙 <Noon>을 플레이 해보자. "good for sleeping / good for dreaming" 그리고 그다음; "good for dying". 죽기 좋은 오후라니, 다분히 섬뜩한 노랫말. 그러나 드린지 오는 디스크 내내 그래 왔듯, 차분하게 읊어나간다. 자살의 기색이라고는 전혀 묻어 있지 않은 목소리로. 여기서 그의 목소리는 서늘하지도, 차갑지도, 시니컬하지도 않다. 오히려 표정 자체가 휘발된 듯한 목소리.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그저 목소리일 뿐인 목소리. 노랫말 대부분이 이미지의 움직임, 혹은 동사로만 쓰인 <Bifid>에서는 더하다. ("see in, see out / tell me what you see / hide in, hide out / show me what you hide") 이 트랙에서, 드린지 오는 몇 가지 움직임을 지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할 뿐이다. 이러한 동사들의 나열에서 감정이 끼어들 틈이란 없으며 그것들은 다만 순수한 움직임을 표상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는 궁극적으로는 표상이 아니기도.) 다른 트랙들에서도 이는 마찬가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송은지와 함께 부른 <Tutelar>만이 그나마 다소 '따듯할' 뿐이다; 물론 드린지 오는 이 트랙에서도 감정을 전연 내보이지 않지만. 누차 말했듯, 이는 역설을 노린 것도, 모순을 드러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표현을 지양(止揚)하려는 태도 아닐까? 최소화된 표현, 최소화된 감정, 그런 무(無). 그래서 [Individually Wrapped]은 온도가 '없는' 디스크를 지향한다. 따듯하다거나, 차갑다거나, 그러한 종류의 기준을 아예 폐기시키려는 디스크. 온도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아예 지우려는 디스크. 표현이라는 단어를 지우려는 디스크. 감정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려는 디스크. 어떤 계보와 전형들 아래서 드린지 오는 차분히 지우개 질을 감행한다. 감산(減算)을 통하여 순수한 상태로의 회귀를 꾀하는 듯. 그런데 이쯤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겠나;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역설적이지만 [Individually Wrapped]에서의 '깊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현된다. 인용하자면, "tell a lie"와 "tell the truth"(<Bifid>)의 순환에서. 거짓말과 참말은 서로의 꼬리를 문다.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것은 뫼비우스의 공간; 무감각은 감각의 꼬리를 문다. 감산은 가산의 꼬리를 문다. 네거티브(negative)는 포지티브(positive)의 꼬리를 문다. 그렇다면 최소화된 표현이란 역설적으로 가장 적극적인 표현과 다름없는 것 아닐까? 그의 무표정 뒤에 숨겨진 것은 (상징적으로) 표현될 수 없을 그의 거대한 욕망, 욕구, 감정이 아닐지. 표면 아래 무(無)로서만 드러나는 '잠재된 무엇'이 아닐지. 고로 감정의 가장 열정적인 표출로서의 무(無)가 아닐지.
여기까지, 순전히 일종의 추측성 가설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고민 중이니; 무엇이었을까? 글쎄, 정답이란 것이 존재할지. 그러나 하나만큼은 분명한데, 무표정 아래서 무엇인가는 약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이는 반드시 의미 있을 지점 아닐지. 한국의 인디 포크 씬에서나, 나아가 한국의 전체 음악 씬에서나 말이다. 지금-여기의 시점에서 '현실화 된' 감정이 아닌 '잠재된' 감정을 차분한 시선으로 주목하는 드린지 오의 작업은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그러니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그와 그의 노래를 외롭게는 말아 달라, 모쪼록. (단편선/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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