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a home news review star track interview feature

생각의 여름 [생각의 여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각의 여름
생각의 여름
(2009/붕가붕가 레코드)
7.5


01. 십이월
02. 골목바람
03. 활엽수
04. 덧
05. 동병상련
06. 서울하늘
07. 허구
08. 그래서
09. 말
                                                         10. 긴 비가 그치고          
                                                         11. 다섯 여름이 지나고


아버지의 카오디오에는 조덕배의 [조덕배 콘서트 I: 1984-1993]이 꽂혀있었다. 요즘 벌이나, 동생의 휴학 같은 별 특별할 것 없는 사는 얘기들을 두런두런 하다 화제가 조덕배로 돌아갔다. 라이브가 너무 신파적이다, 라는 내 말에 아버지는 원래 나이 들면 신파가 좋아지는 법이다, 라 응대했다. 나이가 들면 신파가 좋아진다고? 나름 모던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우리 386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타협적이었으나, 꽤나 그럴싸하다 생각했다. 나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나이가 들어보면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나이가 어렸다.

대략 검색을 해보았지만 '신파'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설이 없어, 집에 오래된 두꺼운 국어사전을 뒤졌다만 결과는 역시 썩 만족스럽지 않다. "현대의 풍속을 제재로 한 통속적인 연극"이라는 정도를 건졌다. 통속, 풀어쓰면 "속되게 통함" 정도가 된다. 이번에는 '속되다'라는 표현을 찾는다. "고상하지 못하고 천하다." 이것저것 조금 더 뒤져볼까 생각하다 사전을 덮는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아버지나 나나, 둘 다 조덕배의 라이브를 신파적이라 생각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요인이야 많겠지만, 레코딩된 정규음반보다 심하게 꺾이는 그의 목소리 때문 아니었을까? 감정의 극적 과잉, 그것이 뚝뚝 묻어나는 그의 목소리가 어쩐지 처량해서였을 것이다. 감정을 끝까지, 밑바닥까지 파낼 것처럼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가 무척 처절하게 들려서였을 것이다. 가끔은 울 것 같기도 한 그의 목소리. 하기야 감정을 천박한 것으로 취급하는 태도의 역사는 길다. 나도 그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단 생각을 하니 괜히 등골이 쭈삣 선다. 어쩔 수 있나, 결국은 나도 세속인이다.

서설이 길었다. 하지만 불필요한 것은 아닐 테다. 홀로 통기타를 치는 생각의 여름의 첫 독집, [생각의 여름]을 신파라는 키워드 없이 설명하기는 어렵다. 아, 물론 신파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되려 반대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세세하게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굳이 참조를 대보자면 영미권 포크 일부와 한국의 80년대 통기타 음악, 특히 그 중에서도 시인과 촌장을 댈 수 있겠는데 굳이 이것들이 그의 작업에 있어 절대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다. 그것들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도 [생각의 여름]은 홀로 설 수 있는, 썩 괜찮은 음반이다.

플레이시키자마자 들리는 <십이월>,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짧은 소곡이다. 이어지는 <골목바람> 역시 소곡이다. 음반을 끝까지 돌려도 긴 트랙 하나가 없다. 수록된 11곡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총 26분 8초. 가격 대 성능비 같은 말 참 좋아라 하는 우리 어린 세대에게는 괜히 사기 당했다, 같은 말 듣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 단순히 양적으로다가 모든 것을 평가하지는 말자.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짧은 시간이나마 우리가 충분히 마음 좋았나, 이다. 이 전제에 동의한다면 내친 김에 하나만 더 요구해보자. 뽕을 뽑으려 하지 말자. 영화관에서 7,000원 내고 꼭 한번은 울고 나와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음악은 투기가 아니다. 그래야 할 이유가 하등 없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이 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생각의 여름]에 접근하면 '필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목적을 논하기에, 이 음반은 너무나 사적이다. 게다가 짧은 소곡들뿐이어서 마땅히 감정을 이입할 대목도 없다. 물론 트랙마다 감정의 농도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그래봤자 금방 끝나기 때문에 눈물 콧물 짤 틈이 없다. [생각의 여름]을 잘 듣는 방법은, 하나하나마다 집중하여 곡을 잘근잘근 씹어 삼키는 데 있지 않다. 그저 음악이 흐르는 곳으로, 마음이 가는 곳으로 천천히 부유하는 감정을 역시 천천히 따라가는 것, 그 흐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유독 바람, 비, 계절에 관한 사색이 자주 등장한다. "추스를 틈도 없이 또 다시 바람(<골목바람>)", "비가 내리네 젖은 꽃들이 떨어지네(<덧>)", "바람을 먼 데서 기다렸었네(<그래서>)", "긴 비가 그치고 모든 것이 한결 선명하다 허나 우리의 계절은 계절은 여전히(<긴 비가 그치고>)", "다섯 여름이 지나고 나는 어디 있을까(<다섯 여름이 지나고>)" 이를 묶어 날씨라고도, 풍경이라고도, 자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늘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순환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는 탓에, [생각의 여름]은 영민한 작업이다. 물은 고이면 곧 썩어든다. 생각의 여름은 그것이 고이기 전에 얼른 물길을 낸다. 통속의 덧에 걸리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마침 음반 전체에 걸쳐 싱그러움을 더하는 쓰리핑거 주법이 경쾌하다. 물론 그 와중 <동병상련>에서 <서울하늘>로 이어지는 서늘한 트랙들이 존재하기는 하다만, 그럼에도 긴 슬픔에 젖어들지는 않는다.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않는 탓이다. 신파와는 참 멀다. 초장에 신파를 꺼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 중 어느 것이 좋다, 라 단정 짓는 것은 폭력이다. 그러나 양측 모두 미덕이 있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신파의 미덕과는 다른, 그 반대편에서의 미덕이다. [생각의 여름]은 가끔 너무 순결하게 보이지만, 엄밀히 말해 사람이 완전하게 세속적일 수도, 완전히 순결할 수도 없는 노릇, 그 두 방향의 흐름이 모두 중요하다.

흐름에 대해 말했다. 그의 짧은 호흡을 따라, 여럿 감정이 피어오르는 그 흐름을 따르다보면 돌던 음반이 어느새 가만히 멈춰 선다. 여운? 글쎄, 감정이 깊게 고양된 적도 없으니 여운이 오래 남을 이유도 별로 없겠다. 그보다는 맑아진다, 는 표현이 조금 더 적절할 듯싶다. 마치 혈이 뭉친 곳을 잘 눌러 풀어주는 것처럼, 생각의 여름은 감정 여러 곳을 돌아가며 가볍게 두드린다. 여운이 오래지 않다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가끔 가볍게 두드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에 깊게 젖어드는 대신, 툭툭 털어내고 간만에 근래의 생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의도치 않았다 해도, 아마 자연스레 그리될 것이다. 바로 음반의 힘이다.

아버지의 카오디오에서는 [생각의 여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짧은 몇 트랙들이 지나 <덧>쯤에서, 아버지는 가수가 누군지를 물으셨다. 생각의 여름이라는 솔로 아티스트라 말해드렸다. 내 발음이 좋지 못한지라, 몇 번을 되물으셨다. 생각의 여름이라, 음, 이라며 아버지는 다시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잘 뚫린 도로.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만, 마지막 <다섯 여름이 지나고>가 끝날 때까지 둘 다 말이 없었다. 티 나지 않게, 그러나 은근히 귀 기울여 듣고 계신 눈치였다. 나도 귀를 기울였다. (단편선/보다)

덧, 그의 지난 작업들이 궁금하다면 관악포크청년협의회를 찾도록. 그러나 많지는 않다.


2009/10/08 00:00 2009/10/08 00:00
  • Posted by 보다
  • RSS http://bo-da.net/rss/response/638
  • Trackback URL http://bo-da.net/trackback/638

Comments List

  1. 킬러킹 2009/10/08 06:01  |  M/D  |  Reply

    서두가 '불필요'하게 '기'네요.
    요즘 단편선님은 붕가붕가에 관한 글을 많이 적으시던데 더 많이적으셔서 나중에 님이 하시는 밴드 앨범 붕가붕가에서 나왔으면 좋겠네요.

    1. 단편선 2009/10/08 08:27  |  M/D

      아우, 왜 그걸 생각을 못 했을까요? 이왕 그럴 바엔 6.9, 7.5 말고 9.0, 10,0 정도는 때렸어야 되는데... ㅜㅜㅜㅜ 그런데 이번 년에는 붕가붕가 레코드 관련해서 2개(+인터뷰 1개) 밖에 못 썼네요. 이왕 쓸 거 매달 2개씩은 썼어야 하는데... ㅜㅜㅜ 저는 지금 밴드는 안 하고 있어요. 팩트에 조금만 더 충실해주시고요... 대신 혼자 하고 있는 작업들은 (붕가붕가 레코드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잘 되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 킬러킹님을 여기서도 뵙게 되니 괜히 반갑네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 집에서잠자던배재대생 2009/10/08 09:54  |  M/D  |  Reply

    단편선님 붕가붕가레코드에 들어가고 싶으시면 이따위 리뷰쓰면서 후빨할 시간에 다시 공부해서 서울대가시기를 바랍니다

  3. 미시마 2009/10/08 16:29  |  M/D  |  Reply

    붕가붕가.
    느낌도 붕가붕가.
    서울대무브먼트 별로에요.
    리뷰 너무 있어보이게 쓰시려구 노력하셨다.
    자연스럽지 못해요.

    애니웨이.
    앞으로도 잘부탁드려요.

    1. 단편선 2009/10/09 20:08  |  M/D

      빠르게 써내려갔는데, 저 역시 (전개되는 흐름에 대해)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새 본의 아니게 타이밍을 놓친 음반이 많아, 거칠게나마 빠르게 많은 것들을 기록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양과 질, 두 면에서 크게 나아져야겠지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4. 두괴즐 2009/10/08 20:05  |  M/D  |  Reply

    단편선 님은 왜이렇게 안티가 많나요?
    음악비평계의 스타신가요? ㅎ

    그나저나 저는 글 재밌게 잘 쓰신 것 같은데~
    댓글들이 좀 건설적인 토론의 장으로 확장 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5. 미시마 2009/10/10 03:15  |  M/D  |  Reply

    단편선님.

    어제 술을 꽤나 많이 마셨음에도 단편선님의 리뷰들을 뒤적이느라
    잠을 많이 못잤답니다.
    흥미있더군요, 리뷰도 리뷰지만 아~ 그 수많은 리플들이란.

    많은부분이 음악의 '앎'에 대한 조롱 혹은 익살에 관한 것이더군요.
    물론 불필요하게 장황한 서두나, 약간 어려워보이는 (사실 어렵다기보다 읽기가 살짝 지저분하다던지) 혹은 "나는 글을 쫌 쓰자나" 식의
    (그것도 좀처럼 동의하긴 어렵지만) 단편선님의 리뷰방식을 '까는' 리플들도 적진 않아 보였지만 말이죠.


    재미있었습니다.


    여하튼. 앞으로 나아지는 모습 기대합니다.


    - 경희대 후배시더군요. 회기동 단편선 나름 멋졌어요.
    힘내시구요.

  6. loro 2009/10/11 02:21  |  M/D  |  Reply

    전 단편선님 리뷰 좋아요.

  7. 청소부 2009/10/11 15:37  |  M/D  |  Reply

    글이 운치있네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적 있는데 왠지 이글을 읽으니 그 생각들을 정리해주신것 같아요~ 글을 읽고 생각의 여름이 어떤 뮤지션인지 찾으러 가렵니다..

  8. 곽원석 2009/10/20 01:04  |  M/D  |  Reply

    글을 읽고 생각의 여름이라는 음악을 찾아 듣고 있습니다.

    물론 합법적인 방법으로요.

    전 리뷰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생각되네요.


    굳이 글의 서두가 어땠느니

    있어보이게 쓸려고 했다느니

    그런 감독자적인 태도는

    좀더 격식 차려진 곳에서 해주세요

    혹 제가 글솜씨가 부족한데 논술 첨삭이라도 해주시겠어요?


    그저 어떤 음악에 관심갖게 해주는것

    그리고 그 음악에 조금이라도 더 이해가가게 해준다는것

    리뷰는 마음편하게..

    철저한 저의 주관.

  9. 멜로디연 2009/10/29 00:28  |  M/D  |  Reply

    편선 하이. 난 개인적으로 관포협, 도반을 거쳐 <말>을 들으면서 감정적으로 아주 빠져들었었어.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는 연주와 사운드와 정제되더니, 코드 자체는 단순하지 않은데도 심플하고 세련되게 변한 느낌이군. 약간 밋밋해진 느낌도 들고, 감정의 농도가 옅어졌군. 난 도반의 거친 사운드가 더 좋다. 나 내일까지도 시험 기간이야. 시험대체 레폿이 있단 걸 잊고 있었어. 내일 제출인데 아직 서론이야 미친. 시험기간이 되니 미쳤는지 편선도 보고싶군 흑 다 끝나버려라 으악! 나 내일 밤새서 원고 쓴다! ㅠㅠㅠㅠ

    1. 단편선 2009/10/29 01:12  |  M/D

      꼭 죽지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터이니...

  10. 손명환 시작과끝 2009/11/23 17:12  |  M/D  |  Reply

    왜이리 리플이 공격적이지 ㅡㅡ;; 글 잘읽었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Next »
© 2008 bo-da All rights reserved. | staff | cont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