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a home news review star track interview feature

서태지 [Atomos Part Moai]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태지
Atomos Part Moai
(2008/Seotaiji Company)
6.0


01. Moai
02. Human Dream
03. T'ikT'ak
04. Moai (Remix)






케이블 채널에서 오래전 방송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 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이제는 촌스러워진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철지난 유머에 스며든 공기는 설명하기 힘든 반가움과 정겨움을 불러일으킨다. '과거'가 상품이 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어쩌면 서태지 역시 과거로 남을 수 있었다.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을 고수하는 뮤지션들과 달리 당대 트렌드와의 결합을 시도해온 서태지는 1990년대와 떼어놓을 수 없는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이슈메이커이다. '서태지와 아이들(Taiji Boys)'의 작업물까지 포함하여 여덟 번째 음반인 [Atomos]의 첫 번째 싱글에 대한 관심이 증명한다. [Atomos Part Moai]에 대해 무반응이 의도적인 외면으로 비춰진다는 사실은, 서태지의 생존전략이 성공적임을 말해준다. 사실 서태지에게 걸쳐진 옷과 장신구는 너무 많다. 그를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 장막들을 하나씩 걷어내면 폄하로 오해받고, 찬사가 아니면 비꼼이나 비난으로 받아들여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신화의 탄생과 어떤 오해들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이끄는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에 잠시 참여했을 때부터 서태지는 다른 로커들과는 조금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록 뮤직과 댄스 뮤직을 상극으로 바라보던 시대였다. 하지만 서태지는 1991년에 양현석과 이주노를 만나 댄스 팀을 결성하고 1992년에 데뷔했으며, 언더그라운드에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방송의 영향력이다. TV 등장 이후 불과 며칠 만에 <난 알아요>는 큰 파장을 불러왔다. 메인스트림에서는 비주류 음악이었던 랩과 헤비메탈을 도입하고, 어느 정도의 사회성을 반영한 가사 역시 지지를 받을 만 했다. 틴에이저들은 그들에게서 대리충족의 통쾌함을 얻었다. 지금과 달리 1990년대 전반까지 댄스가수들이 직접 곡을 쓰고 안무를 만드는 일은 흔했고,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 작곡가와 댄서들의 조합이었다. 주도권을 쥔 서태지는 히트곡들을 연이어 만들어내면서 성공한 프로듀서이자 트렌드 선도자가 되었다.

서태지의 음악적 행보는 힙합과 헤비메틀 문화와 관련이 있다. 물론 혼자가 아니었다. 1994년에 <교실이데아>와 함께 넥스트(N.EX.T)의 [The Return of N.EX.T: Part 1, Being]이 인기를 끌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는 크래쉬(Crash)의 등장이 화제였다. 크래쉬는 <교실이데아>에 참여하기 이전부터 이미 데뷔 앨범 [Endless Supply Of Pain]을 통하여 한국 헤비메탈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 언더그라운드의 스타 밴드였다. 스타 DJ 전영혁의 라디오 방송은 1994년 연말결산에서 크래쉬와 넥스트, 그리고 서태지의 곡들을 나란히 플레이했다. 또한 지금의 힙합 뮤지션들은 서태지보다 듀스(Deux)를 더 자주 말한다.

물론 1993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의 <하여가>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이듬해의 세 번째 앨범에선 <발해를 꿈꾸며>와 <교실이데아>처럼 스케일이 큰 곡들로 화제를 만들었다. 1995년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앨범에 실린 <Come Back Home>과 <필승> 역시 대중의 기대에 화답한 결과물들이다. 그리고 통속적인 감성과 멜로디를 지닌 노래들을 끼워 넣음으로써 상업성도 확보했다. 실제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앨범들은 많이 팔렸고, 그 즈음부터 한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노래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서태지의 영향력은 음악보다는 문화적인 면에서 더욱 발휘되었다. 세대 담론과 맞물려 아이콘이 된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 미국의 너바나(Nirvana)와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을 중심으로 한 '얼터너티브 담론'과는 맥을 달리한다. 음악에 무게가 실리기보다는 세대 담론에 무게가 실렸던 것이다.

'신세대의 대변인'은 '문화대통령'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서태지는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사회진보운동에 가담했던 지식인들이 문화영역으로 진출하면서 지적 담론을 쏟아낸 것과 관련이 있다. 서태지라는 대중가수와 그 영향을 영웅적 사건에 의하여 과거와 다른 새로운 무엇이 출현하는 현상과 관련지어 해석했다. 사실일까? 서태지가 세상을 바꾸었다기보다는 시대가 서태지를 낳았다. 1993년부터 1995년에 걸쳐 한국은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변화를 맞고 있었다. 모두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는 아니었다. 성장통과 대가도 따랐다. 산업화세력에 의한 급속성장의 폐해가 가시적인 참사들로 드러나기도 했다. 잇따라 터진 열차사고, 비행기 추락, 여객선 침몰, 다리붕괴, 백화점 붕괴에 의하여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사라졌다. 기존의 것들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재미있게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는 김영삼 정권의 운명과 시기적으로 겹친다. 김영삼은 독재반민주세력과 일부 기회주의적 민주인사들로 이루어진 민자당(지금의 한나라당) 대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경제개혁과 군인세력숙정 등으로 지지를 받았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으나, IMF 사태를 초래하며 침몰했다. 물론 서태지는 침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백기를 가졌다. 어린 가수의 '은퇴선언'은 다양한 반응을 불러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에 팬들은 슬퍼했지만, 일부는 '쇼'라고 했다. 시나위의 노래 <은퇴선언>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풍자한 노래로 알려졌다. "오늘 나는 영웅이 되었지/ 수많은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눈물 흘릴 테지 … 나의 연극, 너는 관객/ 나의 연출, 너의 동의" 그리고 "기다림에 지칠 때면 다시 돌아올 거야." 이 가사처럼 서태지는 돌아왔다.

여러 면에서 색다른 모습의 서태지-학력이 중시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의 그림자는 크게 그려졌다.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 번쩍번쩍 터지는 플래시, 지적인 의미부여, 그리고 갑작스러운 퇴장은 신화의 조건들을 갖춘 스토리였다. 그러다보니 몇 가지 오해들이 발생했다. 영웅에게는 업적이 있어야 했다. 그 중 하나가 '음반사전심의제'의 철폐를 서태지가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사실일까? 서태지가 문제의식을 확산시키긴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공로는 포크뮤지션이자 저항가수인 정태춘에게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기도 전부터, 무려 6년 동안의 법정투쟁 끝에 1995년 10월 31일, 마침내 그 엉터리 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낸 사람이 정태춘이다. 그는 언론플레이와 이미지 마케팅 대신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지난한 정공법으로 노래에 자유를 선물했다.

또 하나, 서태지의 음악적 업적을 위해 필연적으로 그 이전의 음악계가 폄하되어야 했다. 그래야 서태지에 의하여 한국 대중음악이 질적 향상을 이룬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장르적으로 다양하지 못한 가요계에서 촌스럽고 지루한 노래들만 인기를 얻고 있었다는 얘기가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사실일까?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은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였다. 록과 헤비메탈, 블루스와 포크, 댄스음악과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걸작 앨범들이 행렬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또한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까지 TV스타 못지않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한국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시절인 1990년대 초중반의 음반 판매고와 공연의 흥행실적은 기록적이었다. TV에 보이는 것들은 세련되어졌지만, 전반적으로는 서태지의 등장 이후 '골든 에라'가 서서히 저물기 시작한다.

특정 세대를 대상으로 활동하면서 치고 빠지는 움직임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고, 해외의 트렌드를 수입·재현하면서 앨범마다 장르를 달리하는 전술이 아이돌 양성업자들에게 그대로 전수된다. 틴에이저들의 구매력과 영향력을 포착한 자본이 기획 상품들을 쏟아내고 방송이 이에 호응하면서 음악시장이 전면 개편된다. 이미지 기획과 전술이 위력을 발하면서 몸은 비대해지고 치장은 화려해졌지만, 뮤지션들의 통로와 영역은 좁아져 음악적 수혈이 차단당한다. TV는 일방적인 권력을 갖게 되었고, 음악인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한다는 즉물적인 강요에 시달렸다. '대중성'이라는 전제에 갇히면 규격품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변화가 서태지의 책임은 아니다. 뒷거래와 부패 스캔들이 주기적으로 터질 정도로 썩어버린 방송연예계에서는 돈과 커넥션이 스타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서태지는 능동적이었고, 긍정적인 자극을 주었다. 다만 그가 대중음악 씬을 '진보'시킨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 2007년에 한정수량으로 출시된 서태지 15주년 기념음반은 발매일 한참 전에 모두 매진되었다. 본격적인 컴백에 앞서 영향력을 점검하기 위한 프리마케팅 이벤트가 괜찮은 결과를 가져왔다. [Atomos Part Moai]의 판매 규모는 더욱 크다. 그래선지 서태지가 대중음악계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심리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여 지금까지 서태지에 의하여 대중음악계의 수위가 동반상승한 적은 없으며, 오히려 그의 등장 이후 대중음악계는 내리막길 앞에 섰다. 사실 15주년 기념음반을 사고판 건 서태지의 팬들만이 아니다. 한정판매 예약마감 직후 그 몇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물품거래 사이트에 올려졌으니까. 더구나 달랑 4개의 트랙이 담긴 16분 21초짜리 [Atomos Part Moai]의 비정상적인 가격이 음악계에 악영향을 주리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서태지 관련 기사들에 습관적으로 삽입되는 "침체된 대중음악시장에…"라는 문장이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동안 질적인 성장과 의미 있는 움직임을 이어온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재생산할 소지가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인디음악 씬을 중심으로 다양한 성취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최근 한국 대중음악계에 다시 생기가 돌고 있는 것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오해들은 본의 아니게 다른 음악과 뮤지션들의 노고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서태지에게도 과중한 짐을 지울 필요가 없다.

뮤지션 서태지와 [Atomos Part Moai]

먼 길을 돌아 비로소 뮤지션 서태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1980년대의 한국 헤비메탈과 2000년대의 한국 힙합은 서로 비슷한 지향을 보이는 것 같다. 스킬의 중시이다. 1990년대의 한국 팝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운드의 질과 기술에 대한 집착이다. 해외의 트렌드를 수입하여 전파하는 트렌드세터는 담 위에 올라서서 담 밖의 트렌드를 담 안으로 공수하는 것을 사명처럼 여긴다. 하지만 트렌드와 스킬을 중시하는 작법은 종종 표절이나 차용 논란의 대상이 된다. 서태지의 송라이팅 역시 아이디어들의 조합과 적용을 통해 곡을 만드는 방식에 가깝다. 그의 최초의 히트곡에서부터 최근의 곡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노래들이 모방 논란에 휩싸이게 된 이유이다. 심지어 지난 앨범에 이어 이번에도 또다시(!) 앨범커버 표절 의혹마저 제기되었다. 서태지에게만 해당되는 나쁜 소문이 아니다. 모방은 모든 예술가들에게 피하기 힘든 유혹이다. 물론, 무기산업과 우주산업이 다방면의 발전에 기여를 하는 것처럼, 세심한 사운드 연구자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덕분에 열등감을 극복했다. 그러한 단계가 있었기에 한국적인 정서와 70년대 그룹사운드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최근의 복고 무드는 그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그런데 서태지의 결과물들이 '씬'이 아니라 개별적인 성취로 머무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서태지는 음악적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키기보다는 스스로를 차별화하기 위해 뛰쳐나가길 반복했다. 앞서 말한 크래쉬가 '씬'에 기여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며 지분을 쌓아온 것과 다른 방식이다. 폭넓게 음악을 하는 것도 좋지만 장르에 집중하는 것도 멋진 일이지 않은가. 더구나 '신비'에 대한 집착은 서태지와 씬을 분리시키는 가속기로 작용한다. 서태지의 신비주의가 언론에 의하여 과장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아니다. '신비주의'는 아이돌이면서 아이돌과 구별하기 위해-또는 구별해주기 위해 선택된 방법이다. '미스터리하지 않은' 미스터리서클을 만들고, UFO 모형을 도심에 설치하는 것은 "그냥 농담"이 아니다. 적지 않은 홍보비를 들여 장난을 할 회사는 없다. 이번 싱글 발표와 함께 배포된 몇 페이지짜리 Press 자료에도 '신비'라는 단어가 수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단어가 또 있다. '새로운 장르'이다. 서태지는 '실험'과 '새로운 장르'를 강조함으로써 우위를 점해왔다. 2000년의 [울트라맨이야]는 하드코어를, 2004년의 [Issue]에서는 감성코어를 내세웠다. 한국에 없던 장르들을 가장 먼저 알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인디음악 씬에는 얼터너티브, (하드코어라고 잘못 소개된) 얼터너티브 메탈, 그리고 이모코어가 이미 정착해있었고, 뛰어난 작품들 역시 쌓여있었다. 이번에도 "서태지만의 신비한 색이 더욱 강렬해진 'nature pound'라는 한국 태생 신 장르"와 "자신만의 장르를 창조해내기 시작했다는 의미 있는 사건"이라는 문구가 적힌 페이퍼가 배포되었다. 장르는 어떤 음식을 먹을 때 포크를 사용할 것인가, 젓가락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수저를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비슷하다. 그 때 집어 드는 식기처럼 장르를 통하여 음악에 잘 다가가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장르는 본질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21세기에는 그다지 유효하지도 않다.

이것들은 마케팅 전술이다. '새로움'과 '실험' 그리고 '신비'라는 포장을 벗겨야 서태지의 음악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 없이는 서태지의 존재가치가 강조되지 않는 딜레마에 빠진다. 결국 서태지를 위한 논리와 마케팅이 그를 '섬'으로 만들었다. 그가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활동하면서 우상(Idol)이자 아이콘(Icon)으로 인정받을지언정 음악인으로서는 충분히 존경받지 못하는 듯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연 [Atomos Part Moai]가 서태지를 섬으로부터 구출해내는 보트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그의 깃발이 계속 펄럭이도록 해줄 것인가?

최소한 '혁신적인 선구자'에 대한 강박은 옅어진 것으로 보인다. '태지스러운' 멜로디가 소프트 록 그리고 팝과 만나고, '위'가 아니라 '아래'에 몇 가지 실험적인 요소들이 깔린다. 신곡들의 완성도 역시 대체로 높은 편이다. <Moai>에는 IDM(Intelligence Dance Music) 비트를 서태지 스타일에 맞게 살짝 응용하고, <Human Dream>에선 게임기 음악 소리를 재미있게 활용한다(물론 외국에는 게임기 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성공한 밴드들이 여럿 있다). 친근한 멜로디가 이끄는 가운데 <T'ikT'ak>처럼 제법 웅장한 얼터너티브 메탈로 감성의 반응을 유도한다. 서태지 특유의 팝 센스와 록 사운드가 적당히 버무려진 이 싱글은, 홍보문구와 과잉담론을 무시하면, 그의 방향설정이 성공적임을 말해준다. 그는 잘할 수 있는 것을 택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자기영역에 대한 확인, 그리고 한계에 대한 인정 역시 능력의 일부이다.

난해함과 모호함이 곧 실험은 아니다. 반복하면, 실험적이라 하여 늘 난해하고 모호하지는 않다. 무언지 모르겠는데 자꾸 듣게 만드는 것이 유연한 실험이다. 이 싱글에도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이 있고, 그것은 사운드 메이킹과 관련이 있다. "해외 스탭이나 기술의 도움 없이 서태지 본인만의 노하우로 제작된 최초의 음반" 등의 카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 말대로 어느 코미디언 출신 영화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순수 한국 기술'과 '세계적인 사운드'는 이제 그다지 매력적인 카피가 아니다. 다른 뮤지션들에 의하여 '스스로 만들어낸 뛰어난 사운드'는 이미 달성되었다. 불필요한 의미부여를 무시하면, 이 싱글은 16년간의 노하우가 잘 활용된 편이다. 여러 요소들을 섞을 때 조잡해지기 쉬우나 아기자기한 소리들을 듣기 좋게 조립해놓았다. 서태지가 공을 들인 부분도 이 지점이다. 그래서 사운드 프로덕션을 언급하는 것이다. 원래 서태지는 '노래와 이야기의 힘'을 중시하는 작가적 뮤지션이라기보다는 스타일리스트였다. 그러니 '매끈함'과 '본질적인 무엇'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다만 학생용 SF처럼 다소 유치한 가사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서태지는 솔로활동 이후 사회적 가사를 쓰지는 않았다. 그의 진솔한 이야기와 깊은 사색까지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하지만 곡들의 무드가 자연과 신비에 대한 메시지와는 어딘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조금 어색한 코디이다. 지구를 쓰레기폐기장으로 만들고 생명체를 미안함 없이 죽여서 먹는 행위에 대한 반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재활용과 채식이 쿨한 라이프스타일이나 트렌드가 된다면, 물론 좋은 일이긴 하지만, 어떤 모습일까. 서태지의 구호가 힘을 잃었음을 알아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늘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그의 성향을 고려한다면, '자연과 과학의 조화'를 자신이 전해야할 이 시대의 가치로 선택했다고 봐야 한다. 

서태지는 계획표에 따라 삶을 만들어왔다. 비인기 종목의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딴다는 것은 비로소 생계가 아닌 운동을 위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서태지 역시 성공해야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ETPFest를 개최하고 언더그라운드 밴드를 발굴하는 서태지 컴퍼니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 서태지의 지위는 달라졌다. 아무리 '태지매니아'의 사랑이 여전하다고 해도 세상은 더 복잡해졌으며, TV나 영웅이 음악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애석하게도 그를 상징으로 여긴 신세대는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이념이 없으면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기성세계에 흡수되기 마련이다. 이제 '대중음악인 서태지'를 봐야할 때이고, 팬들도 이를 인정해야 한다. 충분히 예쁜 노랑 위에 굳이 빨강을 덧칠하고, 다시 파랑을 덧칠하고…. 그러다보면 무슨 색으로 변하는가?

근사한 프로젝트 타이틀이 적힌 설계도가 펼쳐져 있다. 이 거대한 설계도 위에 드러누운 청년은 여기저기 놓여있는 무수한 부품들의 조립에 집중한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작품을 손으로 집어 든다. 이 아기자기한 로봇 완구를 바라보며 씩 웃는 얼굴, 이것이 서태지이다. (나도원/보다)

※ 이 글은 '한양저널'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2008/09/02 00:00 2008/09/02 00:00
  • Posted by 보다
  • RSS http://bo-da.net/rss/response/252
  • Trackback URL http://bo-da.net/trackback/252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8 : 9 : Next »
© 2008 bo-da All rights reserved. | staff | cont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