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 스터프 [New Classic]
- Posted at 2008/09/11 00:00
- Filed under review/국내

New Classic (2008/Dope Ent.)
7.8
01. Confession (고해)
02. New Classic
03. 나의 거리로
04. 그 시간 속 기억
05. 천사의노래
06. Life For Man, Man For Life
07. 최고의 형제여 나의 곁으로
08. 1982 (Punkrock Chivarly)
09. The Cross
10. Ave Maria
11. Cheers To You
12. Forever & Ever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음악이 있다. 장르의 어법을 강화하는 음악과 장르의 어법에 균열을 내는 음악. 장르의 어법을 강화하는 음악은 특정 장르의 특성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음악을 함으로써 부담감 없고 친근하지만, 실제 장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장르의 어법에 균열을 내는 새로운 시도들이다. 굳이 예를 들 필요도 없이 기존 장르의 익숙함에 기대는 안일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적 언어를 분명히 하는 과감한 시도는 대중음악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동인(動因)이며 로컬 씬의 독자성을 담보하는 자존심이다.
스트리트 펑크 밴드 썩 스터프(Suck Stuff)의 지난 앨범들 역시 기존 펑크의 단발적인 언어로만 규정될 수 없는, 그리하여 한국 펑크의 어법에 균열과 주름을 만드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팝송이 되어버린 펑크와 투쟁가로 남은 펑크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온 이들이 내놓았던 지난 2007년의 2집 [Rough Times Ahead] 이후 1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앨범 [New Classic]에서도 이들의 차이는 한결같다. 선명하게 분노하고 난폭하게 터트리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패배를 음미하고 즐기는 듯한 이들의 깊이 있는 현실인식은 다른 펑크 밴드들의 즉자적인 분노와는 다른 지점의 달관과도 같은 정서를 내비치고 있다. 거친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맞대응하며 자신의 감정을 휘발시켜버리지 않고 패배의 상처를 내면화하면서 자신의 삶과 태도를 긍정하고 빛나는 미래를 확신하는 여유는 사유의 깊이가 다른 노랫말의 정갈하고 운율감 있는 서술을 통해 개성적으로 드러난다. 이 속 깊고 단단한 젊음의 언어는 노랫말을 쓴 보컬 류철환의 페이소스 가득한 저음의 보컬을 통해 일관되게 발화됨으로써 기존 스트리트 펑크의 패기만만한 정서를 뛰어넘는 차이와 품격을 획득하고 있다.
패배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게 응시하며 무책임한 낙관보다는 담담한 여유를 선택하는 태도의 차이는 [New Classic]에 담긴 12곡의 폭넓은 음악적 자장을 통해 흥미롭게 구현된다. 성찰의 품위를 예감하게 하는 <Confession>의 인트로를 지나 <New Classic>의 낮게 으르렁거리는 젊은 사자 같은 자신감, <나의 거리로>의 팝적 여유, <그 시간 속 기억>의 익숙한 스트리트 펑크 이후 복고적인 록 스타일의 서정미를 뿜어내는 <천사의 노래>를 통과하면 앨범의 대표적인 싱얼롱 곡으로 손색없는 <Life For Man, Man For Life>의 기백을 마주하게 된다. 호쾌한 속도감으로 단숨에 숨 가쁜 정점에 올랐던 열기는 반복적 멜로디와 가사가 인상적인 <최고의 형제여 나의 곁으로>를 통해 숨을 골랐다가 <1982>의 전형성을 빌어 다시 한 번 달아오른 뒤 후반부의 하모니카 연주를 타고 조용히 스며든다. 포스트 록의 여운을 느끼게 하는 <The Cross>와 리메이크 곡 <Ave Maria>를 이어 기도하는 듯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도입부의 신디 연주가 매력적인 <Cheers To You> 연작은 앨범의 후반부를 새로운 긴장으로 채우며 썩 스터프의 음악적 자장을 확장하는 히든카드와도 같다. 특히 <Ave Maria>처럼 이채로운 리메이크 록 넘버의 존재는 썩 스터프 음악의 진중함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종교적 기원이라는 다른 태도까지 감지하게 한다. 앨범은 <Forever & Ever>의 짧은 록큰롤 엔딩 선언으로 비로소 마무리되지만 엔딩 곡의 공간감 넘치는 여운은 수록곡 40분을 넘기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광휘와 그늘의 순간을 모두 기록하는 완급의 여정은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시종일관 질주하기보다는 수시로 멈춰서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는 고뇌가 돋보인다.
짧지 않은 12곡이 이어지는 내내 짧은 리프를 반복하기보다는 각기 다른 어법의 변화무쌍한 시도를 펼칠 뿐만 아니라 서사성이 분명한 구조와 탄탄한 연주력을 결합시키며 일렉트릭 기타 두 대의 이합집산을 극대화함으로써 록밴드로서의 미덕이 분명한 앨범이다. 단순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존 한국 펑크 음악과는 다른 방법론을 보여주고 있는 썩 스터프의 이처럼 뜨거우면서도 깊고, 여유로우면서도 단단한 3집의 다층적이고 서정적인 질감은 썩 스터프의 이름을 한국 펑크 씬에서도 열외의 존재로 각인시킨다. 다만 너무 간단하게 만들어진 시디 부클릿의 아쉬움은 다음 앨범에서는 나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어찌되었건 최근 한국 펑크 씬에서 껌 엑스가 눈부신 연주력으로 주목받고 있다면 썩 스터프는 송라이팅의 완성도와 세계관의 깊이로 함께 주목해야 할 밴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노회함을 읽고, 혹자는 변화무쌍함을 읽겠지만 다만 주목하지 않았을 뿐, 빛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분명 변화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거리에서 성장한 청춘은 이렇게 성장하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반드시 새로운 전통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서정민갑/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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