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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 - Play With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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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은 상당히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있는 음악인이다. 평단과 동료들로부터 학자적인 아티스트의 이미지로 비치면서도, 보아나 천상지희 같은 아이돌 뮤지션에게도 거리낌 없이 자기 노래를 제공한다. 그런데도 이 상반된 모습이 결코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유희열부터 엄정화, 노영심, 더블유앤웨일(W&Whale), 윤건, 소녀시대, 마이 앤트 메리(My Aunt Mary), 페퍼톤스(Peppertones), 아스트로 비츠(Astro Bits), 그리고 배우 이선균까지. 최근 발매된 송북 [Play With Him!]은 그런 윤상의 독특한 포지션과 위상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 앨범이다. 새로운 일렉트로닉 유닛인 모텟(Mo:tet)과 송북의 홍보, 그리고 콘서트를 위해 1년 만에 한국을 찾은 윤상을 만났다.

일시: 2008년 12월 19일 17:30~18:30
장소: 한겨레신문사 인터뷰실
대담: 윤상 vs 김학선

김학선: 유학 간지는 얼마나 됐나?

윤상: 2003년부터 학교를 다녔으니까 6년 정도 된 것 같다. 처음에 버클리 음대엘 들어갔고, 지금은 뉴욕대학교(NYU)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김학선: 왜 갑자기 유학을 가기로 한 건가?

윤상: 얘기하자면 길다.(웃음)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10년 이상 음악을 한 거였는데 당시 한국 대중음악 시장이 여러 가지 형태로 바뀌고 거기에 적응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뭔가 생각이 복잡해졌다. '과연 내가 뭘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또 내가 음대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나이를 먹고 음악 잘 하는 후배들이 생기는 모습을 보면서 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원치 않아서 유학을 가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가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서 가지 못 한 거였기 때문에 그런 복잡한 생각들이 겹쳐지면서 유학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특별히 공부를 하지 않고 음악을 잘 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건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당시 한국 음악 시장이 그때부터 슬슬 힘들어지고 사이클이 빨라지다 보니까 예전부터 욕심이 있었던 버클리 음대에 가기로 결심하게 된 거다.

김학선: 원래는 버클리 음대 공부만 마치고 돌아올 계획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윤상: 원래는 그랬다. 근데 공부라는 게...(웃음) 지금 내가 박사하고 이럴 나이인데 학부만 하다 보니까 이런저런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또 학부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궁금증들이 생기다 보니까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음악을 녹음하고 믹싱하고 만드는 테크놀로지들이 급변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릴 테이프에 녹음하던 아날로그 세댄데 지금은 전부 다 컴퓨터로 녹음을 하고 있고, 내가 또 한국에서 미디 1세대에 해당하는 세대기 때문에 그 부분을 극복하려면 좀 더 공부가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오래 머물게 됐다.

김학선: 지금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 하고 있는 공부가 뮤직 테크놀로지이다.

윤상: 다니고 있는 과의 성격을 정의하기가 좀 애매하다. 기술적으로 가면 오디오적인 측면에서 한없이 학자적으로 파는 친구들이 있고, 나처럼 음악을 하는 뮤지션 입장에서 이런 것들을 배워서 자기 음악에 접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다. 나는 공부를 파는 사람이기보다는 내 음악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다.

김학선: 근데 또 석사 따고 나면 박사 욕심도 나는 것 아닌가?(웃음)

윤상: 기획사에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석·박사 과정' 이런 식으로 홍보를 했는데(웃음), 사실 박사 과정이 있긴 있다. 근데 NYU에서 뮤직 테크놀로지 박사는 음악 쪽이라기보다는 전문 연구원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아마 졸업하면은 더 이상의 미련은 갖지 않을 것 같다.

김학선: 졸업 예정 년도는 언제인가?

윤상: 두 학기가 남았는데, 원래는 12월에 [Songbook]이랑 6집 앨범을 같이 발매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누들로드>라는 다큐멘터리가 원래는 10월에 방송을 해서 이미 끝났어야 되는 건데, 그게 미뤄지고 나도 한국에 오면서 2편 음악까지 간신히 완성하고 3편 음악을 29일 아침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웃음) 1월 초에 개강하면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도저히 6집 앨범 작업을 끝낼 수 없을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Songbook] 먼저 발매하게 됐다. 6집 앨범은 봄 학기 마치고 돌아와서 낼 수 있을 것 같다.

김학선: 한국에는 자주 들르는 편인가?

윤상: 이번엔 1년 만에 왔다. 자주는 못 왔고,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3번 정도 온 것 같다. 이번엔 모텟 쇼케이스도 있고 [Songbook] 홍보도 해야 하고, 또 1월 10일에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공연을 갖게 돼서 오게 됐다. 6년 만에 하는 공연인데, 6년이란 시간을 생각해보니까 지금 대학교 1학년인 학생은 6년 전에 중학교 1학년이었던 거다.(웃음) 그 친구의 학창시절에 윤상이란 가수는 없었던 거라고 생각하니까 위기감이 들어서, 공연을 한 번 하면서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심리 그런 걸 만들어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웃음)

김학선: 모텟 앨범이 6집보다 먼저 나오는 건가?

윤상: 그렇다. 먼저 나온다. 사실 이런 얘기하는 게 쑥스럽긴 한데 모텟 앨범은 1000장 찍기로 했다. 그러니까 상업적인 것과는 관계가 없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만을 담은 거다. 한국에서 전자음악이라고 하는 음악들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원래의 일렉트로니카라든지 IDM 같은 이런 쪽 장르와는 괴리감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걸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을 한 거다. 유럽이나 미국의 일렉트로니카 씬과 같은 레벨에서 들려줄 수 있는 한국의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

김학선: 모텟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개를 부탁한다.

윤상: 둘 다 예명을 쓰는데, 강준오란 친구가 슈퍼드라이브(Superdrive)란 이름을 쓰고 이우준이란 친구가 카입(Kayip)이란 이름을 쓴다. 준오는 슈퍼드라이브란 이름 말고도 이번 [Songbook] 앨범에서 주노(Junø)란 이름으로 참여를 했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접수되기 힘든 음악들을 하는 친구들이다. 외국에서 차근차근 자기들의 기반을 쌓아가고 있는데 그 친구들을 알게 되면서 그 친구들의 음악을 소개하고 싶었다. 일렉트로니카의 새로운 세대들이 나 같은 옛날 세대와 만나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의미가 있고, 비록 1000장이지만 우리 욕심껏 소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하게 됐다.

김학선: 그럼 모텟 음악은 IDM이나 드럼앤베이스 쪽으로 가는 건가?

윤상: 딱히 세부 장르를 한다고 하기는 어렵고 일렉트로니카로 할 수 있는 전반적인 음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전자음을 기반으로 우리만의 색깔을 갖고 싶은 거다.

김학선: [Songbook] 얘기를 하자면, 이게 한국에선 그리 흔한 게 아닌데 처음에 어떻게 기획을 하게 됐나?

윤상: 작년에 (유)희열이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지나가는 얘기로 "올해 내가 벌써 20년째야." 그랬더니 희열이가 "그럼 뭔가 계획을 해서 하나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희열이가 워낙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많은 친구니까 그럼 뭔가 같이 한 번 해볼까, 생각을 했었는데 얘기만 해놓고 끝인 거다.(웃음) 난 내심 희열이가 진행을 해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도 바쁘고 자기 앨범도 그때 나왔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진척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내 음악의 90% 이상 가사를 쓴 박창학 씨가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을 했다. 나는 음악으로만 나를 드러내는 거지 사실 내가 갖고 있는 메시지는 박창학 씨가 다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박창학 씨가 자신이 프로듀서를 해보겠다 결심을 하고 주위에 함께 할 수 있는 뮤지션들을 모았다. 이 앨범을 통해서 정말 많은 힘을 얻었다. 이렇게 멋진 음악을 하는 친구들과 후배들이 나를 위해서 이런 앨범을 만들어줬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나의 노래들을 모르는 어린 친구들도 있을 텐데 이 앨범에 있는 노래들이 6년이라는 갭을 뛰어넘게 해준 것 같다. 이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팬들이 이런 노래들을 통해서 윤상이란 뮤지션을 알게 된다면 그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나라는 대중음악을 오래 했다고 해도 그걸 기념해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상 같은 것이 없지 않나. 일단 권위가 워낙 땅바닥에 떨어져있다 보니까 대중음악 작곡가는 그냥 대중이 원하는 것만 만들어주는 걸로 인식이 돼있는데,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존경하는 한국 작곡가 분들도 너무 쉽게 잊혀진다. 오래 기억할 수 있으려면 시상이나 이런 장치가 제대로 돼야 하는데 방송국에서 무슨 상 받았다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곡가나 프로듀서는 거의 없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송북이 유행이 됐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희열이나 (김)동률이도 나이를 먹을 텐데 20년 정도 하다 보면 또 후배들이나 친구들, 선배들이 도와줘서 송북이 나오고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송북이란 게 또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이번 앨범이 그런 시초가 됐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김학선: 송북이 일종의 헌정앨범의 성격도 갖고 있지 않나.

윤상: 그렇다. 기본적으로는 그런데 보통 '헌정앨범' 그러면 중심이 없다. 나도 헌정앨범 많이 들었고 내가 직접 참여한 적도 있는데, 돌아가셨다든지 나이가 많으시다든지 그런 이유로 주인공이 빠진 상태에서 참여 뮤지션들하고 별 관계가 없이 앨범이 만들어지면 구심점이 없다 보니까 정말 '기념' 이상의 의미는 갖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런데 이번 [Songbook] 앨범은 박창학 씨가 프로듀서로 참여를 했고, 지금 현재 소개되고 있는 음악들과 견주었을 때도 그 퀄리티가 굉장하다고 생각을 한다. 결코 내 앨범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웃음) 다 만들어진 걸 들어보니까 내가 부른 곡들과는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서 무척 맘에 들었다. 곡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중적으로 대박이 난 것 이상의 가치가 있는 그런 기분과 에너지와 용기를 느꼈다.

김학선: 외국의 예를 보면 일반적으로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같은 '대가'들의 송북 앨범이 많이 만들어진다. 이런 점에서 후배들에게 송북 앨범을 받는 감회는 어떤가?

윤상: 물론 그렇긴 한데(웃음), 브라질 같은 경우는 송북 앨범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편이다. 한국에서도 故이영훈 선배님이 [옛사랑]이란 앨범을 내기도 했었는데, 나는 송북 앨범이란 게 꼭 나이가 많거나 일가를 이룬 분들만 대상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을 한다. 이런 기획을 한 것도 지금 우리가 너무 힘드니까 함께 힘을 내자는 의미도 있다. 지금 우리 회사 굉장히 어렵고, 난 3집 이후로는 앨범으로 이익을 남겨본 적이 없다. 이런 현실을 창피해할 것 없이 다 함께 나누는 거다. 누군가 또 이런 기획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의 송북을 만들어주고 하는 거다. 난 그래서 지금 이런 작업이 품앗이라고 생각한다. 이 친구들에게 필요한 부분은 내가 또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고, 평소에는 연락하려 해도 좀 어색해서 머뭇머뭇하는 게 있었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서로 아쉬운 부분을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김학선: 예전에 W가 웨어 더 스토리 엔즈(Where The Story Ends) 시절에 <기도>란 노래를 통해서 윤상 씨에게 오마주를 표한 적도 있다.

윤상: 그때는 너무 일렀다.(웃음) (배)영준 씨가 나에게 헌사를 해줬는데 그때는 너무 빨랐다.(웃음) 물론 나의 음악을 좋아해주니까 굉장히 기쁘긴 했지만 내 스스로는 좀 민망한 게 있었다. 그때 겨우 3집 냈을 때라.(웃음) 그런데 그렇게 또 미리 바람을 잡아주니까 이런 송북 앨범을 기획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김학선: 참여 뮤지션들 선택과 섭외는 다 박창학 씨가 담당한 건가?

윤상: 처음엔 지원자들을 모집했다.(웃음) 일단 우리 선에서 섭외가 됐고, 또 앨범이 대중적으로 너무 취약하면 경쟁력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그런 점도 염두에 두면서 섭외를 했다. 그래도 음악적이지 않은 친구들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이)선균 씨까지도. 배우 중에 내 팬이 별로 없는데, 선균 씨가 [Part 2] 앨범에 있는 <소년>이라는 한 번도 PR 안 된 곡을 너무 좋아한다면서 자청을 했다. 목소리가 워낙 매력 있지 않은가. 너무 잘 들었다. 진짜로 '소년' 같다.

김학선: 가장 눈에 띄는 게 아무래도 소녀시대인데, 어떻게 섭외가 된 건가?

윤상: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내 앨범을 유통했었다. 그런 과정에서 동방신기나 보아, 천상지희 같은 친구들에게 곡을 줬었는데 그거는 SM에서 기획을 해서 나에게 곡 의뢰가 왔던 거였다. 그런 관계에 있다 보니까 그럼 내 앨범에도 SM 가수들을 초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소녀시대에게 요청을 한 거다. <랄랄라> 원곡이 들어있는 앨범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그 앨범 때문에 내가 굉장히 큰 실패를 맛봤었다. 무슨 앨범인지 찾으려 해도 끝까지 못 찾을 거다.(웃음) 알로라는 가수였는데 10년 전에 제작에 참여했다가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공동제작을 했었는데 불발이 돼버려서 곡들이 너무 묻혀버렸다. 당시에 희열이부터 해서 주변 동료들이 "알로의 <잠자는 숲속의 왕자>와 <랄랄라>는 너무 빨랐어, 너무 아까워." 이런 얘기들을 해서 이번 앨범에 다시 한 번 넣을 생각을 했고 적임자는 소녀시대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기획을 하게 됐다.

김학선: 메이저에 있는 뮤지션들뿐 아니라 인디 씬에 있는 뮤지션들도 많이 참여를 했다.

윤상: 마이 언트 메리 같은 친구들은 이미 스타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아하는 팀이고. 페퍼톤스는 음악을 처음 듣고서 정말 깜짝 놀랐었다. 상업적으로 더 잘 될 줄 알았는데, 3집을 기대해봐야 할 것 같다.(웃음) 다들 너무 훌륭한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라 무척 고마웠다.

김학선: 평소에도 인디 쪽에 있는 뮤지션들 음악도 많이 듣는 편인가?

윤상: 들을 만한 사람들만 듣는다. 거기는 정말 '모 아니면 도'일 수가 있으니까.(웃음)

김학선: 개인적으론 <마지막 거짓말>이랑 <질주>를 가장 좋게 들었다. 윤상 씨는 가장 맘에 드는 해석이 어떤 거였나?

윤상: 여기 참여한 친구들은 내가 앞으로 감사를 표해야 할 친구들이기 때문에 뭐 하나를 꼬집을 수는 없다. <마지막 거짓말> 같은 곡은 워낙 원곡에 애정을 갖고 있는 골수팬들이 많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평이 아주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다. 못 듣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곡을 베스트 트랙으로 뽑아주는 사람들도 많아서 아주 기뻤다. 우리 밴드기 때문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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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윤상 씨는 평단이나 주변 뮤지션들에게 굉장히 아티스트적인 이미지가 강한 반면에 아까 말한 것처럼 아이돌 뮤지션에게 곡을 줘도 그게 크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윤상: 나는 대중음악 작곡가일 뿐이고, 음악 프로듀서일 뿐이다. 나는 가수들마다 각자의 장점이라는 건 다 갖고 있다고 본다. 보아가 할 수 있는 노래를 강수지가 할 수는 없고, 강수지가 해야 할 곡을 천상지희가 할 수도 없는 거다. 그렇게 다른 상품을 나눠서 팔 수 있는 게 프로 작곡가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친구들도 대중가요계에서 자기 몫을 갖고 있는 가수들인 거지, 누가 음악성이 더 있고 없고, 이렇게 보지는 않는다.

김학선: 내 주변에선 윤상과 강수지 콤비를 다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웃음)

윤상: 강수지 씨는 사실 자기 발로 온 거지 내가 발굴한 것도 아니다. 나는 가수를 발굴하는 데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강수지 씨는 나에게 있어 굉장히 고마운 사람이다. 작곡가로서 내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해준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이번에 미니 앨범이 하나 나오는데 거기에도 내가 참여를 했다. 잘 돼야 하는데...(웃음)

김학선: 음악을 하는데 있어서 대중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전파하는데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전에 윤상 씨는 '월드뮤직 전도사' 같은 이미지가 있었고, 일렉트로니카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윤상: 일단 나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 이전에 듣는 사람이다. 음악 듣는 걸 워낙 좋아한다. 내가 좋게 들은 것들은 언제든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있다. 월드뮤직 같은 건 그때 내가 한참 DJ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이 소개를 하고 싶었고, 지금 내가 공부하고 있는 게 아무래도 전자음악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이쪽으로 소개를 할 것 같다. 나도 유행을 탈 때가 있고 또 변하기도 해야 하니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김학선: 음악을 만들 때 대중성을 염두에 두는 편인가?

윤상: 가수에 따라 다르다. 어떤 가수가 정말 '히트곡'을 원해서 왔을 때는 최대한 그렇게 만들어주려고 한다. 반면에 내가 그렇게까지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이 이 가수와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우에는 대중성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만든다.

김학선: 본인 음악을 만들 때는 어떤가?

윤상: 1집 만들 때 너무 회사에 매여서 상업성을 강요당했었다. 4집, 5집 같은 경우는 그런 면에서 대중가수의 이미지와 고뇌하는 음악 프로듀서의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면서 만든 앨범이었다. 그런 고민들이 이번에 많이 정리가 됐다. 이번에 다큐멘터리 음악도 담당을 했고, 송북이라는 형태로 후배들과 친구들의 사랑도 받았고, 또 모텟이라는 기획사 입장에서는 정말 달갑지 않은 앨범도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윤상이라는 가수로서 앨범을 낼 때는 보다 대중음악 가수로 돌아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예전엔 그게 다 섞여서 생각이 되니까 너무 힘들었었다.

김학선: [Insensible] 음반 같은 경우가 그런 고민의 흔적인가?(웃음)

윤상: 그게 왜 다섯 곡밖에 들어있지 않겠나.(웃음) 30대가 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은 한 사람의 가수이자 작곡가로서 정말 멋진 걸 만들고 싶은데 앨범이 또 내 맘대로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정규 앨범으로 만들지 못하고 1년 정도 계속 골치를 썩다가 결국 EP 형태로 나오게 된 거다.

김학선: 윤상 씨의 골수팬들은 그 음반을 최고로 치지 않나.

윤상: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너무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에 또 다시 그런 과정을 거치라면 난 더 이상 세상에 살아있지 못할 거다.(웃음) 그런데 그 음반이 그렇게까지 안 나갈 줄은 몰랐다. 완전 망했다. (잠시 매니저와 3만 장인지 7만 장인지 판매량을 놓고 설왕설래.) 내가 그래도 100만 장 가수였는데 판매량을 보고 좀 좌절했었다.

김학선: [Renacimiento] 앨범도 안 나가긴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윤상: [Renacimiento]는 그래도 10만 장은 넘었다. 그때는 그래도 윤상이라는 브랜드가 있었기 때문에 15만 장 정도는 팔렸는데 제작비로 거의 2억 정도가 들었기 때문에 택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학선: 메인스트림에서 밀려날까 하는 불안감 같은 게 있나?

윤상: 나는 일부러 나간 측면이 있다. 나는 사실 가수로서 어떤 비전을 갖고 있던 게 아니고 내가 사고 싶은 악기를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처음 계약을 한 거였다. 근데 1집이 성공하고 2집이 100만 장이 나가버리니까 주변에서 더 상업적으로 나가라고 엄청난 압력을 가했다. [Part 2] 앨범을 만들 때 그런 압력과 싸우고, 내가 하고 싶었던 새로운 방향으로 해서 결국 30만 장이 나가니까 회사에선 난리가 난 거다. 100만 가수를 150만 가수로 만드는 게 회사의 존재이유인데 30만 가수가 돼버리니까 회사 입장에선 완전히 망한 거였다. 나는 딱 그 정도 선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소위 오빠부대의 리더가 돼서 소녀들을 포용하면서 사는 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고, 음악가로서 나의 존재 이유를 가지면서 살고 싶었다. 너무 슈퍼스타 말고 독특한 캐릭터로 살고 싶었는데 군대를 갔다 오고 나니까 이젠 그런 실험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나버려 있었다. 거기에서 에러가 난 거다. 나는 항상 아주 가깝지도 않고 아주 멀지도 않은 선을 지키고 싶었는데 그 선을 지키다 보니 어느새 아주 멀리 가있게 되어버린 거였다.

김학선: 현재 가장 하고 싶은 음악은 어떤 건가?

윤상: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는 것 같다. 모텟도 그렇고, 다큐멘터리 음악도 마찬가지다. 예전부터 영상에 맞춘 음악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아무 영상이나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정말 특별한 영상에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 다큐는 KBS에서 <차마고도> 이후로 굉장히 신경 써서 만드는 다큐이기 때문에 만족한다. 지원금이 참 짠데, 그래도 믹싱까지 내가 다 하면서 100% 가내수공업으로 작업하고 있다. 나만 만족하면 되는 거니까.(웃음)

김학선: 옛날로 좀 돌아가서, 김현식의 <여름밤의 꿈>과 황치훈의 <추억 속의 그대> 가운데 어떤 게 데뷔곡이라 할 수 있는 건가?

윤상: 비슷한 시기에 나와서 가물가물하다. 황치훈 씨 곡은 당시에 꽤 많이 알려졌고 현식이 형 곡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진 않았는데, 그래도 존재감이 워낙 대단했던 사람이라 김현식 씨 팬이라면 그 곡이 들어있는 4집 앨범 전체를 다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김학선: 김현식 씨에겐 어떻게 곡을 주게 된 건가?

윤상: 처음에 음악을 한 게, 물론 좋아서 한 것도 있지만 돈을 벌어야하는 이유도 컸다. 그룹사운드를 하다가 멤버들이 다 군대를 가고 나 혼자 남았는데 당시 집안에 힘든 일도 있었고 해서 내가 학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에 신촌이 음악적으로 에너지가 활발했었는데 난 신촌블루스 따라다니면서 포스터 붙이고 그 형들 공연하면 뒤에서 케이블도 나르고 했었다. 당시에 현식이 형이 신촌블루스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고, 김종진 씨 같은 좋은 분들이 나를 굉장히 많이 도와줬었다. 그때 종진이 형이 내 데모 테이프를 사람들에게 들려줬고, 그걸 들은 현식이 형이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야, 그거 내가 불러도 되겠냐?" 하는데 나야 뭐 완전히 '불러만 주신다면야.' 이거 아니었겠나.(웃음) 근데 그 당시엔 선배들이 신인 작곡가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싫어했었다. 그래서 작곡가이었음에도 녹음실 구경도 못했다. 그분은 또 그런 스타일이니까 내가 있었다 해도 "형, 이렇게 불러주세요, 저렇게 불러주세요." 이렇게 감히 하지 못 했을 거다. 요새 애들은 다 그러는데.(웃음)

김학선: 나온 걸 들어보니 어땠나?

윤상: 그냥 신기했다. '작사·작곡 윤상' 이렇게 쓰여있고, 편곡자에는 내가 존경해마지않는 베이시스트 송홍섭, 이렇게 이름이 같이 있으니까. 내 노래가 김현식 씨의 앨범에 들어있는 것만으로도 날개가 달린 거다. 그야말로 용기백배였다.

김학선: 그 당시에 어울렸던 뮤지션들은 다 동아기획 소속이었는데 정작 윤상 씨 앨범은 동아기획에서 나오지 않았다.

윤상: 사장님이 나에게 별 관심이 없으셨다. 대신에 더 상업적인 음악을 원하는 분들이 나의 음악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그래서 당시에 나도 좀 서운해 했었던 것 같다. 인연이 닿았다면 내가 가수 데뷔를 1988년쯤에 할 수 있었을 텐데...

김학선: 1988년에 작곡가로서 데뷔를 한 건데, 그 당시와 비교하면 음악적인 면에서 많이 바뀐 편인가?

윤상: 아무래도 그렇다. 예전에는 좋은 가수를 만났다거나 기회가 생기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감성적으로 곡을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주변의 상황과 형평성을 다 따져야 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때가 더 쉽게 음악을 했었던 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학선: 당시에 장르적으로 어떤 걸 하고 싶다거나 하는 것들이 있었나?

윤상: 당시에 나에게 장르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오직 완성도가 문제였다. 그때 한국 음악에는 장르라는 게 없었다. 그저 뽕짝이 있었고, 뽕짝 아닌 게 있었다. 빠른 음악이 있었고 느린 음악이 있었을 뿐이다. 그건 지금도 거의 마찬가지라고 본다.

김학선: 아까 6집 앨범 얘기를 잠깐 했는데 언제쯤 발매할 예정인가?

윤상: 지금 일단은 4, 5월 정도로 계획을 잡아두고 있다. 이번 앨범에서는 나의 기술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건 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에 내가 좋아했던 팝송이나 가요 같은, 두고두고 들어도 낯설지 않은 음악을 만들려고 한다. 사실 이게 내가 1집 만들 때부터 생각했던 방향성이었는데 그런 부분이 좀 더 잘 살 수 있는 노래곡을 만들 생각이다. 장르는 그래봐야 윤상이니까.(웃음) 옛날에는 "윤상 음악은 다 똑같아." 이런 소리만 듣고 살았던 적도 있었다. 참 억울했었다. 자세히 좀 들어보지.(웃음) (※ 6집 앨범은 모두 노래들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김학선: 포토에세이집도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다.

윤상: 여기 옆에 있는 김기홍 실장님이 아마추어급을 뛰어넘는 사진 실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 두 번 와서 나하고 같이 돌아다니면서 뉴욕과 뉴저지를 찍었고, 나는 그동안 내가 미국에서 지냈던 이야기들 가운데 그냥은 못하겠는 얘기들을 사진이랑 글로 편하게 담을 예정이다. 이걸 기획하게 된 계기가 학교 다니면서 졸업 작품으로 만든 실험적인 곡들이 있는데 이걸 상업적으로 팔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런데 또 공개는 하고 싶고 해서 책을 만들어서 별책부록으로 같이 주면 책을 사는 분들에게도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기획을 하게 된 거다.

김학선: 요즘 한국 대중음악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윤상: 작년보단 낫다. 동률이나 희열이나 벌써 노장 소리를 듣는데, 그래도 이 친구들이 좋은 결과물들을 갖고 오니까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나는 빅뱅(Bigbang)도 좋다. 나름의 색깔도 있고 좋다. 그 대신 너무 기획사에서 날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아껴서 앨범마다의 색깔 같은 걸 확실히 만들었으면 좋겠다.

김학선: 그럼 한동안은 암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던 건가?

윤상: 그렇다. 너무 꼭두각시 노릇들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W의 성공은 정말 엄청난 것 같다. 이번에 2만 장이 넘었다고 하는데 영준 씨는 코나(Kona) 때부터 알고 지냈지만 진짜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나이를 먹었는데 옛날보다 더 세련돼진 것 같다. (※ W가 준비하고 있는 리믹스 앨범에 윤상이 작업한 <R.P.G. Shine>의 리믹스곡이 수록될 예정이다.)

김학선: 윤상 씨와 같이 90년대에 같이 활동했던 분들이 지금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음악을 하고 있는데, 그런 분들이 계속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힘이 되기도 하나?

윤상: 힘까지는 아니어도(웃음), '사라지지 마라.' 이런 생각은 갖고 있다. 설령 5년, 10년 만에 앨범을 낸다고 해도 그게 들을 만하면 당연히 화제가 되는 거고, 그 팬들은 몇 년 만에 동창회 가는 기분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으면서 좋아하고 그러는 거다. "맛이 갔다"라고 표현을 해버리면 서글퍼진다. 음악이 팔릴 때도 있는 거고 안 팔릴 때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그 팬들은 죽을 때까지 그 가수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고 본다.


2009/01/17 00:00 2009/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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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1. psyeno 2009/01/20 07:49  |  M/D  |  Reply

    잘읽었습니다.

  2. pastry 2009/01/21 10:35  |  M/D  |  Reply

    이분 전성기땐 백만장이나 파셨었군요;; 전혀 몰랐네요 ㅋ
    전 나중에 나온 클리쉐앨범이랑 이사 앨범만 들어봤습니다. 그 이전앨범은 촌스럽지 않을까 해서 안들었는데 어떨지 궁금하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3. 김고기 2009/01/27 05:32  |  M/D  |  Reply

    pastry///한 때, 윤상님 끝발 날리던 시절이 있었지요. 물론 대중적 인기로 말입니다. 지금도 대단하긴 하시지만 정말 엄청났어요. 윤상하면 한창때의 이현우보다 더 인기가 많았죠. 동네 아는 누나도 윤상 아니면 시집 안갈거라고 그랬던게 기억나네요. 하하

  4. wookdnr 2009/06/03 11:22  |  M/D  |  Reply

    글 잘봤습니다!!
    songbook도 너무 잘듣고 있구요~

    언제나처럼 좋은 음악부탁드리겠습니다. 윤상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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