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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장혁 작사/작곡)

바람이 불어오고
철새는 날아가고
그대 없는 봄에
난 흠뻑 취해
할 일도 잊어가네

작은 벌레들은 깨어나
아무도 몰래 집을 짓고
주어진 만큼의 날들을 위해
힘을 다해 싸우네

그리고 난 다시
자전거를 꺼내
봄이 오는 언덕을 향해
페달을 밟아

미칠 듯 꽃은 피고
슬픈 저녁이 찾아오고
우린 저마다의 식탁에 앉아
쓸쓸히 밥을 먹지

할 말이 많았는데
항상 난 머뭇거렸었어
어쩌다 그대를 만난다 해도
건넬 수 없는 말들

미쳐가는 봄밤
그댄 또 어디서
나도 없이 잘도 지내고 있는 건지

그리고 난 여기
부는 바람 속에
쓰라렸던 지난 겨울의 탄식들을
씻어가네

지난 해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은 물론 할로우 잰(Hollow Jan)의 [Rough Draft In Progress]였지만 가장 빼어난 곡을 고르라고 했다면 이장혁의 <봄>을 골랐을 것이다. 이장혁의 홈페이지(http://www.leejanghyuk.com/)에 데모로 올려놓은 <봄>을 다운 받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누수>나 <스무살>의 비감한 서정을 직조해 낸 그가 한발 더 나아갔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다미엔 라이스(Damien Rice)의 <The Blower's Daughter>처럼 아름다운 노래가 우리말로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어쩔 수 없이 그즈음 헤어졌던 사람 생각이 번득 가슴을 베며 지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서려 했지만 서러워 꾹꾹 눌러뒀던 상처는 흡사 내 일상 같은 노랫말과 데모라서 더욱 처연했던 이장혁의 목소리 덕분에 조금 더디게 아물어야 했다. 사랑이 뜻대로 되지 않았듯 이별도 뜻대로 되지 않았던 그 때, 세상은 이장혁의 노래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갔고 나는 다만 존재하기 위해 싸우고 살아남기 위해 밥을 먹으며 견디기 위해 자전거라도 타야했다. 그러나 차마 소리 내어 아프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주름이 늘어나며 눈물이 치욕이 되고, 그리움이 습관이 되는 것은 스스로도 견디기 힘들었기에 가끔 골목길 담벼락 아래 오줌을 갈기며 누군가를 욕하는 편이 나았다. 그 봄, 라일락 꽃향기가 어깨를 조용히 감싸주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랑에 달떴던 날들이 무참하게 흘러가버린 후일담을 이처럼 담담하고 명징하게 기록한 이장혁의 단편시 덕분에 나는 그 봄을 살아 견딜 수 있었다. 분명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사람의 청자로서 뒤늦은 감사를 전한다. (서정민갑/보다)


2008/08/06 11:53 2008/08/0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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