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찬 [달에서 온 편지]
- Posted at 2010/01/12 00:00
- Filed under review/국내

달에서 온 편지 (2009/Vitamin Ent.)
7.1
CD 1
01. 비둘기야 비둘기야
02. 사막을 걸어온 네온사인
03. Time After Time
04. 추억 #1
05. 말해줄게
06. Crazy For You
07. Long Trip
08. 좋은 날
09. 빨강머리 작은 새
10. Ben
11. 잠이 늘었어
12. 서울하늘
13. 믿어지지 않는 얘기
14. The Water Is Wide
15. 무지개
CD 2
01. I Love You
02. I Love You (Inst.)
드디어, 조규찬의 어쿠스틱 앨범입니다. 아마 조규찬의 노래를 한 곡이라도 좋아한 기억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가 어쿠스틱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가슴이 설레었을 겁니다. 지난 2008년 내놓았던 리메이크 앨범 [Remake]의 데면데면함에 충격을 받았던 팬들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정말이지, 앨범 타이틀부터 커버, 노래들까지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구요. 덕분에 항간에는 [Remake]가 이번 어쿠스틱 앨범을 내기 위해 조규찬이 기획사와 딜(deal)을 한 앨범이라는 소문도 있었죠. 물론 짓궂은 농담일 가능성이 크지만요.
그런데 농담처럼 도는 이 '기획사와의 딜'설이 [달에서 온 편지]를 들으면서 좀 그럴듯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앨범, 꽤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고 기획해 온 손때가 느껴지거든요. 앨범의 첫 시작은 아마도 조규찬이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열어온 어쿠스틱 라이브들 일겁니다. 본격적인 시작은 지난해 2월부터 전국 각지에서 열렸던 조규찬의 소극장 투어였다고 하죠. 원래 계획대로라면 라이브 실황 음원들도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다지만, 천성 어디 가나요. 특유의 완벽주의 덕분에 앨범은 최대한 라이브의 느낌을 살린 스튜디오 제작앨범으로 말끔히 똑 떨어졌습니다. 참, 9월에는 조규찬이 직접 쓴 수필과 단편 소설들이 담긴 앨범과 같은 제목의 책이 발매되기도 했었고요.
이렇듯 일견 치밀하게 준비되어 온 과정을 되짚어보면, [달에서 온 편지]는 양 어깨에 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한 뮤지션의 최소 한 해 분량 활동들의 마침표를 담당하고 있는 앨범인데다, 그 앨범의 주인공은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꽤나 인정을 받은 사람이죠. 게다가 그 사람은 2005년 이후 정규앨범을 단 한 장도 내지 않고 있는 상태고, 심지어 최근작이었던 또 다른 리메이크 앨범은 쓸 만한 잽 하나 찾기 힘들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엄지가 위로 올라가든 아래로 내려가든 순수한 눈으로 보기는 힘든 앨범이라는 거죠. 물론 만든 사람도 그 점은 알고 있었을 겁니다. 20년 세월 공으로 먹는 거 아니거든요.
앨범은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 조심스레 만들어낸 것답게, 무척 여유롭고 푸근합니다. 사실 앞선 사설들이 좀 무색할 정도로 물 흐르듯 흘러가는 한 장이에요. 통기타나 피아노 한대만으로 만들었다고 '어쿠스틱'이란 수식어만 붙여놓은 앨범들과도 차원을 달리하고요. 좋은 연주자들과 좋은 보컬리스트가, 좋은 노래를 연주하고 노래합니다. 나쁠 수가 없는 노릇이죠. 새 바람이 오는 그늘 시절부터 최근 작업까지 조규찬의 좋은 악곡들 중에서 플러그만 빼낸 곡들과 <Time After Time>, <Ben> 등 세대를 초월한 팝 명곡들이 16곡, 빼곡합니다. 칭찬받는 리메이크 앨범들의 두 가지 경우 – 멋진 재해석으로 전혀 새로운 곡을 탄생 시키는 경우와 원곡의 정수만을 그대로 뽑아 곱게 다시 부르는 경우 중, 이 앨범은 철저히 후자의 길을 따릅니다. 과연 자기 자식의 장점과 단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부모다 싶을 정도로요.
그렇게 군말 없이 푸근한 앨범을 나른하게 듣고 안녕 하면 좋으련만. 저도 천성인지라 자꾸만 삐죽삐죽 불만사항들이 샘솟는 걸 어쩔 수가 없네요. 우선은요, 이 앨범 안에서 빛나는 노래들이 대부분 10년도 더 전에 발표된 노래들이라는 점이 자꾸만 걸립니다. 저 역시 그 시절의 곡들을 좋아하긴 합니다만 사람이 언제까지나 추억만 먹고 살 수는 없는 일이죠. 그나마 가장 어린 곡은 8집에 수록되었던 5살짜리 <잠이 늘었어>입니다. 이 한 곡을 제외하면 모두 97년에 발표된 4집 [The 4th Wind] 이전의 노래들이네요. 팝들이야 뭐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전 세계 팝 팬들과 조규찬 라이브 팬들에게 가장 사랑 받았던 곡들이에요. 수없이 검증된 곡들이라는 거죠. 세월과 청취자들의 날카로운 귀들 사이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노래들이 얼마나 견고한 성에서 살고 있는지 다들 아시죠.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는 것들'의 반복은 '요즘 좀 게으르지 않아?'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또 하나, 앨범에 수록된 새 노래들이 불안합니다. 앨범에는 두 곡의 신곡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우선 5년만의 오리지널 신곡이라는 <Long Trip>은 느낌은 좋지만 짧은 소품이라 무언가 이야기하기가 좀 부족해요. 그렇다면 <I Love You>로 넘어가 봐야겠죠. 이 노래는 대만 가수 데이빗 타오(David Tao)의 <애흔간단>라는 곡을 다시 부른 곡인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조규찬이 데이빗 타오의 노래를 다시 부른 것은 이번으로 세 번째입니다(이전엔 <Baby Baby>와 <Melody>가 있었죠). 5년 동안 새 앨범 하나 내놓은 적 없는 뮤지션의 새 노래치고는 노래 자체도 곡 선택방법도 너무 '안전빵'이라 실망스럽습니다. 조규찬은 좋은 보컬리스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손끝을 가진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합니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희미하지만 4집 전에는 다른 사람이 곡을 줘도 안 받던 사람이었다고요. 물론 다른 사람의 곡을 받아 부른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겠죠. 목소리만으로 노래를 장악하는 가수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조규찬의 경우 최근 작업들로 오면서 직접 고르는 다른 이의 곡들도, 그리고 그 노래를 소화하는 방법도 너무나 지루하다는 게 문제예요. 마냥 세월 탓으로만 돌리기엔 지난 정규작들에 틈틈이 수록되어 있던 섬세한 촉수가 살아있던 곡들이 마냥 아쉬워지고요.
아, 하지만 이건 확실히 보장합니다. 만약 이런저런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달에서 온 편지]를 기꺼이 선택한 당신이라면, 이 앨범은 당신의 오디오 안에서 또 mp3 플레이어 안에서 올 겨울 끊임없이 돌아갈 거예요. 검증된 보컬리스트가 검증된 곡들을 착실히 부른 앨범입니다. 과거나 미래를 보지 않은 채 이 앨범 한 장만 똑 떼어 본다면 솜씨 있는 장인이 만든 클래식한 주크박스임에 틀림없습니다. 조규찬의 노래들과 함께 거닐던 거리와 함께 나눈 추억들을 잊을 수 없는, 혹은 웰메이드 어쿠스틱 앨범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뒤돌아보지 않고 손에 쥐어줄 수 있는 한 장입니다. 어쿠스틱의 온기로 피운 모닥불에 조금 더 가까이 가 앉아 봅니다. 그래요, 뭐. 날씨도 이렇게 추운데 까칠하게 굴지 말고 나중 얘기는 나중에 더 합시다. 우선 같이 몸 좀 녹이자구요. (김윤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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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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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etlike 2010/01/13 00:58 | M/D | Reply
저 "김윤하 님 글 잘 읽고 있어요." 단계에서 더 나아가 김윤하 님 추종자에요. -분명 웹 상에 어느 정도 있다고 알려진- 김윤하 님 감성 정말 좋아해요. 실은 음악취향Y에서부터 늘 이 마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치만 저로서는 정말 범접하기 힘든 분이셨는걸요.
지금 쓰고 있는 코멘트도, 읽으실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 올려봅니다.
확실히 읽으시게 하기 위해 지적 하나 할게요. 글에서 조규찬 님이 David Tao의 곡을 리메이크한 두 번째 사례인 7집 수록곡은 "Melody"랍니다.
김윤하 님의 모습을 좀 더 자주 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김윤하 님도 은둔자이신 건가요? 이규호 님 같은 느낌도 좀 있어요.
아아, 글이 되게 엉망이네요. 좀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
사람 2010/01/13 19:18 | M/D | Reply
저는 5집 이후의 조규찬은 썩 그냥 그랬는데,
guitology 음반때문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 음반은 그간 애매하게 선이 없었던 조규찬을
확실히 넘볼 수 없는 뮤지션으로 거듭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사들이 좀 어지러운 편이었지만 모든게 응집력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 앨범이 실패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조규찬 역시 굉장히 자신감 있게 준비한 것 같았는데,
실패를 했으니 참담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괜찮은 pop들로 그래도 순위에 오르곤 했는데, 잠이 늘었어 하나만
조금 플라이어되고 거의 망했다 싶은듯한데요.
그렇게 실패를 하니
본인도 겁이 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동어반복을 한다는건 현재가 두렵다는거니까요. 리메이크 앨범은 사실 충격이었고...
그러니 이번 앨범 역시 그런 리스트로...
저야 뭐 guitology 앨범 생각도 나고 조촐하고 단백해서 참 좋았습니다.
롱 트립도 너무 좋았구요.
잠시 마음을 다시 가다듬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는 사운드이기도 한듯 합니다.
다음 정규앨범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guitology를 잇는 좋은 앨범이 나왔으면 합니다. -
삿갓 2010/01/13 22:29 | M/D | Reply
팬의 시선이 아닌 팬보다는 조금 먼 거리에서 본 조규찬은 저러했군요.
전 조규찬의 오랜팬인지라 사실 '리메이크'와 이번 '달에서 온 편지' 두 작품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않았어요. 그냥...기다린 팬들에대한 선물정도? 물론 그래서 대충대충 만들어도 된다는 소린 아니지만(대충 하지도 않았을테고) 새로운 창작물이 아닌것에 말씀하신것처럼 그렇게 까칠하게 대할 이유도 없을것 같아요. 무엇이건, 원곡보다 좋기란 하늘의 별따기니까요. 그래도 6집 이후에 나왔던 무지개보단 훨씬 듣기편해져서 좋았어요. 그땐 정말 욕많이 먹었는데...말씀하신 '딜'에 대해서는...기획2장 정규3장인가? 그렇게 계약했다고 들었어요. 이제 정규만 남은거죠. 기획2장을 소속사측에서 제시한만큼 트랙리스트도 진부해질 수 밖에 없었을거예요. 그냥...팬으로써 조금은 변명을 하고싶어서 주절주절 달아봤습니다. 2009년은 담금질이었을테고 2010년의 조규찬을 기대해봐야죠. 정규가 나오면 그제서야 뭔가 평가할 꺼리가 생길거라 생각해요. 이 앨범은 그냥 말씀처럼 편하게 즐기자구요 ㅋㅋ -
경석 2010/01/16 22:03 | M/D | Reply
잘 읽었습니다. 무척 인상깊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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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 2010/01/19 04:59 | M/D | Reply
대체 지금의 조규찬에게 무엇을 바라시나요.
그는 보컬리스트로서만 자신의 자리를 유지할 것입니다.
작곡력은 공력을 다한지 너무 옛날 얘기가 되었으니까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뮤지션에게 한번 어떤 지위가 부여되면
죽을때까지 박탈을 하지 않는 아주 교수보다 더한 특전을 주는 나라죠
조규찬이 천재다 완벽주의자가 하는데
진짜 웃기는 소리죠
저렇게 작곡을 못하는 사람 아무리 똥판을 내도 누구하나
욕 한마디없이 다음엔 잘할거야 이번엔 무슨 사정이 있을거야
끝없이 관대함 속에 놓여지는 사람
진짜 행복한 뮤지션이에요 조규찬은 -
듣다 2010/01/19 12:41 | M/D | Reply
조규찬 정도의 '짬'이면 관전포인트가 '성장'보단 '유효성'이 아닐까 싶은데 그점에선 [달에서 온 편지]가 이름값에 걸맞는 음반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문에 누군가는 이 음반이 성에 차지 않을 수도(아놔 너무 뻔하잖아.=.=a) 누군가는 근래 그가 내놓은 음반들 가운데 가장 맘에 들수도(아놔 바로 이거지!=ㅂ=a) 있다고 봅니다. 음... 정리가 안되는데(OTL) 이름'값'의 값어치를 어느정도로 메기는가에 따라 말이 달라지겠죠.
다만 저로서는 충분히 검증된 작품을 충분히 검증된 솜씨로 만든다는고해서 음반과 음악인이 '클래식'이 되는 건 아니라는 쪽입니다(아니,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음반들이 더러 있어요. 이 음반도 살-짝). 최근 보이즈 투 맨 [Love]도 잘 듣고 있는데 '잘 듣고 있으면서도 뭔가 꼼수를 쓰는 듯한' 인상을 받은 음반이었습니다. 요상하죠 참(이승기가 부릅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
눈떠보니서른 2010/01/22 12:26 | M/D | Reply
전부터 궁금했는데 평점이 리뷰를 쓴 분의 평점인가요, 아니면 이 싸이트의 평론가분들의 평점을 평균낸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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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2010/01/22 13:00 | M/D | Reply
당연히 리뷰를 쓰신 분의 평점이지요. 보다 웹진의 다른 필진분들 의견은 미스터 셀렉시옹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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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oo 2010/01/31 11:35 | M/D | Reply
김윤하님 글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또 한명입니다.
부디 평론 글좀 종종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더 나아가 보다 웹진 모든 평론가님들에게 부탁드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즘이 다른 건 몰라도 양적인 만족감은 있는데,
보다 필진 분들이 꼭 그렇게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실지는 몰라도
하루 하나 정도 짧게라도 올려주시는 리뷰가 쌓이다보면
좀더 재미있는 담론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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