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피플 - 너의 오리지널과 루츠는 무엇이냐
- Posted at 2009/12/03 14:00
- Filed under interview/국내

음악 월간지 '서브(Sub)'의 기자를 시작으로 메리 고 라운드를 거쳐 현재 플라스틱 피플에 이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었다. 메리 고 라운드의 실패를 딛고 김민규는 현재 플라스티 피플의 리더로, 또 일렉트릭 뮤즈라는 레이블의 대표로 인디 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Snap]이라는 빼어난 인디 록 앨범을 발표한 밴드의 리더, 그리고 인디 씬 전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레이블의 대표인 그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플라스틱 피플에서 노래와 키보드를 맡고 있는 윤주미가 함께 해주었다.
날짜: 2009년 7월 31일(금), 16:00~17:30
장소: 망원동 일렉트릭 뮤즈 녹음실
인터뷰: 플라스틱 피플(김민규, 윤주미) vs 김학선
사진: 일렉트릭 뮤즈 제공
김학선: 음악을 좋아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
김민규: 청자로서는 어릴 때부터였다. 그리고 업으로서 음악 쪽 일을 하게 된 건 대학 졸업하자마자 <서브>에 들어가면서부터니까, 10년도 넘었다.
윤주미: 어렸을 땐 팝을 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학교에서 스쿨 밴드 했던 친구들을 알게 돼서 그때부터 헤비메탈의 세계에 빠지게 됐다.(웃음) 그때부터 쭉- 지금까지 오게 됐다.
김학선: 김민규 씨가 인천 출신인 걸로 알고 있는데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인천 메탈 씬이나 그 시절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느껴졌다.
김민규: 사실 음악 쪽에 대한 향수는 그다지 크진 않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가 (메탈) 형들의 전성기였는데 그때는 그저 구경하는 처지였다. 웬만큼 잘하지 않으면 형들이 껴주질 않으니까 스쿨 밴드 따위는 공연 같은 걸 함께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음악에 대한 향수보다는 인천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에 많은 향수를 가지고 있다. 의정부랑 살짝 비슷한 그런 지역성이 좀 있다. 음악적인 부분으로는 그때 같이 놀면서 음악 들려주곤 하던 나름의 히피 형들이 있었다. 메탈 하는 형들보다 더 윗세대였는데 우드스톡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던 형들이었다. 그 형들이 차이나타운 뒤쪽에 카페촌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 가면 그 형들이 "나 이 판 있다"고 뽐내면서 음악을 들려줬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김학선: 고등학교 때는 메탈이 인기를 많이 끌지 않았나?
김민규: 인기 정도가 아니라 그 외의 음악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었다.(웃음)
김학선: 윤주미 씨도 메탈에 빠졌다고 했는데 지금 하는 음악과는 완전 다르다. 언제부터 취향이 바뀌었던 건가?
윤주미: 생각해보면 거의 유행을 따라가면서 들었던 것 같다. 헤비메탈이 유행했을 때는 메탈을 듣고 브릿팝이 유행할 때는 브릿팝을 듣고. 그러다가 민규 씨를 만나면서 좀 더 인디스러운, 찾아보지 않았던 음악들을 접하게 됐다.
김민규: 어렸을 때 청취의 경험이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지 않나. 내가 어렸을 때는 뉴웨이브가 한창 전성기였던 시절이라 듀란 듀란(Duran Duran)이나 왬!(Wham!) 같은 음악들을 몰래 몰래 들었다. 물론 음악 하는 형들은 취급도 안 해줬지만 그런 취향들이 계속 내 안에 있어왔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전의 옛날 음악들은 아까 얘기한 형들이 들려줬던 음악이었다. 음악 듣는다는 사람이 이것도 몰라서야, 라면서 들려줬던 음악들이 다 1960~1970년대 음악들이어서 헤비메탈의 시대가 확 바뀌니까 취향 정리가 되게 쉬웠다. 원래 들어왔으니까 그때 되서 일종의 커밍아웃을 한 거다.(웃음)
김학선: 스쿨 밴드에서 왜 더 이상 본격적으로 나가지 않았나?
김민규: 서울에 있는 대학엘 갔다. 대학에 있는 스쿨 밴드에 들어갈까 했는데 우리 학교만 유일하게 스쿨 밴드가 응원단 밴드였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지켜왔던 간지랑은 맞지 않는단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노래패 그쪽이랑 친하게 지냈다. 음악을 계속 하겠다는 생각도 그때는 별로 안 했던 것 같다. 직접 플레이하는 것보다 리스너로서의 즐거움이 컸다. 초창기 홍대 인디 씬이 막 올라올 때가 1995년, 1996년 정도였는데 그때 내가 홍대 씬과 접점이 없었다면 음악을 꿈꾸면서 살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때는 워낙 애들이 실력과는 무관하게 재미있게 노니까 나도 다시 욕심이 났던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그냥 리스너로 만족하면서 살았을 것 같다. 리스너로서의 즐거움도 꽤 크니까.
김학선: 윤주미 씨는 스쿨 밴드 같은 것 안 했었나?
윤주미: 그렇다. 플라스틱 피플이 첫 밴드다. 나 역시 철저히 음악을 즐기는 입장이었지, 밴드를 한다는 것에 대해선 '감히 내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냥 막연한 꿈이나 동경 같은 것이었는데 어떻게 우연찮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김학선: 처음에 같이 밴드를 하자는 얘기를 들었을 땐 어떤 기분이 들었나?
윤주미: 처음엔 제의 자체가 "우리 같이 밴드를 해보자"가 아니었고, "작업해놓은 게 있는데 코러스가 필요하다."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을 한 건데, 그렇게 하다 보니 공연도 하고 싶고 앨범도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김민규: 밴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일이 하나 있었다. 음반으로 나오지는 못했는데 당시에 카바레 사운드에서 故 김광석 씨의 트리뷰트 앨범을 하나 준비하고 있었다. 김광석 씨가 직접 작곡한 곡만을 대상으로 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참여를 하면서 나도 한 곡 부르고 주미도 한 곡 부르게 됐다. 그때까지 플라스틱 피플이란 이름으로 액션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는데 그렇게 녹음에 대한 경험도 쌓으면서 좀 더 수월하게 밴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김학선: 그때 어떤 노래를 불렀나?
김민규: 난 <슬픈 노래>를 불렀다. 주미가 뭘 불렀지?
윤주미: <그대 웃음소리>를 불렀는데 굉장히 낮은 목소리로 남자 키 그대로 불렀다. 연주도 통기타 아르페지오 그대로 갔다.
김민규: <슬픈 노래>는 처음 편곡한 게 잘렸었다.(웃음) 그때 내가 라 부에나 비다(La Buena Vida)에 한참 빠져있을 때라 <슬픈 노래>를 라 부에나 비다 스타일로 편곡을 해서 갔는데 반응이 너무 안 좋아서(웃음), 옛날 포크 스타일로 다시 바꿔 불렀다.
김학선: 그런데 앨범은 왜 안 나왔나? 나왔으면 무척 좋았을 것 같은데.
김민규: 여러 가지 이유가 얽혀있었던 것 같다. 김광석 씨 관련해서 워낙 복잡하지 않았나. 지금이야 법적 판결이 다 났지만 그때는 그렇지가 못해서 마스터링까지 다 해놓고서 그대로 묻어버렸다.
김학선: <서브>에 들어가게 된 건 박준흠 씨 제의를 받고 들어간 거였나?
김민규: 그때가 내가 막 졸업할 타이밍이었는데 준흠이 형이 그런 잡지를 만든다는 소식을 친구가 듣고 날 추천해줬다. 나 혼자 글도 쓰고 하는 걸 알고 있어서 추천해줬던 것 같다. 내가 <서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요를 들어서였을 것이다. 특히 1980년대 동아기획 같은 가요들에 대한 청취의 경험이 준흠이 형에게는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만약 팝만 들었다면, 성문영 씨도 있고 김미영 씨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나를 뽑을 이유가 없었을 거다.
김학선: 그렇게 1년 정도 있다가 <서브>를 나왔다. 그때 <서브>에 대한 반응도 좋았을 때였는데.
김민규: 외형상으로 봤을 때는 좋아질 때였지만 내부 동력은 거의 떨어져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성문영 씨가 그만 두고 두 달인가를 성문영 씨 없이 하다가 나도 그만둔 건데,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서브>의 기본 방향이란 게 있는데 성문영 씨도 없고 김미영 씨도 그만둘 때였기 때문에 혼자서 그 많은 페이지를 외부필자와 채운다는 게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많은 얘기를 하다가 나 역시도 손을 떼게 된 거다.
김학선: 그럼 음악을 하기 위해서 <서브>를 그만둔 게 아니었나?
김민규: 그건 아니다. <서브> 내부 문제가 더 컸었다.
김학선: 내가 얘기 들었던 건, 김민규 씨가 또래 음악인들을 만나고 하면서 다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살아났다는 거였다.
김민규: 계속 하고 싶어는 했었고, 그때 메리 고 라운드(Merry Go Round)의 멤버가 되는 친구를 만나기도 했었는데 그게 꼭 이유로서 맞물린 게 아니라 시기상으로 맞물린 거였다.
김학선: 그럼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뭐였나?
김민규: 도은호라고, 메리 고 라운드에서 베이스를 친 친구가 있었다. 세션도 굉장히 많이 했던 친군데 당시에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에서 세션을 하고 있었다. 동네도 가깝고 해서 친해지게 됐는데 서로 음악 얘기를 하다가 서로 코드가 잘 맞으니까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되게 가볍게 시작을 한 거다. 그때 나는 거의 10년 동안 기타를 치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래도 여차여차해서 드럼도 구하고 하면서 밴드의 모습을 갖췄다. 보컬을 맡은 산비도 나랑 알던 친구였는데 자기도 껴달라고 해서 껴주고, 그렇게 얼기설기 모여서 시작한 밴드였다.
김학선: 음악 필자로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는데, 음악인으로서의 새 삶을 택하는데 부담도 있었을 것 같다.
김민규: 앨범 낼 때까지는 사실 부담이 하나도 없었는데, 앨범 내고나서 살짝 부담이 생겼다. <서브>란 잡지가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아우라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 아니었으면 사실 상관도 없었다. 나는 좋은 잡지에 있었던 기자였을 뿐이지, 음악 필자로서의 내가 뛰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초짜 기자였을 뿐이다.
김학선: 앨범 [Merry Go Round](2000)에 대한 반응은 좋지 않았다. 좌절하거나 하진 않았나?
김민규: 결과에 대한 좌절보다는, 과정을 잘 이끌어가지 못해서 많이 피폐화돼있는 상태였다. 지금이라면 이렇게 저렇게 결정을 해서 유도리 있게 풀어갈 수 있는 걸 그때는 거의 풀어가질 못했다. 그래서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 멤버들이 많이 지쳐있었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면 메리 고 라운드로도 성과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기엔 멤버들이 모두 경험이 없다 보니까 그냥 밴드를 깨어먹고 만 거다.
김학선: 그때 메리 고 라운드가 하려고 했던 음악과 지금 플라스틱 피플의 음악과는 차이가 있는 건가?
김민규: 나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연관성을 꽤 갖고 있는데 결과물로 표현된 거는 살짝 달랐다. 지금은 음악적인 키를 내가 거의 독재로 끌고 가고 있는 편이라 나의 취향이 좀 더 많이 표현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때는 내가 아이디어를 가져와도 다른 취향의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에 조합하는 과정에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큰 방향에서 포크이긴 하지만 사이키델릭한 요소를 좀 더 부각시켜보자는 결론이 나있었는데 그게 지금은 플라스틱 피플 음악의 한 축 정도가 된 것 같다.
김학선: 둘이 처음 만난 건 언제였나?
김민규: 처음 함께 작업을 시작한 건 2001년이었다. 그 전에 내가 혼자서 데모 작업해놓은 게 30곡 정도 있었는데, 내 취향상 여성 보컬이 필요해서 주변 친구들에게 알음알음 부탁을 하고 그렇게 주미를 소개를 받았다.
김학선: 그럼 그때는 솔로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김민규: 아무 생각이 없었다.(웃음) 이게 밴드가 되든 뭐가 되든 일단 곡을 써놓자는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만 생각을 하고 혼자서 뒤뚱뒤뚱 곡들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주미에게도 처음엔 "그냥 와서 노래만 부르면 된다"라고 얘기했었는데, 그렇게 함께 데모 작업도 하고 공연도 한 번 하게 되고 그러면서 밴드 이름이 필요해지게 된 거다.
김학선: 메리 고 라운드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플라스틱 피플로 다시 시작할 때 어느 정도 긴장도 됐을 것 같다.
김민규: 일단 곡을 많이 준비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종의 트레이닝 같은 건데, 그렇게 곡을 작업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알아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팀의 리더가 결정을 해야 할 때 하지 못하면 밴드가 힘들어진다는 걸 메리 고 라운드를 하면서 알게 됐다. 잘 되든 안 되든 그거를 떠나서 결정을 해줘야할 때는 일단 결정을 해줘야 하는데, 메리 고 라운드 때는 타이밍을 내가 계속 놓치다 보니까 멤버들도 꿍하게 되고, 꿍한 것 때문에 다음 결정 때 또 힘들어지고, 이게 계속 반복됐다. 데모 작업을 그렇게 많이 했던 이유도 여기서 미리 시행착오를 겪고 준비를 해놓자는 생각에서였다.
김학선: 윤주미 씨는 그럼 김민규 씨 의견에 잘 따르는 편인가?(웃음)
윤주미: 잘 따르는 편인 것 같다.(웃음) 최종 결정은 항상 민규 씨에게 맡기는 편이다.
김민규: 처음 시작할 때부터 체계가 그렇게 꾸려졌다. 어떤 곡의 아이디어가 나와서 처음 스케치할 때 주미에게 대략의 방향을 얘기해주면서 들려주고, 그걸 듣고 주미가 의견이나 요구사항을 얘기한다. 그 다음에 내가 그걸 종합해서 데모 작업을 심화시킨다.
김학선: 플라스틱 피플의 1집 [Songbags Of The Plastic People](2003)이 나왔을 때 메리 고 라운드와는 다르게 평단의 반응도 좋고, 음악 팬들의 반응도 좋았다. 본인이 느끼기에도 메리 고 라운드와 비교하면 이런 차이의 반응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의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편인가?
김민규: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는 게, 가장 기본이 되는 악상이나 곡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편곡이 됐든 기타의 톤이 됐든 포장이 돼서 나온 최종결과물의 차이가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의 차이지 않나 생각을 하는 정도다. 가끔 메리 고 라운드의 음악을 들을 때가 있는데 곡만으로 봤을 때는 아까운 노래들이 몇 곡 있다. 멜로디도 괜찮고 나름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곡들이 있는데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곡 자체가 너무 솔직하다. 뭔가 꽁수를 부리지도 않고 잘 포장도 하지 못했다. 만약에 지금 그때의 곡들을 다시 작업한다면 좀 더 다르게 접근을 할 것이다.
김학선: 데뷔 앨범 전에 발표했던 EP [Plastic People](2002)에서는 아까 얘기했었던 도은호 씨도 멤버로 기록돼있다.
김민규: 정식 멤버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잠깐 도와주는 단순한 세션도 아닌, 깊숙이 들어와 있는 세션? 그 정도 역할을 은호가 해줬었다. 처음부터 계속 2인조였지만 좀 더 밴드화를 시킬까 하고 몇 번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멤버로서 계속 같이 해줄 수 있는 친구들을 구하지 못했고, 어찌어찌하다 보니까 지금의 세션 체계가 굳혀지게 됐다. 지금 세션해주고 있는 친구들은 거의 준멤버라고 봐도 된다. 녹음할 때도 내가 어느 정도 제시를 하긴 하지만 자기들 나름대로 편곡에 참여하고 하면서 목소리를 낸다.
김학선: 그럼 지금 현재의 시스템에 만족하고 있는 편인가?
김민규: 다음 작업 때는 사실 모르겠다. 이번에 녹음을 하면서 한계를 느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내가 에너지를 쏟을 부분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내가 가진 에너지의 한계가 있는데 그게 너무 분산되다 보니까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래서 닐 영(Neil Young)이 크레이지 호시스(Crazy Horses)랑 했던 체계 같은 게 오히려 더 나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주는 밴드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난 악상과 음악적인 기운만을 컨트롤해서 가면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같은 거다. 어떤 곡은 내가 A부터 Z까지 연주를 다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하는데 그게 정말 피곤하다.(웃음) 아무래도 연주의 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학선: 그러면 지금도 풀 밴드에 대한 욕심을 계속 갖고 있는 거라 봐도 좋은 건가?
김민규: 그렇다. 이걸 어떻게 구성해서 가야겠다, 하는 구체적인 건 아직 없는데, 이번 앨범 활동을 하면서 답을 한 번 얻어 볼까,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김학선: 1집은 카바레 사운드에서 나왔고, 2집 [Folk, Ya!](2006)를 만들면서부터 자체 레이블인 일렉트릭 뮤즈를 만들었다.
김민규: 레이블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은 되게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다. 내가 명음 레코드(알레스 뮤직의 전신) 다닐 때 해외 인디 레이블을 접촉해서 계약하고 하는 일을 주로 했다. 그러다 보니까 여러 레이블들을 상대하게 되고 걔네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까 '나도 이런이런 모양의 레이블을 만들고 싶다'라는 욕심을 갖게 됐다. 카바레랑 우선적으로 일을 하게 된 계기도 카바레에선 실무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고, 나도 음반업계에서 일을 했으니까 그게 자연스럽게 맞물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EP [Travelling In The Blue](2004) 내고서 몸이 많이 아팠었는데, 이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다 보니까 카바레와도 자연스럽게 정리를 하게 됐다. 1년 정도 쉬면서 건강 회복하고 2집 준비를 하던 와중에 이걸 어떻게 낼까 고민을 하다가 이참에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작업실을 만들고 레이블까지 차리게 된 거다.
김학선: 그럼 지금 일렉트릭 뮤즈의 성격은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김민규: 일단은 홍대 씬에 있는 로컬 레이블로서의 자세를 가장 크게 생각하고 있다. 장르적으로는 사실 뚜렷한 걸 갖고 있진 않다. 장르는 그닥 상관없는데, 지금으로만 보면 내 취향의 음악들인 것 같다.
김학선: 취향이 너무 광범위한 것 아닌가?(웃음)
김민규: (웃음) 뭐라고 해야 할까. 자기 음악에 대해서 에고(ego)가 서있는 음악들? 내가 주로 반하는 음악들이 그런 쪽의 음악들이다. 그쪽 친구들이 그렇게 대중적이지를 못해서 다른 레이블들과의 관계가 잘 안 됐었다. (클럽) 빵 사장님이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계속 그런 아쉬움을 토로했었는데 처음 그런 부분을 기준으로 해서 시작을 했다. 장르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데, 물론 소화할 수 없는 음악들도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해결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하드록에 대한 로망이 있지만 그건 나의 욕심이지, 우리 녹음실의 상황이나 이런 걸로 볼 때 지금 당장은 소화하지 못할 것이다. 힙합 같은 경우도 내가 문외한이다 보니까 소화할 수 없을 거고, 일렉트로니카 쪽을 한다고 해도 댄서블한 쪽이 아니라 내가 주로 듣는 감상용 쪽 음악이 될 것이다.
김학선: 방금 클럽 빵 얘기도 해줬는데, 일렉트릭 뮤즈나 빵이나 공동체적인 정서가 많이 느껴진다.
김민규: 약간 그런 부분이 있다. 의도한 건 전혀 없고 실제로 친하지 않은 밴드들도 있다. 우연찮게 씬에서 이미 관계를 갖고 있던 친구들이 순차적으로 들어오면서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우리 레이블만 해도 굴소년단 들어오고 나서 비둘기 우유가 들어왔는데 두 밴드는 이미 예전부터 관계가 있던 사이였다. 그러다 보니까 그런 분위기가 있긴 한데 밴드들끼리 친하고 안 친하고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웃음) 공연을 하거나 음반 작업을 할 때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에서만 서로 협조할 수 있도록 내가 중간에서 역할을 해주면 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밴드의 친분 이런 것들은 크게 신경 안 쓴다.
김학선: 2집에서 윤주미 씨가 드럼과 보컬에서 보다 보컬에 집중하는 식으로 포지션을 확실히 바꿨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였나?
윤주미: 처음에 드럼을 치게 된 건 아무래도 둘이서 공연을 하게 되다 보니까 기타와 드럼 구성이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을 한 거다. 그때 처음 드럼을 친 거기 때문에 연습을 스파르타식으로 해서(웃음), 첫 EP와 1집 녹음에 참여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쿠스틱 위주의 공연이었기 때문에 무리가 없었는데, 큰 공연에서 밴드 사운드로 할 때는 내가 노래도 해야 하니까 드럼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2집 작업 때 보컬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드럼과 노래를 같이 한다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예 내가 프론트로 나가고 드럼은 세션을 쓰는 방식을 택했다.
김민규: 주미가 원래 목소리가 큰 편이 아닌데 드럼 세트에 앉아서 노래를 하려니 모니터도 잘 안 되고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 밴드 없이 쉬고 있던 (윤)주현이에게 드럼을 부탁하고, 보컬에 집중하라고 주미를 앞으로 빼면서 포지션을 바꿨다.
김학선: 전혀 경험도 없던 사람이 짧은 시간 드럼을 배워서 녹음을 하고 라이브를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모험일 수도 있다.
김민규: 처음에는 모든 곡을 녹음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박자 감각이 굉장히 좋아서 금방 배우는 걸 보고 맡겨보기로 했다. 또 아무리 세션맨들이라고 해도 잘 소화 못하는 연주가 있는데 그런 건 주미가 잘 하니까 좀 더 연습을 해서 해보자고 얘기를 했다. 집중적으로 연습한 건 3개월 정도였고, 대충 다 따지면 6개월 정도 연습한 거다.
윤주미: 개인적으로는 동시 녹음을 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김민규: 전 곡은 아니었고, 몇 곡은 통기타랑 드럼이랑 베이스랑 한 번에 녹음을 했다.
김학선: 왜 그랬던 건가?
김민규: 실험이었다. 그때 카바레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때였는데 나눠서 녹음을 할 때 생기는 생동감이 없어지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우리가 처음으로 한 번에 녹음을 한 거다.
윤주미: 연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걸 한 번에 녹음한다고 하니 좀 힘들었고, 또 내가 실수를 하면 다시 녹음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다시 할 때마다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던 도은호 씨가 너무 손을 아파해서 연습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웃음)
김학선: 2집 발표 후에 윤주미 씨가 가진 보컬의 장점을 다 끌어내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었다.
김민규: 곡에 있어서의 배려도 그렇고, 디렉팅 부분에서도 그랬다. 이번 앨범에서도 다 만족스럽지는 않다. 몇 곡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에 집중을 해서 다음 작업 때는 아예 지금의 다양성 부분을 축소시켜볼까 생각하고 있다. 만약 지금 5 정도로 펼쳐져있는 각이 있을 때 그걸 2, 3 정도로 줄인다면 좀 더 매력이 부각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학선: 곡을 쓸 때부터 누가 부를지 구분해두는 편인가?
김민규: 일단 스케치 상태에서는 구분하지 않고 그걸 가지고 데모를 뜰 때 구분한다. 되도록이면 내가 안 부르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웃음), 내가 부르는 곡들은 주미가 부를 수 없는 곡들이다.(웃음)
김학선: 윤주미 씨도 노래를 많이 안 부르려고 하는 편 아닌가?(웃음)
김민규: (웃음) 이제 많이 해결이 됐다. 수줍어해서 그렇다. 밴드 경험이 있거나 프론트맨 기질이 있으면 나를 부각시켜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서운해 하고 그래야 하는데 경험이 없다 보니까 지금까지는 반대로 돼왔다. 모하비 3(Mojave 3) 3집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레이첼(Rachel Goswell)이 좀 더 많이 노래를 불러주기를 바랬던 거와 비슷한 거다.(웃음)
김학선: 사람들이 윤주미 씨의 보컬을 더 원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김민규: 물론이다. 어쩔 수 없는 거다. 나는 보컬리스트로서 매력이 있는 편이 아니다.
윤주미: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웃음)
김민규: 잠깐 부르면.(웃음) 잠깐 부르면 괜찮은데 전체적으로는 아니다. 보컬리스트라면 김광석이나 김현식 아저씨처럼 목소리가 나왔을 때 그거 자체로 "아, 누구구나"라고 알 수가 있어야 하는데 난 그렇지 못하다. 목소리에는 결이란 게 있는데 난 그게 형성이 안 된 보통 목소리이다. 이런 목소리는 가끔 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김창기 아저씨가 동물원의 메인 보컬이었으면 동물원은 지금보다는 별로였을 거다. 김광석 아저씨가 메인 보컬로 부르는 와중에 유준열 씨와 김창기 씨가 몇 곡 부르니까 되게 멋있는 거지 그렇지 않다면 매력은 반감됐을 것이다. 그것과 같은 거다. 주미 목소리에는 결이 있으니까 나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김학선: 플라스틱 피플을 포크 밴드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건가?
김민규: 인디 록 밴드가 가장 정확한 것 같다. 포크 록이 우리의 출발점이자 지향점이긴 한데 그렇지 않은 음악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상태라 크게 따지면 인디 록 밴드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는 어쿠스틱한 트랙들이 많이 빠졌다. 곡의 형식은 거의 같지만 사운드로 표현된 건 워낙 다르게 갔기 때문에 현재로선 포크 록 밴드라 불리기엔 무리가 있다.
김학선: 3집 [Snap]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김민규: 2집 만들 때 멜로디를 너무 앞에 내세우지 말고 우리를 표현해보자, 라는 욕심이 있었다. 반복해서 들어야 뭔가 느낌이 날 수 있는 그런 앨범을 만들고자 했었는데, 아직 내공이 안 되는데 욕심을 부렸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는 전면에 내세울 건 내세우고 뒤로 보낼 건 보내야겠다는 계산을 하면서 작업을 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밴드 사운드로 공연을 한지가 꽤 됐는데 라이브를 하면서 생겼던 그 재미들을 곡에 들여와 보자는 생각을 했다.
김학선: 앨범 후반부로 갈수록 곡의 스케일이 커진다.
김민규: 일부러 그렇게 배치한 측면이 있다. 중간에 끼워 넣어볼까도 했었는데 청취의 흐름을 막았다. 요즘이야 다들 노래 하나씩 듣고 앨범을 전체로 듣는 사람은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앨범인데, 하는 생각으로 트랙 흐름을 정했다. 익숙하게 시작해서 다른 쪽으로도 갈 수 있게 배치를 했다.
김학선: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로 가는 게, 일단은 김민규 씨가 음악인 이전에 리스너로서의 경험과 욕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김민규: 아무래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곡을 만드는 단계에서 파편적으로 생기는 아이디어들을 일단은 다 수용을 하는 편이다. 그렇게 일단 많은 곡을 써놓고 선곡을 하다 보면 이 모양새가 된다.(웃음) 옛날 음악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해서 최근의 해외 인디 음악에 대한 애정까지 계속 맞물리다 보니까 그렇게 나오게 되는 것 같다.
김학선: 아톰북(Atombook)의 sp(최새봄) 씨에게 곡을 받기도 했는데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다른 음악인들의 곡을 받을 생각이 있나?
김민규: 그렇다. 내가 꼭 곡을 쓰지 않아도 내가 편곡을 해서 우리 사운드로 만들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앨범 작업 들어가는 단계에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 몇 명에게 곡을 부탁을 했었다. 아톰북이랑 이번에 기타 편곡 참여해준 (최)승훈이에게 부탁을 했었는데, 승훈이는 곡은 주지는 못하고 편곡으로 도움을 줬고 새봄 씨는 만들어놨던 곡 중에서 플라스틱 피플이랑 잘 맞겠다 싶은 곡을 하나 줬다. 기획가 된다면 남의 곡만 가지고 작업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재미있을 것 같다.
김학선: 아예 리메이크 앨범을 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김민규: 욕심은 있는데, 워낙 비용상으로도 문제가 있고 허락 받는 문제도 있고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김학선: 김민규 씨는 음악 하기 이전에 음악 마니아로서 시작을 한 사람인데 음악을 많이 듣는다는 게 음악을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김민규: 프로듀서의 입장이 됐을 때는 많은 도움이 된다. 곡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곡을 만들고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 모여진 아이디어들을 정리하고 방향을 잡고 할 때는 확실히 청취의 경험이 많은 쪽이 유리한 것 같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좋은 뮤지션은 천재에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이거를 정리해주는 역할은 청취의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김학선: 뮤지션과 프로듀서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떤 걸 택하겠나?
김민규: 매력은 둘 다 비슷비슷하게 갖고 있는데 현실적인 걸 따져볼 때 뮤지션으로서 어떤 한계에 부딪친다면 레이블의 입장에선 프로듀서에 몰두해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은 좀 더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으니까 이렇게 병행을 해나가는 것 같다.
김학선: 음악을 많이 듣다 보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게 되니까 아예 다른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하는 뮤지션들도 있지 않나. 예를 들어서 빵 컴필레이션 3집에 수록한 <Morning After> 같은 곡은 요 라 텡고(Yo La Tengo)를 너무 노골적으로 따라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할 얘기가 있을 것 같다.
김민규: <Morning After>는 오마주의 성격으로 만든 곡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거다. 그리고 영향을 받는 부분에 있어서 얘기를 하자면, 난 오아시스(Oasis)의 얘기에 되게 동감을 한다. 오리지널이 있던 시대는 이미 너무 많이 지났다. 내가 봤을 때 가장 오리지널리티가 있던 시대는 1950년대였고, 1960년대도 온전한 오리지널의 시대는 아니다. 오리지널 이후의 시대들은 과거의 영향을 받고 거기에 자신의 감성이 함께 섞이면서 발전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우리 같은 변방에 있는 사람들, 영미가 아닌 대부분의 국가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거기서 오리지널에 근접하려고 하는 노력들을 '따라쟁이'라고 딱 규정해버리는 건 성장할 기회를 막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예를 봐도 가장 오리저널리티가 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시대는 신중현 씨가 있던 때였는데, 같은 기준으로 보면 그때 그분들이 처음에 했던 음악들 역시 '따라쟁이'일 뿐이다. 스무 살 무렵에 그렇게 영향을 받으며 음악을 시작했지만 그분들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 뛰어난 공력과 오리지널리티를 선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따라쟁이'라고 하면서 아예 미리 차단을 하고 있다. 요즘 홍대 쪽에도 그런 분위기가 있다. 예전에 위치 윌(Witch Will)이 앨범을 냈을 때 멤버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었다. 브리티쉬 포크를 워낙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그렇게 음악을 출발하면 당연히 닉 드레이크(Nick Drake) 같은 영웅들의 이름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건데 그게 위치 윌의 음악을 폄하하는 기준이 돼버린 거다. 만약 곡이 별로라거나 연주를 너무 못한다는 얘기로 비판을 받았으면 수긍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 기준 하나로 재단을 해버리면 위치 윌의 멤버들이 갖고 있는 능력들이 그거 하나로 소실돼버린다. 실제로 상처를 많이 받아서 지금 음악을 안 하고 있다. 결국 밸런스의 문제인데, 예전에는 카피의 밸러스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됐다면, 지금은 오리지널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고 본다. 앨범을 내겠다는 친구들이 있으면 난 제일 먼저 "너의 오리지널과 루츠가 뭐라고 생각을 하느냐?"고 물어본다. 이거에 대답을 못하는 친구들이 이른바 한국적인 음악을 한다. 그거를 한국적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내가 봤을 땐 포크도 아닌데 포크라고 얘기하고, 록 밴드인데 로큰롤을 하는 건지 하드록을 하는 건지조차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이를 한국적이라고 얘기하면 난 그거에 반대한다는 거다. 적어도 그거는 알아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카바레 레이블의 컴필레이션 앨범([안녕하세요, 카바레 사운드입니다])에서도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트리뷰트 밴드(Sweat Jane)를 만들어서 참여를 했었다. 대놓고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베꼈었는데 그게 (이)성문 씨와 나의 나름의 항의였었다. 멜로디도 우리 노래고, 다 우리 노래지만 따지고 보면 <What Goes On>과 똑같다. 심지어 마디 수도 맞췄다. 솔로 마디 수도 똑같이 치면서 둘이 장난을 친 건데 그게 일종의 항의 같은 거였다. 우리가 영미에 있으면 이럴 필요가 없다. '따라쟁이'라고 얘기를 듣는 음반들 가운데 일부 음반들은 해외 마니아들이 되게 좋아한다. 그 사람들이 귀가 없어서 그걸 '따라쟁이'라고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좀 균형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학선: 처음에는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시작했다 해도 어느 순간이 되면 그걸 뛰어넘는다는 믿음이 있는 건가?
김민규: 안에서 자신의 아이디어와 결합이 되는 순간이 온다. 그랬을 때 명반이 나오는 거다. 아소토 유니온(Asoto Union) 나왔을 때도 그랬지 않나. "이걸 듣느니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를 듣겠다"고 쓴 평론가가 있었는데,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고 본다. 그런 식이라면 이제 소울이나 훵크는 아무도 못하게 된다. 어떤 뮤지션에게 목표치가 있고 그게 지속이 되면서 음악적인 에너지를 안 놓친다면 분명 뛰어넘는 순간이 나올 거다. 신중현 아저씨가 벤쳐스(Ventures) 카피도 하고 비틀즈(Beatles) 카피도 하고 했으니까 나중에 자기 음악이 나온 거지 갑자기 그게 나오기는 어려운 거다.
김학선: 그럼 이번 3집 만들면서 레퍼런스로 삼은 음반들이 좀 있나?
김민규: 음악 때문에 잡은 건 별로 없고 사운드 때문에 잡았던 몇 장이 있다. 고르키스 자이고틱 민치(Gorky's Zygotic Mynci)의 [Spanish Dance Troupe]에서는 밴드의 어쿠스틱 사운드를 많이 참조했다. 로킹한 부분에서는 요 라 텡고나 1970년대 옛날 록 밴드들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 곡에 대한 아이디어보다는 사운드로서의 레퍼런스 역할을 했다.
김학선: 한국 음악에도 애정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어떤 음악들에 영향을 받았나?
김민규: 음악적인 영향은 동아기획의 음반들이 가장 컸다. 거의 대부분 사춘기 때 들었던 음악들이다. 김현식 아저씨 음반들부터 시작해서 들국화니 [우리노래 전시회]니 시인과 촌장이니 명반들이 막 쏟아지던 시절 아니었다. 그게 거의 한두 해 사이에 나왔을 것이다. 그 시절의 음반들이 감수성 면에서는 가장 컸던 것 같고, 그 전에 좋아했던 음악들은 다 록 밴드의 음악들이었다. 작은 거인이나 마그마나 산울림이나, 다 내가 어렸을 때 음악들인데 형들이 "얘네가 대장이야." 그러던 시절이라 동경의 대상이 됐던 것 같다. 작은 거인 2집 같은 경우는 좀 미친 음반 아닌가.(웃음) 그런 음악이 그 시절에 나왔으니까. 또 벌거숭이나 벗님들 같은 그 시절의 음악들도 좋아했었고, 공연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해서 귀에 닿는 대로 찾아다녔다. 김광석 아저씨는 조금 이후에 좋아했던 것 같다. 솔로 1집은 그닥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갈수록 내공이 붙는 음악들이 나오면서부터 많이 좋아했었다. 대학로에서 김광석 아저씨 공연하는 걸 봤는데 정말 노래를 제일 잘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본 가수들 가운데 노래만은 김광석 아저씨가 짱이었다.
김학선: 이번 앨범에서도 셀프 프로듀싱을 했는데, 뮤지션이 직접 프로듀서 역할까지 맡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 아닌가?
김민규: 지금도 부정적이긴 한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약에 굴소년단이 바쁘지 않았으면 (김)원구 씨에게 부탁을 하고 싶었는데 굴소년단이 미친 듯이 활동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었고, 새봄 씨도 생각을 했었는데 또 할 만한 컨디션이 아니었다. 찾다가 못 구해서 포기를 한 거다. 셀프 프로듀싱을 하게 되면 안 좋은 상황이 항상 오게 된다. 결정을 해야 하는데 긴가민가 판단의 기준이 안 서는 상황이 온다. 그때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와야 분명히 좋은데 그렇지 못하니 어려우지는 거다.
김학선: 이번 작업에서도 그런 순간이 왔었나?
김민규: 그나마 다행이었던 게 믹싱을 (이)소림 씨가 맡아주면서 도움을 많이 줬다. 귀가 되게 좋으셔서 믹싱하면서 음악도 많이 좋아졌다.
김학선: 결국 외부 프로듀서를 영입하는 건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봐달라는 것 아닌가?
김민규: 그렇다. 내가 가진 게 10인데 내가 프로듀서까지 맡는다면 그냥 10으로 끝나버린다. 하지만 프로듀서 따로, 엔지니어 따로, 이렇게 귀들이 더 붙으면 그 10이 더 큰 수치로 나타난다.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은 대중들이 들었을 때 좀 더 설득력 있는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외부 사람을 설득을 시켜야 하는데 뮤지션이 혼자일 때는 자기만 설득시키면 끝난다. 뮤지션들만의 외곬수가 있는데 그런 것들은 외부 프로듀서와 붙어야 해결이 되는 것 같다.
김학선: 만약에 누구라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프로듀서와 작업하고 싶나?
김민규: 가장 해보고 싶은 건 요 라 텡고의 프로듀서 할아버지(Roger Moutenot)다. 고르키의 보컬 하는 친구(Euros Childs)도 좋고, 그런 사람들이 와서 해준다면 거의 다 해결되지 않을까 한다. 실제로 2집 작업할 때 시도가 있긴 했었다. 아는 분이 연결시켜준다고 해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쪽에 있는 로컬 프로듀서와 작업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는데 중간에 떠버리는 바람에 하질 못했다. 그분이 유명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만 되도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꼭 해외가 아니더라도 국내에서도 많은 분들이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이 형 같은 사람이 해줘도 짱이다. 내가 못 푸는 문제들을 분명히 많이 풀어줄 거다.
김학선: 그런데 서울전자음악단도 거의 신윤철 씨가 도맡아서 프로듀싱을 하고 있지 않나.
김민규: 그러니까 윤철이 형은 자기 것 할 때는 딴 사람이 해줘야 한다.(웃음) 그래야 조금 더 대중적인 음악이 나올 것 같다. 2집이 정말 멋있어서 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앨범이 이 정도 숫자로 팔리고 끝난다는 게 너무 아쉽다. 제작한 친구가 예전 강아지 문화예술에 있던 (공)윤영인데 그 친구도 "이렇게 죽이는 음악인데." 하면서 아쉬워한다. 나도 죽인다고 생각은 하는데 좀 더 많이 알려지기에는 현재 대중들의 취향과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대중들의 취향을 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학선: 앨범 발표할 때마다 '스토리텔링' 가사쓰기 방식에 대해서 얘기를 해왔는데 이번 앨범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김민규: 가장 발전한 게 그쪽인 것 같다.(웃음) 1집 때는 거의 시도를 안 했었고, 2집 때 몇몇 곡에서 시도를 해서 실패한 곡들은 버리기도 하고 된 곡은 앨범에 싣기도 했다. 그게 한 번 되니까 이번 앨범 하면서는 그쪽으로 방향이 많이 쏠리게 됐다. 이미지를 펼치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앨범 전체를 만드는 건 커뮤니케이션의 측면에선 아니라고 봤다. 이번 앨범에선 몇몇 곡에서 좀 더 괜찮게 소화가 된 것 같다.
김학선: 그렇게 스토리텔링 방식에 집착을 보이는 이유가 있나?
김민규: 우리 음악이 포크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인디 록적인 사운드를 한다고 하더라도 어찌 됐건 출발점이 그쪽에 있기 때문에, 그쪽에서 스토리텔링을 못한다는 건 자격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김학선: 음악은 그렇지 않지만 가사에서 토속적인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기우제, 숯공장, 무덤가, 가죽신, 불경, 이런 단어들이 더욱 그렇다.
김민규: 어렸을 때 주로 썼던 언어에서 오는 차이인 것 같다. 영어로 가사를 쓸 때는 멋진 말로 쓰려고 노력을 한다. 왜냐면 창피하니까.(좌중 웃음) 내 언어가 아니니까 의식적으로 그러려고 하는데 한국말로 가사를 쓸 때는 오히려 그런 게 더 적어지고 발음과 음절이 어떻게 멜로디와 붙어 가는지에 대해서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내가 시골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토속적인 거야 정태춘 아저씨를 따라갈 수는 없다.(웃음)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 그 정도인 것 같다. 위성도시. 위성도시에서 사는 청년들. 거기서 쓰는 말투와 언어들이 내 가사의 정서가 된다.
김학선: 가사에서 향수 같은 것들이 많이 느껴진다. 이것도 역시 같은 맥락인 건가?
김민규: 이번 앨범에 그런 곡들이 특히나 많이 들어간 것 같다. 도시가 발전하고 팽창하는 것에 대해서 완전 부정하지는 않지만, 과거의 것들을 너무 기억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단순히 '그때가 좋았지' 같은 개인적인 추억의 의미가 아니라 '빈티지'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불만 같은 거다. 고향이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단순히 지명만 남아있지, 가보면 내가 살았던 흔적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살기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다. 우리나라가 워낙 개발지상주의 아닌가. 그런 것들에 대한 불만이 있다 보니까 그게 향수로 표현이 되는 것 같다.
김학선: 인천 어디에 살았던 건가?
김민규: 동인천 쪽에 살았다. 2집에 있는 <수도국산>이라는 노래가 내가 살던 지명 이름이다. 거기도 이제 재개발이 다 돼서 내가 살던 집은 번지수가 없어져버렸다.(웃음) 도로로 뚫려서 날아가 버렸다. 저번에 거기에 '달동네 박물관'이 생겨서 갔다 왔는데 그게 나의 정서인 것 같다. 우리 부모의 시대가 '이민의 시대' 아니었나. 시골 살면 돈을 못 버니까 다 도시로 올라오는데 그 이민자들이 대부분 다 달동네에서 생활을 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동네도 이북 사람들하고 전라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 집은 충청도 출신이었는데, 보면 인천 사람들이 없다. 토박이들은 없고 이주민들이 만든 달동네였다. 그런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생기는 정서들이 있다. 작가 이름은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라는 장편소설을 냈던 분을 보니까 의정부인지 연천인지에서 자란 것 같았다. 그 책이 성장소설이었는데 정서가 되게 비슷했다. 뿌리부터 박혀있는 '우린 안 될 거야.' 정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드림 같은 서울에 가면 드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얽혀있다. 어릴 때 형들도 그랬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자라면서 생긴 정서 같은 게 굉장히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서울에서 지금 거의 15년을 살았는데도 내가 서울사람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인천이나 서울이나 똑같은 도시인데도. (※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의 저자는 임영태로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로 제 18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김학선: 플라스틱 피플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통용될 만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나?
김민규: 바운더리가 아주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만약 시인과 촌장이 앨범을 내고 하던 시절에 앨범을 냈다면 같이 묻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다. 대중적이라는 게 보는 관점마다 다른 건데 우리가 대중적인 포즈를 안 취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인디 씬의 바운더리를 확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어보이지도 않는다.
김학선: 플라스틱 피플의 몇몇 싱글들은 대중들에게 들려줘도 무난히 좋아할 수 있는 트랙들인데, 반면에 플라스틱 피플의 이미지는 굉장히 인디스럽다.
김민규: 우리가 지금까지 활동했던 범위가 그래서일 수도 있다. 좀 더 크게 노출될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분명히 인디스러운 이미지가 있다.
김학선: 그럼 그걸 뛰어넘을 계획은 갖고 있는 건가?
김민규: 시도는 하겠으나 솔직히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우리 레이블에서 음반을 낼 때마다 나름대로 이런 저런 시도들을 계속 하고는 있는데 다들 그 단계에서 조금씩 주춤하고 있다. 인디 씬의 팬이 아닌 사람들과 만나는 시도들을 계속 하고는 있는데 장담은 하지 못하겠다. 내 예상보다 조금 더 벽이 높은 것 같다. 몇 년 전보다 기회는 많아졌는데 쉽게 되지는 않는다.
김학선: 지난번에 모 페스티벌 관계자에게서 일렉트릭 뮤즈 레이블은 페스티벌 무대에 세워달라는 얘기를 먼저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홍보의 일환인데 굳이 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 건가.
김민규: 그렇지 않아도 요즘 고민 중이다. 우리가 음반을 제작하고 프로모션 하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시스템이 잡혔는데 밴드 매니지먼트를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을 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일종의 에이전시를 두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하고 있다. 남들은 방송국 못 들어가서 안달이 났는데 너네는 뭐하냐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왜 안 움직이냐고.
김학선: 그러니까, 왜 안 움직이는 건가?(웃음)
김민규: 나 혼자다 보니까 바빠서 못하는 측면이 크다. 사람을 따로 안 두면 못하는 거다.
김학선: 그럼 소속 밴드들은 일렉트릭 뮤즈와 계약을 할 때 그런 점을 다 감안하고 하는 건가?
김민규: 처음 계약할 때 계약 조건에 아예 매니지먼트 조건이 없다. 그래도 최선을 다 하려고는 하는데 한계치가 온 거다. 나 혼자서 최선을 다하는 건 여기까지니까 사람을 두든가 에이전시랑 계약을 해서 관리를 시키든가 하는 타이밍이 온 것 같다.
김학선: 김민규 씨와 얘기를 하다 보면 단순히 플라스틱 피플이나 일렉트릭 뮤즈뿐 아니라 인디 씬 전체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김민규: 잘 됐으면 싶다. 그래야 돈을 번다.(웃음) 여기를 벗어나서 돈을 벌려고 하면 벌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런데 인디 씬에는 도움이 안 된다. 작년에 (장)기하 씨 터졌을 때 걸었던 기대도 지금은 거의 꽝 되고 있는 것 같다. 크라잉 넛(Crying Nut) 이후로 거의 10년 만에 온 거니까 기대를 좀 했었는데 쉽지가 않다. 기본 팬층이 넓어져야 산다는 건 누구다 다 아는 사실이고 누구나 다 얘기하는 거니까, 이번 기회에 인디 씬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 가운데 5%든, 10%든 여기 팬으로 남기자, 그런 계획이었는데 그거는 물 건너 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번외 편의 매니지먼트나 프로모션을 해야 돈을 버는데 그건 인디 씬과는 별 상관이 없다. 딜레마다. '그럼 우리는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냐? 우리도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하니까 번외 편으로 갈 거냐? 말 거냐?'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거다.
김학선: 번외 편이라는 게 행사를 말하는 건가?
김민규: 그렇다. 행사도 그렇고, 나를 뻥튀기해서 얻어낼 수 있는 수익들, 그런 것들이 은근히 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홍보를 해야 하니까 그런 곳에서 생기는 눈 먼 돈들이나 나라에서 들어오는 눈 먼 돈들을 차지하는 거다.
김학선: 그럼 판을 키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김민규: 글쎄.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나 생각하고 있는 건 스타 시스템이다.
김학선: 장기하 같은?
김민규: 아니다. 그렇게까지 클 필요는 없다. 굳이 얘기하자면 문샤이너스(The Moonshiners)나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 정도. 3,000장급 되는 밴드들이 나왔을 때 외부 도움 없이 내부동력으로 어느 정도의 스타로 만들면 얘들이 외부로 나갈 수가 있다. 잘하면 그 정도는 간다, 이런 인식이 생기게 해야 하는데 지금은 잘 해도 1,000장 정도의 판매고에서 끝나니까 어려움이 있는 거다. 또 웰-메이드 음반이라고 얘기는 하는데 난 웰-메이드는 잘 모르겠고 좀 대중성이 있는 음반? 얘들의 스타일을 죽이지 않으면서 대중적인 음반이 나왔으면 한다. 거기서 프로듀싱의 능력이 필요한 건데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포텐셜은 있는데 그 포텐셜이 다 나오지 않는다는 느낌 있지 않나. 그걸 풀어주는 게 레이블이 해야 할 일이고 프로듀서가 할 일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거라고 생각한다. 스타 시스템도 사실 레이블에서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가장 아쉬운 점은 매체다. 스타 시스템 만드는 것에 공조해줄 매체가 필요하다.(웃음) NME가 그런 역할 잘 하지 않나.(좌중 웃음) 뻥도 치고, 호들갑도 떠는데 그게 나름 목적이 있는 거다. 그러니까 걔네 씬이 죽지 않는 거다. 인디 씬에 그런 역할을 할 매체가 하나 붙어줘야 할 것 같다. 점잖은 잡지 말고. <서브>도 약간 점잖았었다. 좀 호들갑도 떨고, 잘 생긴 멤버 하나 나오면 난리도 한 번 쳐주고.(웃음)
김학선: 음원을 무료로 다 풀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던 걸로 알고 있다. 이것도 역시 홍보의 일환인 건가?
김민규: 레이블마다 다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거다. 이유는 되게 단순하다. 비둘기 우유를 굳이 예로 들면, 굉장히 열심히 해서 나름대로의 지지를 얻고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생기는 음반·음원 수익은 되게 작다. 따지고 보면 이 정도의 수익은 광고라고 생각하고 무료로 돌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작은 수익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차라리 음원을 풀어서 밴드의 인지도가 좀 더 높아지는 게 궁극적으로는 더 이득이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푸는 방식이 문제일 것 같기는 하다. 아무 생각 없이 풀어버리면 그냥 낭비일 것 같고, 나름 효과적일 수 있는 플랫폼을 고민을 해서 푼다면 그게 인디 씬이 살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김학선: 마지막 질문이다. 플라스틱 피플의 리더로서, 그리고 일렉트릭 뮤즈의 대표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김민규: 꿈은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해외에 진출하는 거다. 우리가 해외 인디 씬과 교류할 수 있는 수위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준비는 하고 있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거지만 밴드들 영문 소개서도 만들고 마이스페이스도 만들면서 해외 웹진들이나 내가 존경하는 해외 인디 레이블들과 컨택을 하려고 하고 있다. 한국에 이런 인디 씬이 있다는 걸 들려주고 가능하다면 교류도 하고 싶다. 일본 같은 경우는 거의 대등하게 교류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대등하게 교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생계가 보장됐으면 하는 거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예를 들어 "일렉트릭 뮤즈에서 가장 잘 된 팀이 누구냐?"고 물어볼 때 그 팀만은 전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밴드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럼 그 팀은 다른 밴드들의 모델이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을 성공시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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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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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규 2009/12/05 17:53 | M/D | Reply
거슬리는 댓글은 올라오는 즉시 지워버리니까 옆에는 '좋아요' '인터뷰 기다렸어요' 이런 댓글밖에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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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 2009/12/05 18:30 | M/D | Reply
지나가다 한말씀 올립니다.
그렇게 방문자들의 자정능력을 믿지 못하시겠으면
앞으로 이명박이 언론통제하느니 이런얘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지나가려면지나가지 2009/12/07 00:04 | M/D | Reply
보다를 자주 들어오지 못해서 뭐가 지워졌는지 모르겠다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악의적인 언어폭력과 표현의 자유를 동일시 해서 이명박 운운하는 거야말로 억지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자기는 못되게 굴면서 상대는 선하게 굴어달라는 거... 유아기적 특징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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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슈슈 2010/02/22 19:37 | M/D | Reply
인디씬의 현실적인 문제가 팍팍 느껴지는 인터뷰네요..
플라스틱 피플 이번 앨범을 너무 괜찮게 들어서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마음이 참 무거워졌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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