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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와 숫자들의 두 멤버와 함께 인터뷰를 한 것이 지난 4월이니 인터뷰 정리가 늦어도 너무 많이 늦었다. 물론 필자들의 개인사정도 없지는 않았지만 어떤 말도 변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3시간의 긴 인터뷰에 기꺼이 응해주고 오래 동안 묵묵히 기다려준 두 뮤지션에게 미안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그리고 긴 인터뷰와 함께 여러 평론가들이 올해 상반기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9와 숫자들의 작품을 다시 들어보시길. 9와 숫자들은 여름에도 썩 잘 어울린다.

일시: 2010년 4월 11일(일) 20:00~23:00
장소: 카페 브라운 센트(Brown Scent)
인터뷰: 9와 숫자들(송재경, 유정목) vs 단편선, 서정민갑
사진 : 서정민갑
초벌 정리: 단편선
최종 정리: 서정민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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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일단 과거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림자 궁전 활동은 중단된 것인가?

송재경(이하 9): 그렇다. 딱 잘라 다시 안 할 거라고는 얘기 못하고 각자 활동하면서 가끔 연락하고 지낸다. 작업 중이던 곡들이 좀 남아있어서 "언젠가는 해결해야 되지 않냐"는 얘기를 하는 정도인데 당장 계획은 없다.

서정민갑: 왜 헤어졌나?

9: 앨범이 나올 때까지는 목표를 향해 조금씩 갔는데 앨범이 나오니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라든지 커뮤니케이션으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앨범 내고 활동이 굉장히 지지부진했다. 박기호라고 10년 동안 같이 활동했던 친구(드러머)가 나간 것도 컸다.

서정민갑: 멤버들끼리 사이가 안 좋았나?

9: 밴드라는 게 다 그렇지 않나?

유정목(이하 0): 좋아질 수 없는 사람이다.

9: 내가?(좌중 웃음) 그때는 사이가 안 좋았기보다 서로 너무 단절되었다. 제일 큰 이유는 나다. 다른 멤버는 계속 가고 싶어 했는데 냉정하게 잘랐다. 멤버들이 공유를 못하고 같이 할 능력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닐 수 있는데 그때는 그랬다. 내가 못 됐었다.

서정민갑: 뭐가 못 됐었나?

9: 속된 말로 자뻑이 심했다. 나는 밴드를 하면서 이만큼 하고, 더 할 자신이 있는데 언제까지 너네는 그렇게 할 거냐며 부탁도 하고 요구도 했다. 그런데 당시 결론은 이렇게 해서는 의미가 없다는 거였다.

단편선: 이 멤버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었나?

9: 그렇다. 당시에는 1집의 벽을 뛰어넘어 더 정돈되고 한국화된 스타일을 만들어 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멤버들이 인정을 안 해줬다. 내 노래가 부족해서 못 받아들인다고 볼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훨씬 더 나아간 사운드인데 이런 걸 이해할 수가 없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서정민갑: 지금은 자뻑이 줄었나?

9: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0: 이게 줄어든 것인가?(웃음)

9: 자뻑도 자뻑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자기가 맞다고 하는 고집이 굉장히 컸다. 지금 음악 안에서는 많이 없어진 것 같다. 그러니까 9와 숫자들을 했을 것이다.

서정민갑: 9와 숫자들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

9: 2007년에 그림자 궁전이 나오고 2008년 정도였다. 곡이 좀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림자 궁전에서 했던 록 음악이 진짜라고 생각했고 그 외의 것은 재미로 가볍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고 뮤직 사장님께 재미삼아 들어보라고 데모를 세 곡 정도 들려드렸다. 그런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그때부터 얘기가 오가기 시작하다가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했던 곡들을 기타 위주로 작업했던 것과 접목시켜 재미있는 걸 만들어볼 수 없을까 해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컨택해서 아일랜드 시티(Island City)의 엄상민이나 로로스(Loro's)의 김석, 이렇게 한 명씩 오게 되었다. 멤버가 꾸려졌으니 2009년 중에 앨범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리 연습도 하고 공연도 해보면 좋겠다 싶어 2008년 말~2009년 초에 빵에서도 한 번 공연했고 공중캠프에서도 한두 번 했다. 그러다 2009년에는 레이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9와 숫자들은 접어둔 채 2009년을 보냈다. 흐른, 로로스의 작업이 마무리 되고 한강의 기적 작업을 쉬게 되면서 9와 숫자들 작업을 작년 말에 시작했다. 2009년 가을부터 녹음을 시작했다.

서정민갑: 멤버들이 아일랜드 시티, 아톰북(Atombook), 로로스, 프렌지(Frenzy) 활동을 했는데 평상시에 다 알고 있던 사이였나?

9: 아주 잘 알지는 못했고 대체로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밴드의 애증을 겪고 나니 팀은 하기 싫고 연주를 해도 확실하게(웃음), 내가 원하는 만큼 연주해주는 사람하고 해보고 싶었다. 그림자 궁전은 알음알음 모여서 시작하고 만들어온 거지만 9와 숫자들은 경험해오고 연주가 되던 친구들이었다. 어느 정도 점 찍어둔 친구들이다. 처음에는 밴드를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약간 이원화되었다. 9와 숫자들은 투어 밴드처럼 9라는 개인의 작업인데 활동할 때 도와주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팀 체제로 이행 중인 것 같다. 멤버들이 많이 바뀌었지만 최초로 들어온 것은 2008년이고 2009년 말에 1기 멤버들이 모였다. 원년 멤버 중에 지금 남아있는 멤버는 드럼 엄상민, 베이스 김석이다.

서정민갑: 다들 음악 스타일이 다른데 멤버들을 선발했을 때 기준이 뭐였나?

9: 일단 내 노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것. 다음은 원하는 연주의 느낌이 있었다. 각자 놀만한 친구들이라고 생각 했다.

0: 무슨 느낌을 봤던 것일까?(웃음)

9: 드럼 치는 친구 외에는 다 자기 곡을 써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대중가요나 아이돌까지 거리낌 없이 다 즐긴다. 하고 있는 장르가 분명하긴 한데 공유할 수 있는 게 많은 취향인 것 같았다. 9와 숫자들은 한쪽으로 몰아가거나 우기고 주장하는 음악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한 거였다. 그림자 궁전 때 너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쳤다. 쓸데없는 자신감과 고집을 다 던진 상태에서 시작했다.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꼭 이렇게 해야 되는데 왜 그렇게 하냐?"고 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0: 그렇게 하면 싫어하겠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으니까 안하는 거다. (웃음)

서정민갑: 다들 "좋겠다, 재미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인가?

0: 다들 비슷했을 것 같다. 이건 무조건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 같다.

9: 그런 생각 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

0: 아이!(웃음) 다들 얘기해보면은 편하게 좋겠다, 거부감 없이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정도였다.

서정민갑: 다른 밴드 활동을 같이 하고 있으면 활동하기 힘들지 않나?

0: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겹친 적이 없었다. (※유정목은 현재 밴드 프렌지 활동을 겸하고 있다)

서정민갑: 그런데 밴드 이름을 왜 9와 숫자들로 정했나?

9 :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관악청년포크협의회라는 작업에서도 9라고 불렸고 그림자 궁전 때도 9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팀이 되었으니 새롭게 하자고 해서 새로운 이름을 많이 생각했다. 별의별 이름이 다 있었다. 그런데 내가 9인데 멀리 갈 필요 없다 해서 숫자들로 같이 하면 되겠다, 생각해서 9와 숫자들이 된 거다. 그때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유명해지기 전이었고 싱글 작업이 막 끝났을 때였다. (장기하 씨에게) "너네도 장기하와 얼굴들이냐, 나도 9와 숫자들 할 건데?" 그랬더니 그때는 장기하 씨가 "재미있겠다, 루트 8도 나오고 3.14 하면 재미있겠다"면서 아이디어도 주고 그랬다. 그런데 장기하와 얼굴들이 유명해지고 나서는 "이름 괜찮겠냐? 분명히 얘기 나올 텐데?"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그런 거 따지고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옛날 현철과 벌떼들부터 신중현과 엽전들 해서 다 있는 거다. 그런데 9와 숫자들은 'A와 B들'에 어울릴만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옛날 가요나 보컬 사운드 같은 감수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이름을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장기하 씨가 전성기였기 때문에 의식을 안 할 수가 없었는데 정작 나오니까 사람들이 이름에 대해서 얘기 안 하더라.

서정민갑: 고전적인 음악에 어울리는 고전적인 네이밍이다. 일부러 맞춘 것인가?

9: 그렇다. 기본적으로 복고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서정민갑: 나머지 멤버들이 1, 7, 8, 0이다.

0: 이름을 정하기 전에 영화 <저수지의 개들>을 봤다. 거기 보면 색깔이 닉네임이다. 영화에서 미스터 블랙을 보고 "너는 왜 멋있게 미스터 블랙이냐? 미스터 블랙하면 너만 있어 보인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미스터 블랙과 연결되면서 미스터 제로라는 게 생각났다. 그런데 그냥 숫자로 0이라고 써놓았더니 되게 별 게 없더라.(웃음)

9: 사실 0은 결정적일 때 쓰려고 되게 아껴놓았던 숫자다.(웃음) 예를 들어서 나중에 모리세이(Morrissey)랑 협연을 한다면 선사하고 싶었던 숫자였다. 그런데 말도 안 되게 이 친구가 써버렸다.(웃음) 하여튼 숫자들은 자기 의지로 온 게 아니고 내가 제안을 해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재미가 먼저였던 것 같다. 그런데 웃긴 건 다들 딱 맞는 숫자들을 골랐다. 7 같은 경우는 밝고 무난하고 누구나 만나도 편하게 지낼 수 있고 누구나 좋아하는 숫자다. 0 같은 경우는 확실히 자기 세계가 있다.(웃음) 0이라는 숫자는 더해도 티가 안 나고 빼도 티가 안 나는데 곱하면 다 자기로 만들어버리지 않나? 또 1은 딱 1 같다 (웃음) 의젓하고 꿋꿋한 느낌이다. 8 같은 경우에는 8이라는 숫자가 귀엽고 바로 내 옆에 있는 숫자다. 그런 식의 의미부여로 얘깃거리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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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밴드 결성되고 음반이 나왔을 때 공통적으로 나온 얘기가 다양한 사운드가 섞여있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다양한 사운드를 내고 싶었던 건가?

9: 다양한 사운드를 하고 싶다기보다 특정한 장르 하나만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좋게 말하는 분들이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고 하시는데 조금만 안 좋게 얘기하면 중구난방이라고 얘기한다. 굳이 하나의 색깔을 찾기보다는 하나하나의 노래에 애정이 많이 있었고 그 노래들을 맞는 옷대로 발전시켜서 넣어보고 싶었다. 큰 두 축은 신스가 강조된 것과 어쿠스틱 사운드가 강조된 것이다.

서정민갑: 대학에 다닐 때는 포크 음악 쪽에 가까웠고 그림자 궁전 때는 록이었는데 지금은 또 다른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장르에 대한 관심들이 쭉 있었던 건가? 아니면 최근에 갑자기 관심이 생긴 것인가?

9: 원래 안 가리고 들었다. 김작가가 쓴 평 중에 "그림자 궁전으로 음악마니아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드러냈다면 9와 숫자들로 자연인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냈다"는 식의 평이 있다. 다르게 얘기하면 음악을 하기 위해 찾아듣는 음악이 있고, 어렸을 때부터 그냥 들어왔던 음악들이 있는 것이다. 그림자 궁전에서는 소스가 되었던 음악이 확실했다. 반면 9와 숫자들 경우에는 그런 경계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자연스러웠다.

서정민갑: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을 계속 같이 쓰고 있었던 것인가?

9: 계속 써왔던 것은 아니고 고등학교 때부터 쭉 해왔던 작업들이었는데 발표해서 음악적으로 풀어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재미로 가볍게 했던 작업이었다. 그걸 해도 좋겠구나 생각해서 제대로 작업을 해서 낸 결과물이다. 가장 오래 된 곡은 <디엔에이(DNA)>다. 그림자 궁전에서 하려고 만든 곡이었는데 멤버들이 가차 없이 안한다고 했다.(웃음)

서정민갑: 청소년기부터 가요적인 사운드를 많이 들어왔던 것인가?

9: 그렇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의 대중가요에 심취해있던 감성이 많이 있지 않을까 싶다. 가리지 않고 들었고 해적판 최신가요를 즐겨들었다. 이문세, 변진섭, 조정현, 심신 같은 음악을 좋아했던 것 같다. 역으로 어떤날을 찾아 듣기도 했는데 어떤날은 예민한 사람들인 것 같다. 나는 어떤날 같은 감성은 아니고 평범하다. 하나에 매달려 집착하는 것은 촌스러워 보인다. 그림자 궁전을 하던 2004년부터 2007, 2008년까지는 록 스피릿을 외치고 이런 건 음악도 아니라고 했는데 그걸 멈춰놓고 보니 그게 얼마나 창피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집착을 안 했으면 오히려 더 멋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림자 궁전 1집을 들으면 어떤 면에서 너무 재미있는 필드이다. 희한하고 신기한데 갑갑하고 콱콱 막혀있는 음반이다. 자기밖에 모르고 그만큼의 세계밖에 모르는 거다. 조금 다른 얘기인데 나는 역사를 전공했다. 인문학을 하면 곧이곧대로 보려고 하지 않고 나만의 특별한 비판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이나 남이 말해주는 것에 의해서 내 판단이 만들어진다. 그게 음악에 똑같이 적용되고 우월한 음악과 가치 없는 음악이 구분된다. 창작에서도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똑같이 적용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결국 할 만한 게 없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음악에 갇혀 있는 거다. 냉소와 비판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인정이나 포용이 없는 배척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주변의 어떤 것이든 좋은 쪽으로 검토하려고 하는 편이다. 

서정민갑: 음악에 대한 생각이 언제 바뀐 것인가?

9 : 팀이 깨진 것이 계기가 되기는 했다. 팀이 깨지고 음악을 안 하는 사람으로 살았는데 너무 좋았다. 숨 쉴 여유가 생기니 돌아보게 되더라. 지난 몇 년간 내가 어떻게 했나 돌아봤는데 잘한 부분도 있고 멋있던 부분도 있고 개판인 부분도 있고 정말 잘못한 부분도 있었다. 9와 숫자들 1집 보도자료에 "예전의 내가 음악을 위한 사람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그냥 사람을 위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썼는데 그런 마음이다. 예전의 나는 음악 빼면 시체였다. 그런데 시체이면 음악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그림자 궁전 1집을 다시 들어봤는데 사람들 얘기가 하나도 없더라. 지적인 유희도 재미있고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빠져 있었다. 우주공주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광물성 여자가 누구 말하는지도 모르겠고 이념 과잉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최민우 씨가 "그림자 궁전은 좋은데, 머리로 만든 음악 아니냐"고 얘기했었다. 그걸 직접 깨닫게 되었다.

서정민갑: 음악 취향만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예전에 듣던 음악도 다시 들렸을 것 같다.

9: 관점이 먼저지 취향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는 취향이나 색깔이 의미가 없다. 노래와 이야기만 있으면 되고 그게 먼저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로콜리 너마저가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아예 안 들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 색깔이 많이 바뀌고 편견 없이 다시 들으니까 '잘 했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했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가요도 전혀 안 들었지만 이제는 그냥 막 듣고 좋기도 하다.(웃음) 옛날에는 '왜 이걸 내가 들어야 돼? 이건 뭐가 좋지?'라는 생각이었는데 가령 <Lollipop>이 나오면 '이번에는 이렇게 만들었네.' 하며 들어본다. 자연스러워진 부분이 있는 거다.

서정민갑: 재경 씨처럼 장르를 건너뛰는 스타일이 많지는 않다.

9: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이 뉴 오더(New Order)가 되었는데 처음엔 깜짝 놀랐다. 산울림도 그렇다. 뽕끼 있는 포크 곡도 있지만 정말 사이키델릭한 곡도 있다. 그래서 나도 다양하게 가야겠다는 건 아니고 싫증을 잘 내는 성향도 있다. 하나에 몰입하다 보면 더 정교하게 만들어 가는 것도 멋이지만 항상 신선하고 싶고 항상 새롭고 싶어진다. 다음 작업은 새로운 이름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너는 아무것도 쌓을 수 없다'면서 주변에서 만류하더라.(웃음) 다른 이름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 성냥탑이라는 이름인데 정말 냄새나는 포크 음악을 하고 싶다.

0: 그림자 군단도 있다. 공연도 한번 했다.

9: 그림자 군단이라는 포스트 록도 있는데 지금은 얘기할 때가 아니다. 정말 심한 포스트 록도 해보고 싶다. 음악이 얼마나 여러 가지가 있고 다 좋은 음악들인데 왜 하나만 죽어라 주구장창 해야 되는 것인가? 다른 데에서 마스터피스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스위치한 뮤지션이 되고 싶은 게 꿈은 아닌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으니까 항상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0: 한 앨범에 다 넣기 힘들면 여러 앨범에 실으면 된다.(웃음)

9: 그림자 궁전에서는 너무 확고한 길이 있기 때문에 벗어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9와 숫자들은 여러 길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것 같아서 고민 중이다.

서정민갑: 최악의 경우 또 9와 숫자들은 1집만 남겨놓고….

9: (웃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림자 궁전도 어떤 식으로 해서든 2집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힌트를 드리면 9와 숫자들 2집은 신스보다 기타 팝, 스미스(The Smiths) 같은 걸 상식적으로 하고 싶다. 영국에 가면 모리세이가 조용필이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떼창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떼창하고 뉴 오더 나오면 다 같이 춤춘다고 한다. 록이 팝의 핵심적인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음악인데 우리 신에서는 이원화되어있다. 그 경계를 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신스를 많이 썼던 것은 솔직히 지금 돌아보면 얼마 안 됐지만(웃음), 나만의 것을 찾았다기보다는 그냥 트렌드였던 것 같다.

서정민갑: 9와 숫자들의 음악은 재경 씨가 거의 주도한 것인가?

9: 그렇다. 하지만 (이)우진(건반, 8)이 같은 경우 많이 영향을 줬다. 나는 투박한 연주를 좋아하는데 우진이는 아름답게 치고 멜로디를 굉장히 잘 만든다. 그런데 계속 듣다보니까 좋더라. 그래서 그런 부분을 많이 받아들이기도 했고 정목 씨가 들어온 뒤로도 많은 변화가 있다. 그래도 중심적으로는 내가 하지 않을까?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혼자서 열 몇 곡씩 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재미있는 게 있으면 같이 만들어서 해볼 생각이다.

단편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열려 있는 것인가?

9: 그렇다.

서정민갑: 편곡하면서도 음악이 많이 바뀌기도 했나?

9: 몇 곡들은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대표적인 게 <선유도의 아침>이다. <선유도의 아침>은 신스 리듬이 이렇게 부각되어 있지 않았다. <선유도의 아침>은 완전 펫 숍 보이스(Pet Shop Boys) 오마쥬 수준인데 사실 펫 숍 보이스 그렇게 안 좋아한다. 그런데 김남윤 씨(사운드 에디터, 믹싱&마스터링 담당,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가 데모를 듣더니 이건 펫 숍 보이스로 가야한다고 해서 알아서 해보라고 했다. 굳이 레퍼런스를 뽑자면 스톤 로지스(Stone Roses)를 좋아한다고 얘기했는데 그런 가볍고 댄서블한 록을 생각했다. 그런데 나온 걸 듣고 처음에는 너무 황당해서 "형, 이거 다시 해." 이랬다가 네 번째 들었는데 너무 좋은 거다. 다른 곡은 몰라도 <선유도의 아침>은 김남윤 씨가 멋있고 직설적이고 받아들이기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줬다. 그 곡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

단편선: 신디사이저는 김남윤 씨가 많은 역할을 해준 것인가?

9: 신스 쪽은 라인들이 간단해서 건반 치는 친구가 미디로 작업해오면 수정을 하고 내가 다 찍었다. 그 상태에서 김남윤 씨가 소스 셀렉팅을 해준 거다. 신스를 워낙 전문적으로 하는 분이라서 딱 들으면 알더라. <그리움의 숲>도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모르니까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많이 상의해서 선택하면서 세련되고 무리 없이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런데 아쉬운 곡도 있다. <이것이 사랑이라면>은 잘 모르겠고 <오렌지 카운티>는 진짜 싼 느낌이었는데 너무 부드럽게 되었다. 대체로 김남윤 씨가 수용의 폭이 넓은 사운드를 만들어준 것 같다.

서정민갑: 고경천 씨(키보드)는 무슨 역할을 했나?

9: 경천이 형은 막판에 편곡 부분에서 건반 쪽이 약했던 곡들을 보강해줬다.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이 필요한 곡들이 있는데 경천 형이 해줘야겠다 싶어 초빙을 해서 몇 곡 정도 만져줬고 거기서 또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서정민갑 : 음악적인 방향을 결정할 때 어떤 분들과 얘기를 많이 했나?

9: 제작자인 손관호 사장님, 그리고 우리 멤버들, 김석도 많이 얘기했고 이 친구(0)도 메신저로 많이 얘기했다.

서정민갑: 이번엔 말 좀 잘 듣던가?

0: 모르겠다.(웃음)

서정민갑: 레퍼런스 얘기를 좀 더 하자면, 대중음악평론가 차우진 씨의 경우에는 스톤 로지스, 펫 숍 보이스, 뜨거운 감자, 몽구스(Mongoose), 코스모스(Cosmos)까지 거명했다.

9: 코스모스는 전혀 들어본 적 없고 몽구스는 좋아한 적 있다. 뜨거운 감자도 제대로 안 들어봐서 모르겠다. 사실 펫 숍 보이스 느낌이 나는 건 <선유도의 아침>밖에 없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똥똥"(건반 소리) 하면 다 펫 숍 보이스 같다고 한다. 그런데 펫 숍 보이스는 하나의 풍이라기보다는 뉴웨이브의 대표자로 봐야 하고 그런 면에서는 맞다. 그리고 스톤 로지스는 확실하다. 내심 굉장히 찔렸는데 <오렌지 카운티> 앞부분도 그렇고 오마쥬 격으로 썼다. 스톤 로지스에서 가장 참고가 되었던 것은 멜로디가 생생하게 살아있고 리듬이 힘을 빼고 가는데도 너무 신나는 거였다. 리드미컬한 부분과 멜로디컬한 부분이 만나는 지점에서 스톤 로지스를 전반적으로 많이 참고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는 항상 좋아하기 때문에 <슈가 오브 마이 라이프>를 듣고서 루 리드(Lou Reed)네 하는 분도 있었다. 산울림의 영향도 가사 곳곳에 느껴질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 같다.

서정민갑: 트위터에서도 인터뷰 질문을 받았다. 밴드 와이낫(Ynot?)이 유일하게 질문을 했는데 앞으로 숫자들의 곡을 늘릴 의향은 없는가?

9: 그건 모르겠다. 어쿠스틱 작업을 할 거라서 늦어질 수도 있긴 한데 작곡까지는 아니어도 편곡 부분에서부터 좀 더 많이 참여를 해줬으면 좋겠다.

서정민갑: 이번에는 실력이 믿을만한가?

9: 그렇다. 잘한다.(웃음)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

서정민갑 : 그런데 왜 노래를 재경 씨가 다 했나?

9: 당연히 내가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부르려고 만든 노래니까 남이 부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서정민갑: 한두 곡 정도는 밴드 멤버들이 부를 수 있다.

9: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노래를 잘한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고 보컬은 너무 어렵다. 해야 하니까 하는 건데 하다보면 잘 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녹음할 때는 테크놀로지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들을 만하게 만들 수 있는데 너무 노래를 못한다. 그래서 그림자 궁전 때는 될 수 있으면 안 불렀다.

서정민갑: 다양한 사운드가 들어와 있음에도 가요적인 사운드 안에 포획되어 있다. 인디 씬에서는 사실 가요적이라는 말이 칭찬만은 아니기도 했다.

0: 인디와 대중성, 가요가 같이 갈 수 있는데 인디는 대중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반대적인 표현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요즘은 씬이 바뀌어 인디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공연장에 다녔다. 인디 씬을 태동할 때부터 봐왔고 군대 있을 때 빼고는 씬과 함께 했다고 자부 아닌 자부를 하는데, 쭉 봤던 경험에서 판단하면 씬 자체가 몇 년 사이에 한번 바뀐 것 같다. 그런 분위기가 지금 씬의 새로운 모습 아닐까? 그런 면에서 그림자 궁전은 경외심을 계속 가지고 있던 마지막 시대의 작업이다. 그림자 궁전 낼 때만 해도 자신감 내지 고집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뭔가 불편한 부분이 계속 있었던 것 같다. 당시 2007년 씬이 어땠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애매했던 분위기인 것 같다. 새롭게 뭔가 하려는 분위기도 있긴 있는데 미약하고 전부터 해왔던 사람들만의 답답한데 깨지지 않을 것 같던 모습들이 있었다. 그러다 서서히 물꼬를 터주는 친구들이 있었던 것 같다. 몇몇 케이스들이 확실한 힘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리스너들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씬의 체질이 변하는데 이제는 장르음악에 대한 경외가 없고 록에 대한 고집도 없다. '서양음악이 잘하는데 우린 언제 이렇게 잘 하냐'는 게 기준도 아니다. 우리는 그냥 우리가 신선하게 하면 되는 거라는 마인드들이고 불과 3, 4년 전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예술성과 진정성에 대한 고민도 있긴 있는데 옛날하고는 다른 것 같다. 그냥 리바이벌까지 인정해줄 수는 없는 것 같고 플러스알파를 필요로 하는 것 같긴 한데 우리 음악도 진정성 면에서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부분에서는 경계 없이 막 갖다 쓴 것도 있다. 진정성을 가지고 얘기를 한다면 또 다른 얘기가 될 거 같다.

서정민갑: 이런 현상들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편인가?

9 : 너무 급박하게 변화가 일어나서 처음에는 판단이 안 됐다. 위화감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다행히 나는 어느 부분에서는 꿋꿋했고 어느 부분에서는 기존의 것만 고집하지 않았고 절충적으로(웃음) 있었던 것 같다. 로로스라는 팀이 많은 힘이 되었다. 음악적으로 독고다이로 하는 징그러운 팀인데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외부의 변화에 상관없이 음악만으로 해오던 대로 열심히 해도 보상을 받고 충분히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 팀과 그 시기를 지냈다.

서정민갑: 인디가 더 이상 다른 음악이라는 것만으로 구별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생각도 든다.

9: 음악적인 방향이나 색깔의 차이가 많이 없어졌다는 부분에서는 맞지만 방식이나 마인드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는 인디라는 게 존재한다고 본다. 매체 자체가 옛날에 비해 더 오픈된 것 같고 소스를 찾는 층에서 레이더망의 폭을 넓혔다고 해야 하나? 옛날에는 1차적으로 들어오는 것만 보고 나머지는 완전 관심 밖이었는데 이제는 멀리 보고 재밌겠네, 신선하겠네 싶으면 같이 하게도 된 거다.

0: 물론 리스너들의 인식이 바뀐 것도 큰데 다른 면에서는 인디 레이블이라든지 공연 기획 쪽에서 마케팅 하는 방식이 굉장히 달라진 것 같다. 옛날에는 작게 자기네들끼리만 알리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공연 기획을 하나 해도 넓은 층한테 들려주는 식으로 공연을 기획한다. 옛날에 인디 레이블이라고 하면 진짜로 방구석 뮤지션들 몇 명 모아서 우리도 레이블, 우리도 레이블, 이런 식으로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규모만 다를 뿐이지 큰 레이블이나 하는 마케팅 방식과 비슷한 것 같다.

9: 인터넷 같은 매체의 변화가 큰 원인이지 않을까? 붕가붕가 레코드가 자리 잡게 된 과정을 보면 뉴미디어의 힘을 적극 활용하면서 콘텐츠의 힘과 매체의 힘을 활용해서 성공한 케이스이다. 그때까지는 말 그대로 수작업이었는데 오히려 다른 거대매체들을 빨아들인 거다. 엄청난 거였고 뉴미디어의 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예전에 황신혜 밴드가 유튜브에 올라갔다면 당시 TV에 나갔을 수도 있다.(웃음) 하지만 그때는 불가능했고 그러다보니 계속 고립되고 우리는 인디니까 방송 쪽은 생각 자체를 안 하는 문화였다. 그런데 이제는 레이블이나 주체들이 우리라고 못할 것이 있냐며 적극적으로 알리고 기회가 있으면 돈도 마련해 쓰고 요즘엔 그게 되기도 하는 거다.

서정민갑: 이제 인디와 인디가 아닌 건 어떻게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9: 어렵다. 제작하는 방식과 최종적인 목표 같다. 일단 제작 방식이 먼저인 것 같다. 의사 결정과정에서 많은 양보와 타협이 있다면 인디가 아니다. 백만 원 쓰냐, 천만 원 쓰냐가 중요한 건 아니고 자기가 자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선에서 자기 콘텐츠를 알린다는 것이다. 그런 식의 제작 방식이나 제작할 때의 목적, 마인드라고 주장하고 싶다.

0: 음악 하는 입장에서 "나는 인디다,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고, 듣는 사람들이 "인디음악이다, 아니다"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가요 같은 멜로디가 들리면 인디가 아니네, 이렇게 판단을 했다면 지금은 아니다. 멜로디가 가요 같고 대중적인 멜로디를 해도 인디라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듣는 사람들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9와 숫자들 앨범도 지금보다 잘 되서 매체에 나가면 어떤 사람들은 인디 밴드라고 얘기를 하겠지만 만약 2, 3집 때 방송에 나오고 그때 처음 본 사람들은 인디 밴드라는 생각을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판단하는 것은 듣는 사람들의 몫으로 바뀐 것 같다. 나는 작업할 때 정체되어 있는 마인드로 음악을 하고 있으면 그건 인디라고 안 본다. 인디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으려면 작업을 할 때 계속 열려있고 새로운 것을 계속 찾아야한다. 유명해졌을 때 처음에 했던 음악처럼 포장했을 때는 인디 밴드라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서정민갑: 여러 가지 좋은 변화들이 있지만 여전히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의 어려움이 있다. 어떤 방법들이 인디의 활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는가?

9: 중요한 것은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좋은 음악은 다 아는 거 같다. 아직도 더 나올만한 좋은 게 있다고 믿는다. 그걸 최대한 노력해서 뽑아내서 좋아할 수 있고 놀랄만한 것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게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은 공연을 죽을 만큼 뛰든지 방송 쪽으로 노력해서 풀어가든지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을 하는 건 각자 선택인 것 같다.

0: 인디를 접할 기회가 요즘 들어 많이 생겼는데 사실 홍대 말고는 없다. 다른 장소에서도 하나둘씩 점점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요즘에는 관객이 미어터지는 게 아니고 밴드들이 미어터진다. 그러면 받아줄 수 있는 장소가 홍대를 벗어나서 점점 더 늘어나야 한다. 그러면 외국처럼 거리공연 해도 주위에 있는 상가들이 싫어하진 않을 것이다. 홍대에서는 거리 공연 잘 못 연다. 지하도 공연 몇 번 했는데 지하도 공연을 해도 지나가는 사람이 시끄럽다고 신고해서 경찰이 중간에 못 하게 한다.

9: 로컬을 분산시키려는 시도들은 조금씩 있었는데 참 어렵다. 지방 팀들이 다 죽고 오히려 지방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던 사람도 역으로 올라온다. 잘 되려면 메가톤급 인디 밴드들이 몇 개라도 나와야 그 밴드들을 중심으로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 같은 곳은 조금만 더 하면 다시 좀 활성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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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9와 숫자들은 멜로디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멜로디는 어떻게 쓰는가?

9: 일단 가사가 먼저 나와야 한다. 가사는 평상심으로는 안 된다. 신내림이 한번 와야 한다. 계기가 있어야 시작되는 말이 떠오르고 살붙임을 해간다. 가사가 좋다는 분도 있고 유치하다는 분들도 있는데 가사는 심도를 높이려고 진짜 노력해서 어거지로 끼워 맞추는 가사는 최대한 뺐다. 자연스럽다고 느껴질 때까지 기다리느라 굉장히 오래 걸렸다. 곡 같은 경우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제 카페에서 들었던 노래일 수도 있으니 의심을 해야 한다. 그 후 별 다른 문제가 없다 싶으면 모니터를 해서 곡으로 가는 거다.

서정민갑: 스스로 만든 멜로디들이 마음에 드는가?

9 : 혼자 만들었다고는 생각 안 한다. 들어왔던 많은 소리들 중에서 내 식으로 조합된 것이다. 좋은 것들을 많이 얻어다 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정민갑: 가사에는 연애 이야기가 가장 많다. 실제 경험이 많이 투사되는 것인가?

0: 연애 이야기라기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9: 마음을 많이 쓰게 되는 게 그런 것 아닐까? 신변이 드러나기 때문에 좀 민감한데 기억들이 충동하는 것도 있고 중첩된 경우도 있고 종합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서정민갑: 슬픔이 가사를 더 많이 쓰게 만드는가, 기쁨이 더 가사를 많이 쓰게 만드는가?

9: 한쪽만 가지고 얘기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상황으로만 따지자면 기쁜 상태일 때보다 슬픈 상태일 때이다. 기쁜 상태일 때는 그 기쁨을 즐겨야 해서 스스로 고립될 필요가 없다. 기쁜 상태일 때는 즐겨야 하고 외향적이 되는 거 같은데, 슬픈 상태일 때는 더 내향적이 되는 것 같다.

서정민갑: 가사가 전반적으로 단정하고 깔끔한 느낌이다.

9: 가사에 모난 부분이 없다. 사운드도 그렇고 보컬도 그렇고 가슴을 한번 후려쳐준다던지, 푹 꽂히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싱겁다고 하기도 하더라. 좀 아쉬운 부분인데 가령 영화 <해운대>를 영화 끝나기 10분 전에 갔으면 참 평화롭고 조용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처음부터 봤다면 똑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여러 가지 복잡한 것들이 느껴질 것이다. 가사도 전복적으로 보면 숨겨진 부분들이 추적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진행 중인 상태나 감정을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고 유아적이고 자연에 대한 뻔한 말도 많이 썼는데 편안하고 무난한 것 같다. 초등학교 교과서 펴놓고 뒤적이면 나오는 가사들을 썼다는 말을 듣고 충격 받았는데 그럴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상투적인 것은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얘기하면 안다는 것이다. 물론 조합하는 맥락은 있어야겠지만 상투적인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쉽고 편안하고 뻔한 표현들을 가감 없이 썼다.

서정민갑: 쉽고 뻔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멜로디도 그렇게 들리는 면들이 많지만 자신에 대한 불화라던가, 타협하지 못하는 지점들에 대한 가사가 많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나는 숙인 고개를 들 수 없었지", "너 혼자 똑똑해서 뭐하려고", "난 원래 그런 놈이니까", "난 도망가버릴 거예요", "끝내 잡지 못하고 혼자가 되었네" 같은 가사를 보면 밝음보다는 비관과 체념의 가사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9: 듣고 보니까 그렇기도 하다. 그래도 대부분 무난한 선에서 끝난다. 하지만 예를 들어 <디엔에이>의 "숙인 고개를 들 수 없었지"는 체념해서 다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는 게 아니다. DNA라고 정해진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긍정이다. 그림자 궁전 할 때 만든 가사인데 음악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커 나왔던 것도 아님에도 사명 같이 느껴졌다는 내용이다. <연날리기>에서도 "너 혼자 똑똑해서 뭐하"겠냐만 아무도 안 알아준다고 해도 묵묵히 하면 된다는 식의 응원이다. <칼리지 부기>에도 말씀해주신 부분이 들어가 있는 게 맞는데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런 자신이나 사람들을 보듬고 싶다는 거다. 슬픈 정서들이 많이 있지만 다 받아들이고 감싸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닭살 돋을 정도로 진짜 애정이 가득 찬 마음으로 만들었다.

서정민갑: 무조건적인 인정이나 낙관이 아니라 일정한 과정을 거친 후에 나타나는 더 큰 허용 같다. 평이해 보이지만 평이하지 않은 가사들이 대중가요와 다르게 만드는 지점인 것 같다. <연날리기>에서 "에헤라디야"라는 가사를 썼다는 것도 특이했고 <낮은 침대>라는 제목도 특이했다.

0: 떼창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얘기가 있었다.(웃음)

9: 그건 농담처럼 한 얘기인데, 동요 <연날리기>에 나오는 걸 그대로 갖다 쓴 거다. <낮은 침대>는 낮은 침대에서 일어난 일이다.(웃음) 보시면 안다.(웃음)

서정민갑: <석별의 춤>에 나오는 '그대'와 <실낙원>에 등장하는 '당신'은 일반적인 의미의 연인이라기보다는 다른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9: 일반적인 의미이다. <실낙원>을 잘 생각해봐라. 실낙원은 판타스틱하게 이국적으로 아담과 이브를 생각하면서 썼지만 축소된 공간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 그걸 잘 미화시키고 확장시킨 것이다. 개인의 관점에서는 개념적인 세계와 경험적인 세계가 붙어있다. 아주 사소한 경험이 큰 생각까지 가게 된다.

서정민갑: 어떤 곡은 90년대적이고 어떤 곡은 70년대적이다. 개별 곡의 분위기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9: 의도적으로나 일괄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양쪽을 다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서정민갑: 가사를 쓰거나 멜로디를 쓸 때 곡의 분위기를 어떤 스타일로 하겠다고 결정하지 않았던 것인가?

9: 그런 곡도 있고 아닌 곡도 있다. <말해주세요>나 <그리움의 숲>은 가사와 멜로디만 있는 상태에서 편곡이 됐고, <석별의 춤>이나 <낮은 침대>, <오렌지 카운티>는 편곡이 밑바탕이 됐다. 가사에 멜로디만 붙여놓은 곡은 편곡이 어떻게 될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서정민갑: 그렇다면 전체적인 사운드에서 특정한 분위기를 내려고 하거나 피한 것도 있었나?

9: 일단 록적인 사운드는 최대한 배제했다.(웃음) 전기기타 디스토션 사운드도 거의 배제했고 반복을 최대한 안하려고 했다. 귀를 거슬리게 하는 사운드도 듣기 편하게 뺐다. 그런데 <삼청동에서>는 기타 리프가 너무 잘 만들어져서 뺄 수가 없었다. <실낙원>은 록이 싫다고 도망치는 와중이지만 천생 록이다. 록의 전공을 살려보자고 만든 곡인데 개인적으로는 사운드가 제일 안 좋았고 원하는 대로 표현이 안 됐다.

서정민갑: 보컬에 리버브가 아주 많다.

9: 드럼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1980년대 사운드를 내고 싶었다.

서정민갑: 어떤 곡들은 멜로디가 좋은데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는 느낌이 강하다. 편곡도 단순한 느낌이 있다.

9: 곡의 호흡이 짧아서 그렇다. 나중에 더 집어넣으려다 보니까 좀 억지가 되더라.

0: 보통은 이런 분위기나 구성이라면 브릿지가 나올 때가 많은데, 거의 A B A B A B C A 이런 식이라면 C가 많이 빠지고 곡 구성에서 A B A B B B 이렇게 끝나고 브릿지가 있는 곡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버스 코러스 버스 코러스 코러스 코러스 이런 구성이 많다. <실낙원> 같은 곡은 그래도 브릿지가 뒤에서 한번 나오는데 <말해주세요>도 그렇고 <이것이 사랑이라면>도 그렇고 <오렌지 카운티>도 그렇고 다 C나 D가 없어서 그렇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그게 있었다면 또 별로였을 것 같다.

9: 사실 그렇게 농밀하게 써야 되는데 아직 부족하다. 앞으로 많이 생각해야 되는 부분이다. 곡들이 쓰여지고 집대성을 해서 앨범을 만들어야 하는데 편곡에서 미흡한 부분이 보인다. 나도 앞으로 곡 작업을 하면서 구성을 다채롭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애초에 만들 때 세밀하게 신경을 써야 되는 부분이다. 아직 단수가 낮은 거다. 호흡이 짧고 가사의 문제도 있다. 멜로디는 어울리게 집어넣으면 된다고 해도 내용을 이질적인 멜로디와 맞춰서 끌고 나가려면 연결지점을 찾아줘야 한다. 그게 어렵다. 내 딴에는 '아이, 담백하잖아.' 이러고 끝내는데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건 나중에 2집 때.(웃음)

서정민갑: 멤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은 어떤 곡인가?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사랑이라면>과 <연날리기>가 가장 아쉽기는 했다.

0: <그리움의 숲>을 가장 좋아한다. 개인적 취향은 어쩔 수가 없다.(웃음) 그런데 아쉬운 곡이 저랑 똑같다.(웃음)

9: 진짜 얘기 못하겠다. 그런데 남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곡 중에 애착이 가는 곡은 <연날리기>이다. 진짜 자신에게 불러주는 곡이기 때문이다.

서정민갑: 앞으로 사운드가 더 매끈해지는 것이 목표인가? 아니면 9와 숫자들의 다른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인가?

9: 더 매끈해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1집은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매끈했다. 어느 정도 톡톡 튀는 질감도 있었으면 좋았을 법 했다. 다음에는 원래 나의 색깔도 좀 더 내보자는 생각이다. 다시 록으로 회귀하는 건 아니고 말 그대로 인디한 질감을 더 살려보고 싶다. 제일 아쉬운 건 인디 팬들에게 아직 어필을 못했다. 오히려 음악에 대해 편견 없이 듣는 분들이나 그쪽 음악을 많이 들어온 분들은 괜찮다고 하는데 항상 인디를 듣고 있는 인디 팬들이 좀 외면했다. 조금 재미가 없었나보다. 그래서 조금 서운했다. '어떤 부분에서 그랬을까?' 반성을 했는데 인디스러운 부분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음에는 그 친구들에게 잘 보여야지 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곡들로 채워질지 모르니 아직은 잘 모르겠다.

서정민갑: 최종적으로 앨범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어떤가?

9: 이 앨범은 평가할 만한 앨범은 아니고 그냥 사람들에게 주는 하나의 선물 차원에서 보면 참 괜찮은 것 같다. 반응이 괜찮다고 하셨지만 비판적인 시선도 없지 않다. 재미없다, 뻔하다, 유치하다고 신랄하게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다.(웃음) 칭찬해주면 좋고, 욕하면 싫은 게 당연한 건데 반응에 예민하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좋은 평가를 위해 만든 음반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쁨을 위해 만든 음반이다. 일단 부모님이 아주 좋아하신다. 그림자 궁전은 듣다가 바로 끄셨는데 온 회사 사람들한테 들려주고 선물도 하고 CD를 많이 듣고 노래들을 아시더라. 기뻤다. 내게 음악을 처음 가르쳐준 사람이 아버지이시니 그런 면에서 이전보다 성공적이다. 잃은 것도 분명 있겠지만 이번에는 음악적으로 이루고 얻어내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너무 없었나보다.(웃음) 그런데 다행히 진짜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해줬다. 그래서 어휴, 고마웠다. 다들 음악에 대해 평가해주는 코멘트가 비슷하다. 더 치밀하고 음악적인 임팩트가 많이 들어간 작업이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번 작업만큼은 전혀 그런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좋은 노래를 좋게 듣고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정민갑: 그렇다고 대충대충 만든 건 아니지 않나?

9: 절대 아니다. 정성을 많이 쏟았는데 정성의 초점이 장르적으로 실험을 하는 쪽이 아니고 '자기 음악에 맞는 반주가 어떤 식으로 나와야할까'라는 생각으로 한 것이다. 그러려면 노래를 더 잘 했어야 하는데 노래가 항상 난제다. 객원을 써야 되나? 이런 생각도 들기도 하고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거 같기도 하다.

서정민갑: 전체적으로 부담 없는 사운드인 거 같다.

9: "당신 삶의 BGM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내 음악에 모든 걸 걸지 말고 자기가 재밌게 사는 게 최고이니 거기에 하나의 수단이 됐으면 좋겠다.

서정민갑: 레고 뮤직 비디오가 참신하고 재미있었다. 누구의 아이디어로 어떻게 만들었나?

9: 내가 만들었다. 여러 가지 안이 있었는데 개인성의 깊은 곳을 추구했을 때 나오는 공통의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해서 작업을 방에서 다 했다. 촬영하는 데 하루, 편집하는 데 하루, 이틀 정도밖에 안 걸렸다. 정말 얘기하고 싶은 스토리가 있었고 굉장히 슬픈 스토리인데 연출력이 부족해서 표현이 잘 안 된 게 아쉽다. 그 뮤직비디오는 정말 재미로 그냥 만들어본 것이었는데 반응이 진짜 좋았다. 뮤직비디오 제작기를 써달라는 의뢰도 받았고 새로 생기는 케이블 채널에서도 틀고 싶은데 원본을 받을 수 있냐고 연락을 하기도 했다. 당신이 본 게 원본이라고 했더니 아쉬워하더라.(웃음) 다음부터는 제대로 해봐야겠다.

서정민갑: 이번에는 오래 활동할 거라고 기대해 봐도 좋은 건가?

9: 그렇다. 내 맘대로 되지는 않지만,(웃음) 지속이 중요하다. 중학교 때 했던 생각인데 초를 오래 태울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긴 초를 태우거나 초를 천천히 아껴서 틈틈이 태우는 두 가지 방법 밖에 없다. 그런데 긴 초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지속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먼저고 그 다음 천천히 태우는 게 중요한 거다. 지금 하고 있는 활동에 모든 걸 걸고 했을 때에는 금방 타고 없어질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 아끼면서 영리하게 활동해나가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서정민갑: 끝으로 <보다> 독자들이나 9와 숫자들을 사랑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한 말씀씩 부탁한다.

9: 음악 하는 사람들이나 듣는 사람들이 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음악이 자기만의 삶을 빛내주는 특별한 무언가가 되기도 하는데 그것보다는 사람 자체가 충분히 얘깃거리를 표현한 다음에 음악이 있으면 좋겠다. 너무 열심히 듣지 말자.(웃음)

0: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같은 맥락으로 좋은 음악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듣는 음악을 한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0/07/15 00:00 201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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