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뜰날을 기다린 고수의 두 번째 일격, Band of Horses [Cease to Begin]
- Posted at 2008/11/10 14:00
- Filed under feature/음악

밴드 오브 호시즈(Band of Horses)의 벤 브리드웰(Ben Bridwell)이 자신들의 두 번째 앨범 [Cease to Begin]을 발표할 무렵에 인터뷰를 통해서 했던 말입니다. 데뷔작 [Everything All the Time]을 돌이키면서 말이죠. 지나치게솔직한 것인지, 아니면 소심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이군요. '진짜 크게'의 기준이 10만장인 것을 보면 소심한 것이 맞는 듯 하네요. 물론 인디 록과 서브 팝(Sub Pop)의 기준에서 볼 때 성공적임은 분명하지요. 하지만 단순한 상업적 기준을 떠나서, 그의 말은 어떤 면에서 옳기도 하고 동의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그 이유를 밝히다 보면, 밴드 오브 호시즈와 그들의 음악을 알려드릴 수 있을 듯 합니다.
밴드 오브 호시즈는 벤 브리드웰과 맷 브룩(Mat Brooke)을 중심으로 2004년에 시애틀에서 결성한 밴드입니다. 그 전에도 둘은 10년 동안 카리사즈 위어드(Carissa's Weird)라는 팀을 운영했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친구들은 아닙니다. 이들이 데뷔 직후 이룬 급격한 성공에 비추어 볼 때 10년 동안에는 무엇을 했는지 물으신다면 때를 만나지 못한 비운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이들이 비운을 걷어내고 서브 팝의 관심을 끈 것은 시애틀 지역에서 아이언 앤 와인(Iron & Wine)의 공연을 서포트하던 무렵입니다. (벤 브리드웰은 그와 동향이지요.) 서브 팝은 이들이 공연장에서만 팔던 EP를 재발매했고, 2006년 3월에 데뷔 앨범 [Everything All the Time]를 내놓았습니다. 여기까지도 꽤 바빴는데 다음부터는 더 숨가쁩니다.
<Everything All the Time>은 확실히 '기대를 뛰어 넘었'습니다. 이들이 얻어낸 호의적인 평가는 데뷔 앨범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수준이었으니까요. 일부는 그런 흐름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판단을 보류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흔히 기대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지요. 사실 이들의 음악이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현재 가장 성공적이고 독창적인 인디 록의 흐름들을 총합한 것처럼 보이죠. 그러니까 이들 스스로 '대박 아니면 따라쟁이'라고 예견했던 것은 지난 십 수년간 수없이 많은 영국 밴드들이 포스트 브릿팝(Post Brit-Pop)의 일군으로 분류될 가능성에 불안해하거나, 혹은 그것을 감수했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아니면 영국을 미국으로, 브릿팝을 그런지로 바꾸어도 되겠지요.)
벤 브리드웰의 목소리는 언제나 마이 모닝 자켓(My Morning Jacket)의 짐 제임스(Jim James)와 비교되곤 합니다.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담은 듯한 팔세토말이죠. 마이 모닝 자켓을 모르시더라도 토드 헤인즈(Todd Haynes)의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를 보신 분이라면, 리차드 기어(Richard Gere)가 등장할 때 마을 회관에서 <Goin' To Acapulco>를 부르는 털북숭이 남자를 기억하실 겁니다. (심지어 둘은 수염도 비슷하네요.) 그가 바로 짐 제임스입니다. 음악은 제쳐두고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위험합니다. 마이 모닝 자켓과 짐 제임스는 지난 몇 년간 음악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인디 록 밴드 중 하나였고, 그만큼 음악 팬들은 내밀하지만 강력한 애정공세를 펼치고 있으니까요.
보컬을 넘어서고 나면 이들의 음악은 노스웨스트 사운드(Northwest Sound)라는 소소한 음악적 흐름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스타일은 겹겹이 쌓아 올린 보컬과 기타, 섬세하지만 극적으로 진행하는 멜로디 라인, 시애틀 특유의 것이라고 할 수도 있는 신경질적 정서 등으로 느슨하게 특징할 수 있는데, 여기에 속하는 밴드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빌트 투 스필(Built to Spill), 모디스트 마우스(Modest Mouse), 데쓰 캡 포 큐티(Death Cab for Cutie) 등등. 시기 상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수준이 아닌 인디 록 필드에서의 경력을 끝내고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후에 (빌보드 앨범 차트를 1위로 데뷔하는 것을 포함하는) 제법 괜찮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음악 산업에서 당연한 수순이기도 합니다만, 몇 년 전까지 유독 인디와 메인스트림의 분리 현상이 뚜렷했기에 오히려 낯선 풍경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오래된 팬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팔아먹기나 변절로 볼 수는 없다는 점도 같습니다. (사실 굳이 레이블을 옳기지 않더라도 몇몇 유명 인디 록 밴드가 주류차트에서 선전하는 모습은 최근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동시대에 '어떤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음악에서 어떤 공통점이나 흐름이 발견되면, 사람들은 이름을 붙입니다. 그것을 장르나 스타일이라고 부르죠. 그 '어떤 아티스트들'이 선구자라면, 그 이후의 음악가들은 쉽게 분류될 수 있는 체계를 얻습니다. 그리고 밴드 오브 호시즈는 노스웨스트 사운드라는 체계를 통해 '사후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밴드입니다. 말하자면 이들이 새로운 땅의 개척자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대신 음악계 전체에서 볼 때 너무 사소하고 느슨하기에 아주 좁은 시장이지만, 동시에 분명히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있고 동시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흐름에 빠르게 적응한 사람들입니다. 영리한가요? 하지만 영리한 것 만으로는 까다로운 인디 록 평자들에게 칭찬을 들을 수 없죠.
이들은 컨트리 혹은 남부의 정서, 혹은 서던 락(Southen Rock)의 흔적을 자신들의 인장으로 삼을 줄 알았습니다. 아이언 앤 와인의 서포트를 했던 것이 우연은 아닌 것이죠. 본인들이 구사하는 스타일 특유의 신경질적인 백인 청년 이미지와 거칠고 메마른 남부의 정서적 결합은 모든 것을 새롭게 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닐 영(Neil Young)이나 플레이밍 립스(Flaming Lips)를 언급했던 사람들은 음악적 유사성 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정서적인 맥을 짚은 경우일 것입니다. '대박이나 따라쟁이'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이들을 이해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벤 브리드웰은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온전하게 시애틀(미국의 북서 끝자리) 출신의 밴드였다면 그럴 수 없었을 테죠. 하지만 데뷔 앨범을 들어보면 이들의 그런 정서는 의도적으로 억제된 것처럼 보입니다. 좀 더 단순하고 일관되게 펼쳐지는 사운드는 소위 앤썸(Anthem, 찬가)으로 가득 찬 앨범을 구성합니다. 본인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가장 강력한 부분만 확대하고, 파고들어 한 상 가득 차려놓은 듯이 말입니다. 가능성은 좀 더 남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아직 보지 못한 카드가 남아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1년 반 후에 나온 두 번째 앨범 [Cease to Begin]은 타이틀부터 의미심장합니다. 그들이 어떤 위험을 무릎 썼는지 상기하도록 하고, 동시에 이제 진짜 무엇인가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우선 <Is There a Ghost>가 시작되면, 익숙한 사운드가 흘러 나옵니다. 아직은 무엇이 바뀌었는지 아직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Ode to LRC>나 <No One's Gonna Love You>를 지날 즈음이면 뭔가 다르다고 느끼게 됩니다. 예전 같으면 사운드가 폭발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스산한 모래바람이 불어 옵니다. 과거의 그것이 스타일리쉬했다면 지금은 소울풀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감정선이 이들의 원래 의도였다고 확신하게 하는 것은 벤 브리드웰의 목소리입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가 가진 원래 색깔을 되찾은 듯이 자신 있게 부릅니다. 누구도 짐 제임스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내칠 수 없을 겁니다.
앨범의 중반부로 넘어가면 <The General Specific>, <Marry Song> 등을 거치면서 아주 선명하게 컨트리/서던 취향을 드러냅니다. 심지어 그것들은 훌륭하고 밴드 오브 호시즈라는 밴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도록 합니다. 이들이 처음부터 이런 사운드를 펼쳤다면 독자성을 인정 받는 대신, 이름은 덜 알려졌을 것이고 신경 써서 귀를 열어주는 사람은 더욱 적었을 겁니다.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다행스러운 일이죠. 앨범이 여기까지 진행되면 정말 뭘 해도 됩니다. 그래서 <Cigarettes, Wedding Bands> 같은 트랙이 데뷔 앨범에 존재하는 것과 [Cease to Begin]에 자리잡는 것은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똑 같은 10개의 트랙 중 하나에서 맥락을 지닌 10개의 챕터 중 하나가 되는 것이죠.
[Cease to Begin]의 35분은 안정적으로 조직되어 있지만 청자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매력들로 가득합니다. 장르라는 넓은 범위를 가로지르는 거창함은 없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두 개의 트랙에서 느끼는 짧고 단발적인 감동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작품으로서 기능하는 완결된 작업물입니다. 주목 받는 밴드의 서포모어에게 이 이상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에 대한 관심이 합당한 것이었음을 증명하고 향후에 그들이 만들어 내는 모든 것에 기대를 갖고 귀를 기울이게 만드니까요. 두 번째 앨범에 실망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린 수 많은 아티스트들을 떠올려보세요. 아, 지웠으니까 떠오르지 않겠군요. 이들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겁니다. 말하자면, 10년을 갈고 닦은 무공을 자랑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언제일까요? 이들의 대답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볼 때 입니다. 그 때를 조급증 없이 짚어낸 사람들이 오래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두고 보세요. (서성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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